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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이지 Jul 19. 2022

건실함과 짜릿함 : 모터사이클의 본성

영혼을 위한 강원도 모터사이클 여행

성격이 다른 두 대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다. 하나는 GS, 다른 하나는 Monster다. 이 두 모터사이클은 크기, 디자인, 기능, 작동감, 주행감 어떤 면으로 보나 뚜렷이 대비된다.


GS는 한 덩치 한다. 키가 크고 생김이 우람하다. 무게가 240kg이다. 커다란 엔진이 차체 밖으로 넓고 낮게 돌출되어 있다. 연료 탱크가 엔진 위쪽 높은 위치에 큼지막하게 역시 좌우로 돌출되어 있다. 앞쪽에는 핸들바가 양쪽으로 넓게 뻗어있다. 용접 비드를 굳이 숨기지 않은 두꺼운 프레임이 이 모든 것들을 담아내고 지지한다. 건장한 체구다.


외모는 기능적이다. 시선을 끌려고 하는 게 하나도 없다. 반짝이는 크롬 없이 알루미늄, 스틸, 플라스틱을 소재로 섰다. 칼라는 회색, 검은색, 흰색 뿐인데, 세 가지 색 모두 광택이나 투명함 없이 낮은 채도와 명도로 덤덤하다. 장식을 위한 덧댐은 없고, 엔진과 전기 케이블들을 보호하기 위한 커버는 충실하다. 건실한 모습이다.


기능은 용도와 편의에 필요한 것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안전을 위해 지능적인 ABS 갖추고, 앞뒤가 연동되는 최고 사양의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다. 노면과 날씨에 따라 선택할  있는 다섯 가지 라이딩 모드가 있다. 서스펜션은 동승자 여부와 화물 양에 따라 세팅을 전자제어할  있다. 연료량, 남은 연료량으로 운행할  있는 거리, 타이어 압력, 엔진오일 양을 센싱해서 상시적으로 알려준다. 핸들바에는  단계로 조절되는 히팅 그립이 들어 있다. 장시간이나 장거리 라이딩  피로를 덜어줄  있는 크루즈 컨트롤이 있고, 클러치 조작 없이 변속이 가능한 퀵쉬프터도 있다. 상태에 문제가 있거나 라이더 실수로 비정상적인 작동이 일어나면 워닝과 함께 시스템이 개입한다. 믿을  있다.


작동감은 두툼하다. 시동을 걸면 엔진이 투박하게 돌아간다. 쉭쉭거리고 덜그럭거린다. 1단 기어를 넣으면 철커덩하고 쉿덩어리 맞물리는 소리가 깊숙한 피드백 반동과 함께 만들어진다. 경운기나 트랙터 같은 농기계, 덤프트럭이나 포클레인 같은 산업기계 느낌이다. 투박하고 강인하다.


달릴 때는 노면을 움켜쥐고 달린다. 힘이 충분하지만 그 힘을 뛰쳐나가는데 쓰기보다 노면을 틀어쥐는데 쓴다. 단단히 밀착하고 확실하게 앞으로 나간다. 쓰로틀을 열어 가속을 하면 꾸준하게, 연속적으로, 일관되게 속도를 올려붙인다. 코너에 진입할 땐 부드럽게 눕고 빠져나올 땐 저절로 일어난다. 좌우로 눕힐 때 각도가 커지면 ‘여기까지’ 하는 느낌으로 탄력 있는 저항감을 준다. 믿고 마음껏 눕혀볼 수 있다. 묵직하고 확실하다.


Monster는 핏하다. 차체가 콤팩트하고, 생김이 유려하다. 무게가 200kg이다. 엔진이 차체와 단차 없이 자리 잡고 있다. 연료 탱크는 비례에 맞는 크기로 프레임에 얹어져 있다. 핸들바는 어깨보다 조금 넓은 길이다. 프레임은 기하학적 구조로 작고 단단하다. 프레임이 엔진을 품지 않고 프레임과 엔진이 각각의 모듈로 서로 결합되어 구조적 안정성을 만든다. 군더더기 없이 탄탄하다.


외양은 매혹적이다. 심플한데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크롬, 복잡한 문양이나 모양을 가진 장식이 없다. 칼라는 빨강과 검정뿐이지만, 빨강이 선명하고 투명해서 햇볕을 받으면 말갛고 영롱하게 빛난다. 부드럽게 굴곡진 볼륨의 연료 탱크와 우아한 리듬으로 휘어진 배기 파이프는 생동감 있는 실루엣을 만든다. 단아하고 고혹적이다.


