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모든 생명들이 움츠러드는 계절이고, 움츠림 속에서 다가올 생동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겨울에는 나무도, 풀도, 동물도 모두 웅크리고 낮추고 숙인다. 살아 움직이고, 화사하게 피어나고, 기세 좋게 뻗어 나가고, 아름답게 물드는 것은 다른 계절의 일이다. 겨울은 밖으로 펼치기보다 안으로 성찰하는 시간이다.
모터사이클도 마찬가지다. 겨울에는 라이딩을 하기 어렵고, 한다고 해도 멀리 갈 수는 없다. 11월 말이나 12월 초가 되면 많은 라이더들이 모터사이클을 ‘봉인’한다. 배터리를 분리해서 모터사이클의 생명선을 끊고, 커버를 씌운다. 모터사이클은 이듬해 3월 초까지 그렇게 숨죽인 채 겨울을 난다.
위축된다고 라이딩의 본능이나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라이더의 마음속에는 모터사이클에 대한 조용한 떨림과 라이딩에 대한 신중한 욕망이 유지된다. 새봄에 달리고 싶은 길들을 상상하면서 가슴 설레고, 지난 가을에 누렸던 장소들을 떠올리면서 흐뭇해한다. 그러다가 봉인을 하지 않은 라이더들은 모터사이클을 데리고 짧은 산책 라이딩에 나서기도 한다.
엄혹한 계절에 라이딩을 할 땐 하늘의 사정을 꼼꼼히 살펴서 채비를 한다. 그저 ‘날이 춥구나, 온도가 영하 2도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나서면 길 위에서 큰 문제나 고통을 겪는다. 라이딩 경로를 결정하고 나면, 그 경로에 걸친 장소들의 시간대 별 날씨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장비를 준비한다. 날씨라고 뭉뚱그리지 않고 기온, 강설, 강수, 풍속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강수, 강설, 강풍이 예보되면 라이딩에 나서지 않는다. 겨울의 강수, 강설, 강풍은 라이딩 기어로 감당하지 못한다. 기온에는 라이딩 기어로 대처할 수 있지만, 영하 5도 이하면 라이딩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모터사이클을 달리면 체감 온도는 실제 온도보다 10도 가까이 더 낮아진다.
영하 5도 이상의 맑고 바람 적은 날 라이딩을 할 때라도, 라이딩 기어를 꼼꼼히 단단히 챙겨 입는다. 단단함과 꼼꼼함에는 신중함과 현명함도 필요하다. 추울까봐 지나친 채비를 하면, 모터사이클을 제대로 다루기 힘들고 겨울 도로의 위험에 재빠르게 대처하기 어렵다. 겹겹으로 껴입고, 두터운 글러브를 끼고, 둔탁한 양말과 부츠를 신으면, 몸이 둔해져서 오히려 위험하다. 둔할까봐 부족하게 채비를 하면, 견디기 어려운 추위의 날카로운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추위에 오래 노출되면 손발의 감각이 무뎌져서 모터사이클을 다루는 것이나 외부 위험에 대처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심한 경우 저체온증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현명하고 단단한 준비는 추위를 막으면서도 몸의 민첩함을 유지하고, 민첩함을 위해 감당해야 할 추위를 수용하는 정도로 채비하는 것이다. 상의는 보온 셔츠, 경량 다운패딩, 보온 내피가 달린 겨울용 라이딩 재킷, 그 위에 윈드 브레이커를 입는 정도가 된다. 하의는 보온 이너 팬츠, 라이딩 팬츠, 방풍 방한이 되는 오버 팬츠 정도를 입는다. 만일을 위해 여벌의 상의, 하의, 글러브, 양말은 따로 소지한다.
겨울 라이딩에 나설 때는 길과 땅의 사정을 꼼꼼히 따져서 경로를 결정한다. 짧은 라이딩이지만, 라이딩다운 라이딩을 하려면 체증을 피해 서울 시내를 벗어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강원도나 경기도 쪽으로 너무 멀리 벗어나는 것은 좋지 않다. 오랜 시간 추위를 견뎌야 하고, 교외 도로는 제설이 안되고 교통량이 적어 빙판길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이 아니지만 너무 아니지도 않아 적당한 길이 북한산과 도봉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이 길은 경복궁에서 출발해서 자하문 터널, 세검정, 구기터널, 불광역, 하나고등학교, 북한산성 입구, 송추, 의정부, 도봉산역을 거쳐 서울로 돌아온다. 세 시간이면 넉넉하고, 빙판길이 되는 구간이 거의 없고, 견디기 힘들 때 잠시 몸을 녹일 카페나 편의점이 곳곳에 있고, 문제가 생기면 쉽고 빠르게 도움이나 구난을 받을 수도 있는 길이다.
