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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히려 더 좋다 May 30. 2023

독일 쌍무지개 뜨는 마을

#독일 #날씨 #무지개 #행복 #희망

독일 날씨는 참으로 변덕스럽다. 사계절 내내 비가 너무도 자주 온다. 비가 내릴 때도 대부분이 그렇지만 폭우처럼 퍼붓는 것이 아니라, 부슬비나 지나가는 소낙비 정도로 내리고는 한다. 비가 내린다 싶으면 어느새 갑자기 구름 사이로 밝은 햇빛이 쏟아진다. 그러다가 다시 햇빛을 즐길 약간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는 얄궂은 날씨가 하루 종일 (좀.. 과장해서) 이어진다.

 

비 오는 날을 대하는 독일인 태도는 우리의 것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비가 내려도 폭우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산을 쓰지 않고 모자가 달린 레인코트(바람막이 수준의...)를 주로 입고 다니는 것 같다. 바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학생들의 경우, 비가 오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레인코트 혹은 방수용 후드티를 하나씩 가방이나 자전거 배낭에 가지고 다닌다.


비 오는 날 길거리에서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뭐.. 비 오는 것이 대수인가... 하는 표정으로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폭우의 경우는 예외다... 그들도 불편함을 아니까...) 약간의 비만 비쳐도 우산을 펼쳐 드는 우리와는 비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아주 많이) 다르다. 비 내리는 양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으나 어느 정도의 상황에서 우산 없이 그냥 비를 맞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실제로 몇 번 의도적으로 결행(?)을 해본 적이 있었다. 길거리 사람들 대부분이 우산 없이 다니고 있었으니, 남의눈을 의식할 필요 없이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실행이 가능했었다.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가끔은... 운치가 있어서 좋았다. (모든 사람이 우산 쓰고 가는 서울 한 복판에서 혼자 비 맞으면서 걷지는 마시기를...)


어렸을 적 비를 맞으면서... 날궂이(?)를 하던 때를 생각하면... (어른들이 가끔은 꼬맹이들이 비 오는 날 마당에서 물장난하면서 날궂이 하는 것을 허용(방치) 해주시던 기억이 있다)... 가슴이 아련하다.


비 오는 날, 우리나라에서 의도적으로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비  맞으며... 강남 사거리를 걸어 다닐 용기는 체면상으로도 없을 듯하다. 산성비에 미세먼지 가득한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정신상태가 이상한 사람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독일의 경우, 비 맞으며 날궂이를 대놓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 (눈에 띄지 않으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비 오는 날(폭우  오는 날 빼놓고) 우산 없이 레인코트만 챙겨서 슬쩍 밖으로 한 번 나가 보고는 한다. 얼굴에 비도 좀 맞으면서 정신 줄도 챙겨 보고... 하늘로 오르는 비도 경험하면서... (광화문 연가의 하늘로 오르는 눈처럼...) 레인코트 후드의 챙을 때리는  빗소리를 듣다 보면...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귓가에서 연주되는 듯하다. 비가 오면 이 곡을 즐겨 치던 아내의 모습도 함께 오버랩되면서...^^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에도 구름으로 가득 찌푸리고 흐린 날씨가 자주 있다. 특히, 시월에서 사월까지 이어지는 겨울, 햇빛을 거의 볼 수 없는 잿빛 날씨와 같이 우리나라와는 너무도 다른 날씨 때문에 적응하기 매우 힘들었다. 비 내리고 어느 정도의 멜랑꼴리(Melancholy)한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흐린 날씨가 오히려 포근하고 따뜻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점차로 더 강한 인내력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흐린 날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겨울만이라도 어떻게 독일을 벗어나고 싶어 할 정도로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햇빛을 볼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은  우울하다 못해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비타민D 복용이 상식이자 필수라고 했다.  비타민 D 결핍이 우울증 원인이라는 것을 독일에 와서 처음 알았다.


