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링고 Oct 30. 2022

운명의 갈림길

쿼츠 시계의 몰락

스와치 그룹과 스와치



니콜라스 하이에크(1929-2010)는 1963년 컨설팅 회사인 '하이에크 엔지니어링'을 설립하여 스위스 시계 회사와 유럽의 대기업들을 성공적으로 회생시키며 명성을 얻었다. 1981년 SSIH와 ASUAG에 많은 자금을 빌려주었던 스위스 은행들이 하이에크에게 컨설팅을 의뢰하게 되었다.


SSIH는 1930년 오메가와 티솟이 경제공황을 견디기 위해 통합되어 등장한 대형 시계 그룹으로 1932년에는 크로노그래프 전문 업체인 레마니아가 통합되었다. ASUAG는 1931년 스위스에서 난립했다가 도산의 의기에 처한 에보슈 업체들을 통합하여 생겨난 에보슈 생산 통합 기업이었다. 


'ASUAG는 100개 이상의 회사들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어떤 회사는 크고 어떤 회사는 작고 일부는 현대적이고 일부는 아주 구식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들 대부분이 자체 R&D 부문과 조립라인을 가지고 마케팅도 별로도 하고 있었다. 미친 일이었다.' (하이에크의 인터뷰 중)


하이에크는 적자가 심한 SSIH와 이익을 내고 있었지만 복잡한 조직의 ASUAG를 통합하는 것만이 위기를 벗어나는 일이라는 '하이에크 보고서(Hayek Study)'를 작성하게 된다. 하이에크 보고서에 따라 스위스 은행들은 1983년 두 조직을 통합하여 SMH 그룹이 설립하고, 하이에크를 SMH 그룹 이사회 회장으로 선임한다. SMH의 성장 가능성이 매력을 느낀 하이에크는 1985년에는 투자그룹을 만들어 은행으로부터 SMH그룹의 지분 51%를 매입하여 대주주가 되었다.



하이에크가 SSIH와 ASUAG의 통합을 추진하는 동안 ETA SA의 사장이었던 톰케는 1978년 가장 얇은 쿼츠 시계인 데릴리움을 개발하게 된다. 그리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100개 이상의 부품으로 이루어지던 쿼츠 시계를 51개의 부품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플라스틱 패션 시계 스와치(대중용 데릴리움 : Delirium Vulgare)를 개발하여 1983년에 출시하게 된다. 스와치는 올 플라스틱 시계로 이미 시계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패션을 모티브로 이용한다. 고급 시계들은 스와치 그룹의 오메가, 론진으로 판매하면 되는 것이다.


하에에크와 톰케


톰케가 주도하여 만든 스와치 시계의 성공으로 1984년까지 적자였던 SMH는 1989년 20억 스위스 프랑으로 이익이 증가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Swatch라는 이름은 하이에크가 제안한 'Second Watch'의 줄임말이다.  SMH그룹은 1998년 'Swatch Group'으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


일본 카시오는 스와치가 등장한 1983년 LCD 쿼츠의 장점을 극대화한 G-Shock를 출시했다. 충격에 약한 기계식 시계의 단점을 LCD와 플라스틱으로 극복한 것이다. 방수와 방충 기능을 극대화시킨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 시계였다. 쿼츠 시계가 패션 시계와 프로페셔널 스포츠 시계로 갈리는 시기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염가 브랜드 타이멕스에서도 다양한 LCD 시계에 이어 1984년에는 '아이언맨 트라이애슬론'이라는 방수와 방충에 특화된 스포츠 시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트라이애슬론에 참가하여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겨루는 진짜 스포츠맨들을 위한 시계였다. 기계식 시계로는 도무지 경쟁이 안 되는 진정한 스포츠 시계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1984년에는 미국의 카르트소시스 형제가 홍콩에서 생산되는 저급한 시계들을 세련된 패션으로 포장한 포실(Fossil)을 창업했다. 디자인 때문에 스위스나 일본 제품에 비해 경쟁력이 없었던 홍콩과 중국제 시계들이 포실을 통해 미국 시장과 전 세계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블랑팡과 IWC 등이 본격적으로 컴플리케이션 전쟁을 시작할 무렵 이미 시계 시장은 저렴하고 실용적인 쿼츠 시계와 기계식의 고급 시계로 시장이 양분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계식 시계가 1980년대 중반 이후 부활하게 된 것은 이 무렵부터 쿼츠 시계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들에게 쿼츠 시계는 일회용의 싸구려 시계라는 이미지가 생겨난 덕분이었다. 시계 브랜드들이 럭셔리 시계로 진입할 프레스티지가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성능만으로 카시오나 타이멕스와 경쟁하기 어렵고, 패션만으로는 포실이 생산하는 버버리, DKNY, 엠포리오 아르마니 같은 패션 브랜드 시계들과 경쟁하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이전 12화 컴플리케이션이 답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