기능은 단출하다.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ABS, 노면과 날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라이딩 모드가 전부다. 서스펜션은 하드하게 고정되어 있다. 남은 연료량이 얼마인지, 남은 연료로 얼마를 더 갈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타이어 압력, 엔진오일 양을 알려주는 것도 없다. 주행에 필요한 데이터는 라이더의 기억, 경험, 감, 주의 깊은 관찰과 판단으로  대신한다. 히팅 그립이 없으니 방한이 확실한 글러브를 끼거나 손시린 걸 감수하고 타야 한다. 크루즈 컨트롤이나 퀵쉬프터는 당연하게도 없다. 믿을 건 모터사이클이 아니라 자신이다.


작동감은 아쌀하고 쌀쌀맞다. 웅크린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시동을 걸면 엔진이 날카롭게 돈다. 건조하고, 높고, 앙칼지게 그르렁거린다. 1단 기어를 넣으면 탕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어가 맞물리고, 그걸로 끝이다. 피드백 반동 같은 것은 없다. 1200 rpm에서 아이들링 하면서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을 보인다. 허툰데 없는 칼각이다.


달릴 때는 쫀쫀하고 민첩하다. 노면을 박차듯이 달린다. 아침잠이 덜 깬 채 무심코 쓰로틀을 열었다간 화들짝 잠이 깬다. 몸이 뒤로 휙 제쳐진다. 속도를 붙여 달리기 시작하면 쓰로틀, 엔진, 기어, 바퀴를 거쳐 노면으로 전달되는 힘이 쫀쫀하다. 누락과 이격이 없다. 가속을 하면 기어 단수와 단수를 점프하듯 속도의 차원들을 확실한 차이로 쌓아간다. 코너에 진입할 땐 날렵하게 눕고 빠져나올 땐 바람같이 일어난다. 좌우로 눕힐 때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받쳐주는 저항감 같은 것은 없다. 무서워서 많이 눕히지 못한다. 재빠르고 빠릿하게 치고 달린다.


GS는 기능적이고 건실한데, Monster는 감각적이고 매혹적이다. GS는 3,000 rpm 낮은 톤에서 안정적이고, Monster는 4,000 rpm 높은 톤에서 안정적이다. 먼 거리를 편하게 여행할 때 GS를 탄다. 시내나 가까운 거리에서 기분을 낼 때는 Monster를 탄다. 동승자가 있을 땐 GS를 타고, 혼자일 땐 Monster를 탄다. 바람, 비, 추위를 피하기 위한 장비를 갖출 땐 GS를 타지만, Monster를 탈 땐 맨몸으로 비나 바람을 기꺼이 맞는다. GS를 탈 땐 반듯한 마음으로 타지만, Monster는 일탈의 은밀함을 품고 탄다.


GS는 사실 이름 없는 모터사이클이다. 개성 없이 용도와 기능만으로 불리는 모터사이클이다. G와 S는 비포장 도로와 포장도로라는 독일어의 머릿 글자다*. 온전한 이름이 R 1200 GS인데, 풀어쓰면 ‘R 타입 1200cc 엔진을 가진 비포장 도로 및 포장 도로 겸용’ 정도가 된다. 모델명을 이름으로 가졌다. 생각해보면 서럽고 눈물 나는 이름이다.


Monster는 이름이 있는 모터사이클이다. 또렷한 개성을 담은 이름이다. Monster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게 어떤 모터사이클일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온전한 이름이 Monster 821인데, 풀자면 ‘821cc 엔진을 가진 괴수’가 된다. 실용과 편리는 잊고 홀리기와 달리기에 전념하는 본성에 맞는 이름이다.


돌아보니 GS의 본성으로 살아온 것 같다, 건실하려고 애쓰면서. 다시 돌아보니 Monster의 모습을 은밀히 욕망하기도 한 것 같다, 핏하고 매혹적이고 짜릿한. 어쩌면 Monster 본성, GS 모습이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나만 그럴 것 같지도 않다.


* GS는 모델 출시 초기에는 Gelände Sport, 나중에는 Gelände/Straße의 약어로 사용함. Gelände는 Cross-country로 비포장 도로를, Straße는 Street 또는 Road로 포장 도로를 의미함 (https://de.wikipedia.org/wiki/BMW_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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