바닥으로 쳐지는 마음을 치유하는 우리 방법은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산책하는 것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도시 중앙로에 있는 조그만 가게들을 하나하나 구경하고, 길거리 음식을 맛보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기분이 점차로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울한 날은 무조건 밖으로 나가시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지속적으로 흐린 날씨 중,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치는 햇살이 그렇게 눈물 나게 반갑고 고맙기까지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항상 우울함 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가져오는... 감동의 선물이 있었으니...


무지개였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탄성을 자아내는 장관... 무지개 향연...




변덕스러운 날씨는 부슬비가 내리다가 갑자기 환한 햇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날씨는 무지개 형성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거의 하루 종일 흐리고 부슬비가 내리다가, 갑자기 강한 햇빛을 보여주는 것을 반복하던 변덕스러운 날씨가 무지개를 형성하는데 딱 맞는 조건을 선사한다. 잔디밭 스프링클러(Sprinkler)가 물줄기를 멀리 뿜어대기 바쁠 때, 흩날리는 미세한 물방울이 밝은 햇빛에 반사되어 만들어내는 무지개를 생각하면, 적절한 무지개 형성 조건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부슬비가 내리다가 순간 내리쬐는 햇빛에 무지개가 생겼다.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걸쳐진 무지개가 풍경에 웅장함을 더한다.


"와.. 무지개다.."


거실 창밖으로 무지개 풍경을 먼저 발견한 아내의 탄성이다.

네카(Neckar) 강을 가로질러 Alte Brücke 위로 큼지막한 무지개가 떴다. 하루 종일 부슬비를 흩뿌리던 날씨가... 미안해서인지... 저무는 하루가 아쉬워서인지... 해 질 무렵이 다 되어 가는 늦은 오후 무렵... 마을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아서 무지개 선물을 걸어 놓았다. 그동안 본 무지개 중에 가장 크고.. 가까이.. 경험할 수 있어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무지개가 만드는 장엄함과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


"무지개 보면 뭐가 생각나?"

무지개에 매료된 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아내가 뜬금없이 묻는다.


"글쎄.. 희망... 행복... 허상.. 잡을 수 없는 꿈.."


"누구나 쫓아가다가 결국은 잡지 못하고(잡을 수 없는) 포기하는... 그런..."


"애완동물이 죽으면 뭐...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고도 하니까... 죽음 뒤의 저세상... 천국으로 이어지는 다리.."

생각나는 대로 주워 담기는 했지만... 대답이 궁(窮)했다. 그것이 무지개에 대한 인식의 전부였다.




"그거 있잖아.. 초등학생 때 교. 과. 서. 에 있었나? 김동인 소설 무지개..."


"주인공 엄마도 오십 일생을 바쳐서 못 잡은 무지개를 잡겠다고.. 주인공도 집을 나섰다가.. 결국은.. 못 잡고.. 집에 돌아와서 늙어 버렸다는... 지금도 초등학생들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지 모르겠네?"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무지개는 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허무적 관념이 뇌리에  강하게 인쇄되어 버린 것은 그때부터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약간은 불순하고, 부정적인 내용이 어린 초등학생의 교과서에 있었다고... 설마..

수긍하기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아마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면 그때부터 늙는다. 그러니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라." 이렇게 가르침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무지개는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로 정의하지 않았을까.. 그래 놓고는, 엄마도 오십 년 동안 못 잡아서 포기했으니.. 너도 포기해라... 결국 아들도 포기하고 돌아와서 늙어 버렸다?.... 어딘가 모르게 좀 어색하다. 소설 자체로는 어떨는지 모르겠으나, 초등학생의 교과서에 실릴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오래전  어른(선생님)과 지금의 어른인 나와.. 해석의 차이가 너무도 크다.  암튼, 초등학생에게 이 소설을 읽으라고 나서서 권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나에게 무지개는 "희망... 야망... 헛된 꿈...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존재... 일곱 색의 다양함" 등을 의미했다. 지금도 꿈꾸고... 쫒고 있는 인생의 목표(목적)... 결국은 달성할 수 없는 (하기 어려운).. 것들을 의미하는 듯했다. 멋들어지고 그럴싸하게 포장된 인생의 헛된 목표를 추구하다가 결국은 지쳐서 스러져 나갈 운명 같은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무지개를 잡는다... 잡았다... 잡을 수 있다... 당분간 화두로 삼아볼 일이다.