무엇보다 이 길에서는 겨울 북한산의 낯선 장엄함을 경험할 수 있다. 북한산의 남동쪽인 서울 시내에서 보면, 어디서든 산은 백운대, 인수봉을 중심으로 저 멀리 보인다. 시점과 산의 거리가 멀고, 그 거리를 높은 건물들이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북한산은 아득한 곳 어딘가의 동경과 염원의 장소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산의 북서쪽인 하나고등학교, 북한산성입구, 송추를 잇는 길을 달리면 북한산 암봉들이 거대한 존재감과 경외감으로 압도해 온다. 길이 산자락에 붙어 달려서 길과 산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길과 산의 거리가 없고, 거리를 채운 건물이나 논밭도 없다. 길과 산이 그저 하나다. 산의 일부인 길을 달리는 동안 경사가 급한 산의 암봉들은 아주 가까이에서 압도적인 위세를 펼쳐낸다. 이 길에서의 라이딩은 북한산의 거대한 확장 공간 속으로 몰입하는 듯 느껴진다.
북한산에 대한 돌연한 경탄은 하나고등학교 앞 진관사 입구에서 시작된다. 진관사 입구에 들어서면 시야가 터지면서 오른쪽으로 눈과 겨울 소나무가 듬성듬성한 암봉들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서쪽 끝 보현봉에서 시작해서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용출봉이 이어지며 점차 높아져가다가 의상봉과 원효봉에서 가장 높게 끝을 맺는 암봉군이다. 북한산성입구교차로에 이르면, 오른쪽 정면으로 두 개의 높은 봉우리가 당당하다. 왼쪽이 원효봉이고, 오른쪽이 의상봉이다. 원효봉은 매끈한 바위 몸통에 정상부가 널찍하고, 의상봉은 좁은 삼각형 모양으로 날카롭고 뾰족한 정상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지난 여름에 ‘원효는 넓고, 의상은 우뚝하네’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앎이 있는 사람들의 느낌과 통찰은 모두 통하는 듯하다.
모터사이클을 타면 두렵다. 두려움을 몰라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이 아니다. 모터사이클이 두려운 이유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모터사이클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모터사이클에 위험과 리스크가 없다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위험과 불확실성이 불가피하지만, 그런 성격을 이해하고 타면 걱정보다는 안전하게 탈 수 있다는 말에 가깝다. 위험, 두려움, 불안을 수용해서 그것들을 직시하면서 하는 것이 라이딩이다. 위험을 피하면 라이딩을 할 수 없고, 라이딩을 할 때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두려움은 공포로 바뀐다. 숙련된 라이더도 예외가 아니다.
모터사이클에 따르는 위험, 불안과 두려움의 바탕은 다양하다. 자동차, 다른 모터사이클, 자전거, 보행자, 고라니를 비롯한 동물 같이 길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잠재적 위험이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위험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크게 굽은 코너, 각도가 센 경사로, 손상된 노면, 노면 위의 모래, 못, 눈과 비, 갑작스러운 모터사이클의 트러블과 고장 같이 움직이지 않는 것들도 위험할 수 있다. 라이더가 어쩔 수 없는 외부의 위험들이다.
라이더가 자초하는 위험들도 다양하다. 모터사이클의 특징에 대한 이해 부족, 모터사이클을 다루기 위한 테크닉의 미숙련, 가야 할 길과 장소에 대한 이해와 준비의 부족, 계획도 준비도 없는 무모한 용기, 책임감으로 맞서야 할 위험한 순간에 집중과 판단을 놓치게 되는 공포감, 자신의 실수와 타인의 도발을 용인하지 못하는 초조함과 속좁음, 이 모든 것들이 라이더 내부에서 비롯되는 위험들이다.
라이더가 내부적, 외부적 위험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문제없이 넘어서기 위해서는, 라이딩을 하기 위해서는, 불신과 믿음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안전하려면 길을 적당히 불신해야 하고, 다른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을 어느 정도 불신해야 하고, 자신의 모터사이클도 정당하게 불신해야 한다. 그래야 주의를 기울이고 점검하고 대비한다. 동시에 길, 다른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자신의 모터사이클이 그렇게 허술하거나 날림이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격과 요건을 갖추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길 위에서 공존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라이딩에 필요한 자신의 능력, 그 능력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감각과 판단을 건전하게 회의하면서도 신뢰해야 한다. 자신을 믿지 말아야 신중해지고, 믿어야 더 좋은 라이딩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모터사이클 라이딩은 언제나 위험하고 두렵지만, 겨울에는 그 위험과 두려움의 감각이 좀 더 커진다. 기온이 떨어지고, 노면이 얼고, 모터사이클이 식고, 라이더의 감각과 몸이 굳어져서 위험이 커진다. 두려움과 불안을 이완시켜주는 훈훈한 바람, 푸른 산과 들, 아름다운 하늘과 강의 여유로움 없이 찬바람을 맞으며 라이딩에 집중하기에 투명한 두려움에 맞닥뜨린다. 모터사이클 라이딩의 두려운 본성을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그 두려움을 통과해 나가는 과정이 라이딩이라는 걸 이 겨울에 새롭게 깨닫는다. 모터사이클을 탄다는 건 어쩌면 모터사이클에 대한, 하늘과 땅과 길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와 통찰의 과정이라는 생각도 이 겨울에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