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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30. 2022

컴플리케이션이 답이다

기계식 시계의 부활과 컴플리케이션

블랑팡과 IWC의 슈퍼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


1975년 오데마 피게에 입사했다가, 1979년 오메가로 옮긴 쟝 클로드 비버(1949~)는 1735년이 설립되어 스위스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블랑팡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시계 제조나 판매에는 문외한이었던 하이에크의 독단적인 결정에 불만을 느낀 당시 오메가의 사장 프리츠 아만이 사직하고 하이에크가 임명한 새로운 사장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만 사단으로 분류되던 비버는 사장과 함께 사직하고 회사를 떠나게 된다.


르 로클에서 무브먼트 제조 업체를 운영하던 프레드릭 피게와 상의한 후 피게가 흥미를 보이자 21,500 스위스 프랑을 지급하고 오메가가 소속된 SIHH로부터 블랑팡을 브랜드만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프레드릭 피게의 공장에서 가까운 발레 드 쥬의 루이 엘리제 피게의 농장에 회사를 차린다. 


블랑팡 : Blancpain



'Since 1735 Blancpain has never made a quartz watch and never will.'

'1735년부터 블랑팡은 쿼츠 시계를 만든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시작부터 쿼츠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1983년이면 IWC 인제니어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쿼츠의 전성기였다. 당시 30대의 나이로 젊은 사장이었던 비버의 패기와 미래에 대한 믿음이 가져온 도전이었다.



1984년 바젤 페어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블랑팡은 매년 새로운 컴플리케이션을 발표했다. 1986년에는 자동 퍼페츄얼 캘린더 모델을 발표하고, 1988년에는 당시 가장 작은 수동 미니츠 리피터(두께 3.3 밀리)와 자동 미니츠 리피터(두께 4.85 밀리)를 발표했다. 1989년에는 퍼페츄얼 캘린더와 미니츠 리미 터를 결합한 자동 시계를 발표한다. 단기간에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이 오랜 역사를 통해 판매해 온 다양한 컴플리케이션들을 일 년에 한, 두 가지씩 발표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25년 이후 울트라 씬 슬림 무브먼트만을 제조하던 프레드릭 피게는 블랑팡의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위해 퍼페츄얼 캘린더, 미니츠 리피터, 투루비용과 이들을 조합한 다양한 컴플리케이션을 제조할 수 있는 슈퍼 하이엔드 무브먼트 제조 업체로 성장했다.


블랑팡 6 마스터피스

1991년 블랑팡은 손목시계로는 처음으로 이 모든 컴플리케이션을 통합한 '1735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발표한다. 당시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도 도전한 적이 없는 가장 복잡한 손목시계 컴플리케이션이었다. 같은 해에, 블랑팡은 그동안 개발해 온 6가지 손목시계를 '6 마스터피스'라는 이름으로 플레티늄 모델 99 세트의 한정판으로 발표했다. 


블랑팡 1735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빠른 속도로 컴플리케이션의 명가들을 추격하면서 욕심이 과했던 것인 지 이 무렵 자크 피게가 블랑팡과 별도로 운영하던 무브먼트 제조 업체인 프레드릭 피게가 자금난에 봉착하게 된다. 무브먼트 제조업체였던 자크로서는 블랑팡에만 공급해서는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들의 개발비조차 회수할 수 없었다. 


기계식 시계가 곧 부활할 것이라고 믿으며 매년 한, 두 가지의 무브먼트를 개발했던 자크 피게는 무브먼트 개발과 생산설비를 구입하느라 은행에서 빌린 막대한 금액에 대한 이자조차 지급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블랑팡의 지분과 함께 무브먼트 제조업체인 프레드릭 피게를 1991년에 매물로 내놓게 된다. 


1991년 기계식 시계의 인기가 고가의 슈퍼 하이엔드를 중심으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한 스와치의 하이에크는 스와치 그룹에는 없는 고급 에보슈 제조 업체인 프레드릭 피게와 슈퍼 하이엔드 브랜드의 필요성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결국 블랑팡은 창업 8년만에 스와치 그룹으로 넘어가게 된다.자금 문제로 블랑팡을 매각한 직후부터 후회를 거듭하던 비버는 하이에크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블랑팡에서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이에크는 블랑팡의 사장과 함께 오메가를 다시 부흥시키는 일을 맡에 달라고 하여 그는 블랑팡의 사장 겸 오메가의 마케팅 담당 사장을 겸직하여 복귀하게 된다.