어쩌면, 무지개가 의미하는 깨달음은 무지개를 찾아서 가는 과정에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못 잡는 것을 알지만,  그런데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매 순간 과정의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거 알아... 무지개는 말이야..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약속의 징표래.."  또 다른 설명이 이어진다.


"............"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노아의 홍수로 쓸어 버리고... 두려움에 떠는 인간들에게...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의 징표"로 구름 사이에 걸어 놓으신 거래..."


"무지개가 뜨는 한, 인류를 멸망시키는 대홍수는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뭐... 그런 의미..."


아름답기만 한 무지개 뒤편에 이런 종교적 의미가 있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지막 퀴즈.... 우리 동네에 날씨와 무관하게 항상 무지개가 떠 있는데... 어디게?" 아내의 돌발 퀴즈...


"............."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자주 가는 곳....." 아내가 주는 힌트다.


"설마... 네카강가와 철학자의 길에 있는 무지개 의자를 말하는 겨?."


  "딩. 동. 댕. 정답입니다."


무지개색으로 단장된 무지개 의자. 철학자의 길 가장 경치가 좋은 곳 중 한 곳에 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얼마 전부터  의자의 색칠을 다시 하는 것 같았는데, 열 개 중의 한두 개 정도를 무지개색으로 단장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주말 산책 중 커피와 크로와상 타임을 갖고는 하던 예쁜 무지개 의자였다.  이왕이면 예쁘게 칠해 놓은 무지개 의자가 우리의 선택에 있어 항상 우선순위였었다. 어느 순간 이 의자에 앉기가 잠깐 어색해지기 시작했는데... 무지개 의자가 동성애를 상징하는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다양한 의견과 현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기본 생활 철학임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앉는 데  약간의 본능적인 어색함과 주저함이 있었다.  


다양성과 상호존중의 가치에 바탕을 둔, 인간의 존엄성·평등·인권 존중이 독일(유럽연합) 사회의 근본적 가치라고 한다.  동성애자(성소수자)의 입장과 처지를 존중하는 것은 근본가치를 지키는 핵심 사항에 해당한다. 이러한 가치를 지키려는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관찰되는데 무지개 의자도 아마 이 현상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상호존중, 인권 존중이라는 가치에 같은 편에 서는 입장이므로 무지개 의자에 대한  어색함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무지개 의자이든 보통 의자이든 개의치 않기로 했다.


동성애라는 주제를  더 언급하기에는 너무 민감하고 방대하다. 여기서 다룰 내용은 더욱 아니다.

 무지개가 의미하는 희망과 행복, 다양함, 비록 가치관은 다르지만, 누구나 다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다양함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여백이 있는, 그런 성숙한 우리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희망, 행복 그리고 약속을 상징하는 자연의 무지개가 강가를 가로질러 웅장하게 걸쳐있고... 강언덕 한쪽에 같은 내용을 상징하는 또 다른 작은 인공의 무지개와 함께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다.

마치 쌍무지개가  떠 있는 형국이다.




무지개가 사라지고... 해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거리가 서서히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일곱 시 이후에는 온 시내와 마을이 어둠에 갇힌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 고요하게 멈춰 있다. 네카강가를 따라서 이어지는 도로의 가로등만이  어두운 밤거리를 따뜻하게 지켜주고 서 있다.

                    

쌍무지개 뜨는 마을에서...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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