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이지 Jul 25. 2022

속도와 리듬 : 상황에 맞는 기어비와 회전수

모터사이클을 타는 건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다. 속도 제어는 모터사이클 타기의 거의 모든 것이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균형도 속도로 잡는다.


고속에서만 속도 제어가 필요한 게 아니다. 어떤 속도에서나 필요하다. 열에 들떠 모터사이클을 원했을 때도 고속주행은 두려웠다. 아차 하는 순간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무서웠다. 무섭지만 피할 수 없으니 걱정이 컸다. 모터사이클을 시작하고 나서 저속이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터사이클은 속도가 빠르면 안정적이고, 느리면 불안하다. 느린 채 불안한 속도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제어가 섬세해야 한다. 긴장한 초심자에게 섬세하기란 쉽지 않다. 고속과 저속 사이의 속도 제어는 모호하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데, ‘적당한’이 ‘너무나’ 다양하다. 지형, 교통량, 날씨, 심지어 라이더의 몸 상태나 기분에 따라 적당한 속도가 모두 다르다. 속도 제어가 필요하지만, 그게 무섭고 어렵고 모호할 때가 많다.


속도 제어가 중요한 만큼 전문적 라이더가 아닌데도 완벽함을 추구하게 된다. 지형을 읽고, 교통량과 날씨를 고려해서 적합한 속도를 결정한다. 결정된 속도를 만들기 위해, 변속 타이밍을 잡아 기어 단수를 변경하고 엔진 회전수를 맞춘다. 상황에 맞는 기어와 회전수가 정확한 타이밍에 싱크를 이루면, 그건 정교함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한 변속이 된다. 아름다운 변속을 하면 기쁘고 뿌듯하다. 물론 이 모든 건 일일이 계산해서 순서대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그냥 이루어질수록 좋다.


현실에서 아름다운 변속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타이밍이 조금 빠르거나, 조금 늦을 때가 많다. 기어가 한 단 높거나, 한 단 낮을 때도 있다. 회전수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경우도 잦다. 가장 자주 벌어지는 일은 기어가 높은 데 회전수가 낮거나, 기어가 낮은데 회전수가 지나친 것이다. 기어가 높고 회전수가 모자랄 때, 모터사이클은 힘이 달려 꿀럭거린다. 엔진, 기어, 구동계 부품들에 구조적인 무리를 준다. 시동이 꺼지기도 한다. 기어가 낮은데 회전수가 넘치면, 엔진과 구동계가 앵앵거리고 갈리면서 힘을 허공에 뿌린다. 엔진이 과열되고, 연료, 오일, 클러치 같은 부품들이 소모되고 마모된다. 아름다운 변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언가 부러지고 깨지거나, 갈리고 닳을 위험이 커진다.


변속을 잘하려면 기어와 회전수를 잘 써야 한다. 속도를 높이려면 기어를 올리거나, 회전수를 높인다. 기어와 회전수를 함께 올리면 속도가 더 빨리 올라간다. 속도를 낮추는 것은 기어를 낮추거나 회전수를 줄이면 되고, 기어와 회전수를 모두 낮추면 속도가 크게 줄어든다. 변속을 할 때 클러치와 브레이크도 쓰지만, 이것들은 기어와 회전수로 속도 조절을 할 때 잠깐 개입할 뿐이다. 속도 제어의 기본은 기어와 회전수다.


기어와 회전수는 변속과 속도 제어에서 하는 일이 다르다. 기어는 속도의 기대치나 차원을 설정하고, 회전수는  기대치를 실행한다. 라이더는 자기 모터사이클의 기어 단수  속도를 안다. 나의 GS 회전수가 3,000 rpm  1단에서 20km, 2단에서 40km, 3단에서 60km, 4단에서 70km, 5단에서 80km, 6단에서 90km 정도로 달린다. 이게 기본이다.  기본 속도에 회전수를  주거나  주면 같은 단수에서도 속도가  빨라지거나 늦어진다.


엔진 회전수로 속도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지만, 기어 단수의 차원이나 한계를 넘어갈 수는 없다. 1단 기어에서도 회전수를 많이 높이면 2단 기어에서 회전수를 낮게 쓸 때보다 빨리 간다. 그렇다고 2단 기어에서 회전수를 적절하게 쓸 때보다 빨리 가는 건 아니다. 낮은 단수에서도 높은 회전수로 빨리 갈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다. 지나친 고회전은 모터사이클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더들은 필요할 때만 잠깐 그렇게 한다. 회전수는 기어의 경계 안에서 쓰는 게 좋다.


