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를 키웠던 오른쪽 옆집과벽간소음으로 냉각기였던 어느 날, 전자렌지에 음식을 넣고 전자렌지 문을 닫는데 여느 때처럼 전자렌지 문이 닫히는 '쾅' 소리가 났다.
“악!”
이런 작은 외침의 소리가 옆집에서 들렸던 것 같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전자렌지 문을 닫을 때 옆집 사람이 벽에 귀를 대서 우리집에서 난 소리를 크게 들은 게 아닐까 싶다. 벽에 귀를 대면 소리가 잘 들리던 그 아파트의 특성상 엄청 시끄러웠을거다.
그동안 아기 울음소리로 날 괴롭힌 걸 생각하면 약간 샘통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귀가 아플까 싶어서 안쓰러웠던 웃픈 추억이다.
하루는 그집에서 이런 소리도 난 적이 있다. 그집 아기가 태어난 지 2~3달 정도 됐을 때 같은데 “야!”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였다. 아침에 부엌 냉장고에 물을 마시러 가는데 갑자기 여자호통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었다.
육아휴직중인건지 아기 아빠가 자주 집에 있었지만 그날은 아마도 아기와 애엄마 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혹시 유아학대라도 있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했었다. 옆집 아기 건강이 괜찮을지많이 염려됐다. 매일같이 집을 부수는 듯한 쾅쾅 소리가 밤낮으로 많이 들렸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태어나 처음으로 경찰서에 전화를 하게 됐다. 그것도 3번이나. "옆집에 아기가 있는데 저렇게 시끄러운 소리가 오랫동안 들려도 괜찮은가"를 물어봤고 윗집 발망치 소리가 새벽에도 2~3시간 동안 지속되어서 너무 힘들다는 것도 하소연해봤다.
하지만 경찰분들도 경비실, 관리사무소와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해결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다만 가서 이웃들이 너무 힘들다고 하니 조용히 해달라고 말을 전해드릴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녹음을 잘 해두시고요. 시끄러울 때마다 증거를 남겨놓으세요.”
정말 정말 진심으로! 집으로 경찰을 부르고 싶었다. 누구라도 의지하고 싶었고 시끄럽게 하는 이웃들을 어떻게든 혼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 보복성으로 더 시끄럽게 할까봐 그렇다. 게다가 본인들이 안했다고 발뺌하면 범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괜히 더 난처해질 수도 있다.
아파트라는 공간이 참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니 어디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알기도 어렵고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인 곳이다. 예전에 어릴 때 아파트에 살 때는 반상회라도 있어서 매번 얼굴 보고 인사하고 지냈는데 ‘온라인 반상회’라도 열면 좀 나아질까. 이웃 사이에 인사는커녕 서로 안괴롭히고 살면 다행인 시대가 됐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데도 매번 시끄러운 옆집들 소리에 잠도 못자고 시달리다보니 심장이 덜덜 떨릴 때도 있었다. 하루는 저녁 식사를 하고 쉬는데 몇시간 동안 어딘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나는 게 억울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만 좀 해요!! 벌써 몇시간 째입니까?
당신들이랑 같은 이웃이라는 게 부끄러워요!
몇 달째 무슨 짓이에요, 정말!”
이렇게 복식호흡으로소리를 지르고나면 이웃들에 다 들리는지 옆집이든 옆윗집이든 싹 다 조용해졌다. 그렇게 하루 정도 조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만하라고 호통을 해도 한시간 뒤에 또 발망치를 시작하기도 했다. 이제 호통에도 면역이 생긴 것이다.
