고등학교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이진혁은 모든 면에서 뛰어난 학생이었다. 공부, 운동, 모난데 없는 성격, 수려한 외모. 이진혁은 선생님과 선후배, 동년배 친구들에게 이진혁 자체만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학생이었다.
[혹시 진혁아 학원 어디 다니는지 알려 줄 수 있어? 이번에 내가 수학성적이 너무 떨어져서 말이야]
[진혁이 부모님은 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저런 아들을 낳았을까? 혹시 정치하시니? 아니면 어디 대학교수?]
주위 친구들과 선생님의 개인적인 질문이 쏟아질 때마다 진혁은 한없이 너그러운 미소만 띄울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혁은 잘 알고 있었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신비주의가 되고, 거들먹거리는 비뚤어진 동년배들의 타깃에서 가볍게 제외대상이 되며, 학교에서 발생한 어떠한 사고와 실수에도 면죄부가 된 다는 것을.
그래서, 진혁은 자신의 어느 틈에선가 비칠지도 모르는 결핍과 궁핍, 반감과 혐오를 가리기 위해 더욱더 철저히 가면을 써야만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종점에서 내려 가로등마져 꺼져 버린 어둡고, 좁은 골목 입구에 서면 진혁은 맥이 탁 풀렸다. 가면을 벗자마자 무섭게 달려드는 현실. 너는 죽어라 노력해도 이 동네 사람이라는 공포스러운 소속감. 좁고 비탈진 골목길을 돌아 돌아 달빛이 어린 그림자를 질질 끌고 올라간 대문 앞에 다다르면 진혁을 비추던 달빛마저 사그라드는 듯한 두터운좌절이 그를 덮쳐왔다. 오늘도 여전히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담장을 넘고 있었다. 진혁은 그 기침소리가 넌더리 났다. 너는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창녀의 아들이다. 찢어지게 가난해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그녀가 너의 어머니이다. 너는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숙히 네가 속한 세계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운명에 쐐기를 박는 명확한 확정음 같은 처절한 기침소리. 며칠 전부터 발작적인 기침과 함께 가래 끓는 소리가 더 심해졌다. 폐암진단을 받은 지 2년. 진혁의 어머니는 제대로 된 항암치료도 거부하며 진통제로 연명하고 있었다.
끼익.
녹슨 대문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자 창백한 안색의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문고리를 잡은 채 모퉁이가 해져 너덜거리는 합판 문에 기대 진혁을 맞이했다.
[우리 진혁이 왔니?]
[응]
건강한 것, 정상적인 것, 평범한 것,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집. 그 속에 묶여 있다 점점 쓸모없는 것, 가치 없는 것, 병약한 것들에 물들어 결국 조악하고, 조야해 질 것 같아 진혁은 늘 조바심이 났다.
[배고프지 우리 아들 늦게 까지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머니가 무릎에 손을 짚고 끙 힘을 주어 일어서려 하자 식은땀에 푹 절은 붉은색 세틴 원피스의 조잡한 넥라인 레이스가 아래로 출렁였다.
[엄마 그 옷 좀 버리면 안 돼요?]
도저히 못 볼 것을 본 것 같이 눈을 질끈 감아버린 진혁의 목소리에 경멸이 베어났다.
[이 옷이 그나마 엄마 옷 중에 좀 편해서. 나중에 나중에 버릴게 아들 응?]
진혁은 고개를 저으며 가방을 신경질적으로 책상으로 던지고 거칠게 의자를 빼내 앉았다.
과거는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고 진혁은 늘 생각했다. 그 길을 밟아 지금의 그녀가 여기 이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진혁의 힐문에 눈물을 훔치며 도돌이표처럼 살아온 인생에 대한 변명을 했던 어머니를 진혁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밤과 낮이 바뀐 삶을 살고, 알 수 없는 사내들이 집에 드나들고, 늘 짙은 분냄새를 풍기며, 현란하고 천박한 옷을 입는 삶. 어머니의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진혁은 아버지와 평범한 삶을 어머니는 건강과 아들의 마음을 잃었다.
그날 밤, 밤늦게까지 스탠드를 켜놓고 문제집을 풀던 진혁에게 불현듯 서늘한 이질감이 다가왔다. 뭘까? 익숙하지 않은 이 느낌은... 진혁의 주위에 정적이 감돌았다. 늘 들려오던 소리. 그것이 들리지 않았다. 기침소리, 가래 끓는 소리, 앓는 소리, 뒤척이는 이불의 바스락 거림. 그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동그래졌던 진혁의 눈이 차츰 원상태로 돌아오며 긴 한숨이 세어나왔다. 언젠가는 찾아 올 순간이었다. 진혁은 동이 틀 때까지 늘 하던 데로 문제집을 풀고, 책을 정리해 가방을 싼 후 교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등교하며 엄마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119에 간단한 전화 한 통을 넣었다. 오후2시 즈음. 사망 진단을 마친 병원에서 연락이 오자 선생님께 몸이 좋지 않다며 조퇴를 한 후 주민센터에 들러 사망신고를 마쳤다. 그리고 화장 처리 시 메모도 잊지 않았다. 슬퍼하지도, 허둥거리지도 않고 담담하게.
-지금 입고 있는 옷 그대로 화장해 주세요. 생전에 가장 좋아하시던 옷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