비버가 오메가를 떠나 블랑팡을 창업하여 동분서주하는 동안 스와치 그룹의 브랜드들은 하이에크의 지휘 하에 1983년에 발매된 스와치의 성공으로 위기를 벋어나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컴플리케이션 전쟁을 통해 기계식 시계가 부활하며 럭셔리 시계들이 인기를 끌자 브랜드의 고급화가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쿼츠 혁명기 동안 기계식 시계의 부활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비버의 경험은 스와치 그룹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비버는 스와치 그룹에 합류하면서 이사회 멤버가 되어 스와치 그룹의 전반적인 운영에 관여하는 등 파워맨으로 변신하게 된다. 블랑팡으로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지만 이후 비버는 맡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며 실패를 모르는 '전설적인 사장'의 명성을 얻게 된다.



IWC와 다빈치


1978년 도산한 IWC는 독일 자동차 부품 업체인 VDO에 인수된다. 시계 회사 운영 경험이 없던 VDO는 독일 시계 회사인 융한스 출신의 블륌레인을 사장으로 영입한다. 블륌레인이 IWC의 사장으로 취업한 시기는 비버가 블랑팡의 상표권을 구입하여 블랑팡을 창업한 시기였다. 블륌레인이 IWC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IWC는 1970년대 말에 쿼츠 시계와 경쟁하기 위해 오데마 피게, 블랑팡, 파텍 필립 등에서 시작한 컴플리케이션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1985년 IWC의 기계식 시계 복귀작인 다빈치(Da Vinci)는 이런 과정을 통해 준비된 것이다. 


IWC의 다빈치


쿼츠 무브먼트가 등장하면서 생산이 중단되었던 밸쥬 7750은 IWC를 통해 기계식 시계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IWC는 1985년 밸쥬 7750에 퍼페츄얼 캘린더 모듈을 설치하여 다빈치를 발표한다. 이어 1990년 IWC는 밸쥬 7750을 베이스로 르노&파피에서 개발한 미니츠 리피터 모듈을 장착하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발표하게 된다.

IWC  Ref. 3770 Grande Complicaiton


1986년 블륌레인은 막 개업한 르노 & 파피를 찾아가 IWC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에 사용할 미니츠 리피터 모듈의 개발을 의뢰했던 것이다. 3년간의 개발을 거쳐 1989년에 완성된 미니츠 리피터 모듈에 IWC의 커트 클라우스가 개발한 퍼페츄얼 캘린더를 결합하여 밸쥬 7750에 기반한 1990년 IWC 최초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발표되었다.



1970년대 IWC는 내부 기술자들을 대량 해고했으나, 1985년 다빈치의 발표와 성공에 힘입어 젊은 시계 기술자들을 새로 고용하게 된다. 1990년 가을에 IWC의 R&D 팀장으로 입사한 리처드 하브링은 밸쥬 7750에 설치할 스플릿 세컨드를 설계하여 1992년 IWC의 기계식 파일럿 라인의 첫 시계였던 도펠 크로노그래프(Doppel Chronograph)가 발표된다. 



리처드 하브링은 IWC에 입사하기 전 오스트리아의 시계학교에서 투루비용을 만든 경험이 있고 1985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작은 아틀리에를 만들어 활동했었다. 블륌레인은 리처드 하브링이 스플릿 세컨드를 개발한 직후 밸쥬 7750에 설치할 투루비용 개발을 지시하게 된다. 리처드 하브링은 티타늄과 볼 베어링을 사용하여 손목시계 사용할 수 있는 초경량의 투루비용 케이지를 설계했다. 커트 클라우스가 개발한 퍼페츄얼 캘린더, 르노&파피의 미니츠 리피터, 하브링이 설계한 스플릿 세컨드와 투루비용을 하나로 모아 슈퍼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만들어진 것이다.



1993년 IWC의 125주년을 기념하여 투루비용까지 포함하는 IWC의 슈퍼 컴플리케이션 '일 데스트리에로 스카푸시아(Il Destriero Scafusia, Warhorse of Schaffhausen)'가 발표된다. 1991년 블랑팡에서 1735 슈퍼 컴플리케이션이 발표한 지 2년 후였다. 블랑팡과 IWC의 컴플리케이션 경쟁의 마지막 피날레였다. IWC는 블랑팡처럼 과격하게 쿼츠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대신에 블랑팡과 경쟁적으로 컴플리케이션을 매년 발표함으로써 기계식 시계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되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블랑팡, IWC 외에도 1980년대 천문시계와 자크마트(인형) 리피터 시계를 발표한 율리스 나르당, 밸쥬 7750을 베이스로 다양한 크로노그래프 모델을 발표한 '크로노스위스(Chronoswiss)' 등이 컴플리케이션 중심의 시계들을 매년 발표하며 기계식 시계의 부활을 가져온 브랜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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