회전수가 기어의 범위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역할이 작은 것은 아니다. 속도를 높이려고 기어를 올렸을 , 회전수가 충분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의도한 만큼의 속도를 얻지 못한다. 버겁고 힘들어서 모터사이클이 치고 나가질 못한다. 이럴  기어를 다시 내리고 회전수를 붙여서 힘을 회복한 후에 재차 변속을 시도해야 한다. 이런 일이 없으려면 기어를 올림과 동시에 스로틀을 열고 회전수를 높여서 힘을 붙여줘야 한다. 회전수로 힘을 받쳐주지 않으면 속도의 다음 차원은 이를 수 없는 것이 된다.


시속 100km가 넘는 빠른 속도 대역에 들어가면 회전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고단 기어인 5단과 6단에서도 최소한의 안정적 엔진 회전을 확보하는 3,000 rpm 정도로는 시속 100km를 넘지 못한다. 더 빨리 가려면 스로틀을 열어 회전수를 높여야한다. 회전수를 높이면 모터사이클이 힘을 얻어 이론적으로는 시속 200km를 넘어설 수도 있다. 실제로 넘어설 것인가 말 것인가는 라이더의 결정이고 선택이다.  


속도의 차원을 놓는 기어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라이딩의 상황이다. 1단은 시동을 건 후 모터사이클을 출발시킬 때 잠깐 쓴다. 2단은 중속 기어로 옮겨가기 위해 가속을 하는 용도로 쓴다. 차가 막히는 시내를 이동할 때, 경사가 급한 언덕을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급격하게 꺾이는 코너 구간을 지날 때도 쓴다. 3단과 4단이 대부분의 주행 상황을 맡는다. 체증이 없는 시내, 적당한 굽이침과 경사가 있는 교외의 2차선 국도를 달리기에 적합하고 쾌적하다. 5단과 6단은 고속 주행에 쓴다. 심한 경사와 코너가 없는 4차선 국도를 크루징 하듯 날렵하게 달릴 때 쓴다. 상황에 따른 기어 선택이 매끄러운 라이딩에 필수다.


상황을 잘못 읽고 기어를 선택하면, 회전수로 수습하기 어렵다. 멈췄다가 2단이나 3단으로 출발을 하려고 하면, 스로틀을 열어 회전수를 주어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나가더라도 가까스로 가거나 시동이 꺼지기 십상이다. 지방 국도를 높은 기어로 달리다가 경사 급한 고갯길에 접어들 때, 딴 데 정신이 팔려 기어를 낮출 타이밍을 놓치면 낭패를 본다. 회전수를 높여도 치고 올라가지를 못한다. 재빨리 기어를 낮춰 수습하지 못하면, 멈춰 서거나 시동이 꺼지기도 한다. 상황을 오판하면 난감해진다.


모터사이클 타기는 상황에 맞는 기어의 선택으로 시작되고, 기어에 맞는 회전수의 맞춤으로 마무리된다. 속도를 제어하는 건 순간마다 기어를 결정하고, 기어마다 회전수로 뒤를 받쳐주는 일의 연속이다. 한 번의 라이딩에서도 상황 변화는 끝이 없다. 출발, 가속, 시내, 2차선, 4차선, 급커브, 급경사가 이어지고 섞인다. 모터사이클의 기어와 회전수도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여유롭게 상황을 타며 바뀐다. 제대로만 하면 속도를 제어하는 건 나의 단속적인 동작이 아니라 길의 흐름과 리듬이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변속을 하며 리드미컬한 라이딩을 하는 게 라이더의 상상이고 바램이다. 현실은 다르다. 조금씩의 타이밍 미스, 기어 미스, 회전수 미스, 거기에 더해 클러치 미스와 브레이킹 미스 투성이다. 될까 하고 기어를 넣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빼는 시행착오의 연속이기도 하다. 가능하겠다 싶어 회전수를 높였다가 아니지 싶으면 낮추는 간 보기의 반복이기도 하다. 신기한 건 실수, 시행착오, 간 보기의 열쩍음이 길의 리듬을 타다 보면 참을 만 해지는 것이다. 그게 용납되는 걸 보는 게 싫지 않아진다는 것이다.  


기어와 회전수, 기대와 실력이 어긋나는 작은 쓰라림들을 지긋이 감당해내는 게 라이더로서 철이 드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신경을 온통 모터사이클 조작에 쏟느라 풍경도, 노면도, 하늘도 마음에 들이지 못하던 때들이 지나가고 있다. 작은 실수와 시행착오에 남몰래 몸을 떠는 일도 줄고 있다. 실수와 자책을 안고 길의 리듬을 타는 법도 알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프로처럼 타는 라이더들을 보면 곁눈이 간다. 철이 들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끝이란 건 없지 싶다.


이전 05화 건실함과 짜릿함 : 모터사이클의 본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