1년동안 조용했던 게 신기할 정도로 이제는 엄청 시끄럽게 싸우던 왼쪽 옆집과 그 윗집을 생각하면 왠지 슬퍼진다. 멀쩡했던 사람들도 이상하게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된 것 같기 때문이다.아파트 단지 어플과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서 보니 다른 동들에도 소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글을 안쓰고 참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런 걸 보면 서울 ㄱㄷ구에 있는 그 아파트는 사람이 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있었던 2층과 그 윗층 3층, 총 6가구에는 정말 사람이 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집에서 아파트 지하 1층 나무계단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는 것처럼, 2층 집들의 소리가 3층 집들에서 굉장히 잘 들리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밤 10시 반쯤 샤워하고 나왔는데 3층 오른쪽 집에서 내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쿵쿵’하고 발로 찍는 소리를 냈다.
남편은 무슨 샤워하는 소리까지 윗집에서 들렸겠냐면서 오버하지 말라고 했지만 난 아마도 이럴 것 같다고 느낀다. 2층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3층에서 들려서 밤에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내게 티낸 것 같다고. 지난번에 손편지에 간식 하나를 첨부한 편지봉투를 주며 자기는 아랫집과 전혀 싸우지 않고 특별히 소리도 잘 안들리고 그저 조용히 지내고 있다던 그 여자분께서 말이다.
도대체 어느 소리까지 들리는 것일까? 한번 3층에 들어가서 2층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이웃집이 한 집이 아니라 양쪽으로 두 집이라서 삶의 에너지도 2배를 더 빼앗겼던 것 같다.
결국 뛰쳐나오듯 시골로 이사를 오고나서 다음 세입자에게 이 상황을 전해주고 집주인과 소음에 대해 상의해보라고 말하고 나온 것이 미안하다. 그러나 나 역시 세입자고 집주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만 하기에 별 수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자고 남은 전세 기간을 참고 해결해보고자 했으나한시도 더 살 수가 없었다.
이사오기 전부터 이 아파트의 여러 부실공사로 이곳저곳에 소리도 지르고 화를 낸 적이 많았었는데 뭐든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화를 낸 것은 더 악수가 되어 돌아왔던 것 같다.
우리 부부 다음으로 그집에 들어올 세입자는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예비 신혼부부였다. 그들이 우리 집에 구경왔을 때 “여기 살기 좋아요?”라고 묻는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남은 양심이었다. 몇초 정적이 흐르자 부동산 아주머니는 얼른 '이 분이 아기도 없어서 아주 깨끗하게 사셨어요. 살기 좋을 거에요."하고 내 대신 대답을 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부동산 아주머니께도 다 말했는데 저 능숙한 멘트란...하긴 이 집이 나가야 나도 이사를 가니 날 도와준거겠지...그래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께름칙하다.
그들은집을 계약하기로 하고 2달 뒤에 들어온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기다릴 것 없이 1주일 뒤에 바로 지금 사는 집 (시골에 있는 즉시 입주 가능한 전원주택)으로 들어오기로 하고 그 아파트는 1달 3주를 비워놨다. 그리고 드디어 보증금을 받던 날, 부동산에서 다음 세입자에게 말했다.
"사실 층간소음, 벽간소음이 심한 집이라 이사한 거예요. 제가 계속 집에만 있고 귀가 밝아 예민한 편이라 더 힘들었을 수 있긴 해요. 결혼식 하고 몇주 뒤에 이사들어온다고 하셨으니까 여기 계신 집주인과 잘 상의해서 소음을 해결해보세요."라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직과 배려였다.
지금은 결혼하셨을텐데 두 분이 행복하게 잘 사시길.
그리고 우리처럼 전세가 아니라 월세로 들어온거니 좀 힘들면 나처럼 참고 버티지 마시고 얼른 다른 좋은 곳으로 이사가시길 기원한다.
우리나라 층간소음 대처시스템의 부재와,
입주한 당사자들은 너무 힘들어서 이사를 가는데 오히려 복비를 받고 돈을 버는 모순된 부동산의 모습과,
딱히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집주인의 뻣뻣한 양심과,
결국 그 시끄러운 집에 다음 세입자를 구할 수밖에 없었던 내 양심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시편 91장 9~11절♡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