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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이지 Jul 15. 2022

욕망, 두려움, 새로운 욕망 : 모터사이클의 시작

영혼을 위한 강원도 모터사이클 여행

모터사이클을 갖기를 원했었다. 모터사이클 타기를 오랫동안 바랬었다. 이십대에도, 삼십대에도 마음 속에 품고 살았었다. 모터사이클을 보면 끌렸고, 라이더들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눈빛으로 따라가곤 했었다. 식구들이나 친구들에게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었다.


모터사이클을 마음에 두고 사는 동안 모터사이클을 타본 적이 없다. 앉아보거나 손을 대보지도 않았다. 딜러숍을 방문한 적도 없고, 2종 소형 면허를 따지도 않았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거리를 뒀다.


욕망이 모터사이클을 시작하게 하고, 두려움이 그 욕망을 접게 한다. 모터사이클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 속에서 욕망으로 시작하고 두려움으로 접는 일들이 반복된다. ‘쿨하다, 멋지다’는 욕망과 ‘사고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 가까워지면 욕망과 두려움의 파고가 커지고, 이 둘이 뒤채이는 주기가 빨라진다. 그러다 어느 날 시작하게 된다.


‘쿨하다, 멋지다’는 욕망은 들여다보면 하나가 아니다. 욕망 안에 욕망들이 들어 있다. 모터사이클은 이왕이면 좋은 것을 갖길 원한다. 좋은 브랜드에 배기량이 높고 디자인도 멋진 최신 모델을 사고 싶다. 시선을 끄는 멋진 디자인의 라이딩 재킷, 화려하고 과감한 그래픽의 헬멧, 전문적이고 첨단적으로 보이는 레이싱 부츠로 라이딩 기어 일습도 갖추고 싶다. 그런 멋진 모터사이클과 라이딩 기어를 갖추고 주말이면 양평, 춘천, 강릉, 속초로 가슴 시원한 라이딩을 하고 싶다. 맛집에 가서 입맛에 맞는 점심을 먹고 멋진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


원하는 것들을 다 저지를 수는 없다. 최신의 고배기량 모터사이클일 수록 초심자가 감당하기 어렵다. 브랜드 좋고 디자인 좋은 모터사이클과 라이딩 기어를 갖추자면 돈이 많이 든다. 교외로 솔로 라이딩을 가면 두고 간 안사람 생각에 마음이 쓰인다.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 자식들이 마음에 걸린다.


모터사이클을 시작하며 욕망과 두려움에 휘둘릴 때, 하고 싶은 것과 해서는 안될 것 같은 것들 사이에서 쩔쩔맬 때, 엉거주춤한 선택을 하는 실수가 벌어지기 십상이다. 어정쩡한 모터사이클을 사고는 곧장 후회를 한다. 마음에 차지 않는 재킷, 헬멧, 부츠를 사놓고는 이내 업그레이드를 한다. 그렇게 몇 달 타다간 결국 모터사이클도 업그레이드를 하게 된다. 욕망이 두려움을, 두려움이 욕망을, 욕망이 다시 두려움을 넘어서는 뒤채임이 계속되면 냉정을 잃어 어정쩡한 선택을 할 위험이 커진다. 어정쩡한 선택은 혼란을 일으키고 불만을 키운다.


욕망과 두려움이 뒤채이고 들끓을 때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좋다. 모터사이클에서 욕망을 이기거나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라이딩은 취미고, 모터사이클은 기호품이다. 기호는 욕망, 감각, 취향의 점잖은 말이다. 욕망, 감각, 취향의 공통점은 섬세한 차이가 가져오는 만족스러움의 정도를 분간하는 것이고, 만족스러움의 추구가 완벽을 지향하는 경향을 갖는 것이다. 욕망의 물건을 선택하고 욕망을 부정하는 것은 성립하기 어렵다.


가끔 욕망을 이겼거나 없앴다고 믿어질 때도 있지만, 실상은 미뤘거나 내려뒀을 때가 대부분이다. 미뤄놓고 내려놓고 안 보이게 치워 놓은 욕망은 조그만 자극에도 다시 살아난다. 모터사이클과 라이딩 기어가 칼라풀하고 도발적인 디자인을 한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날카롭고 끈덕진 도발과 유혹에 매번 넘어가는 것도 답은 아니다. 사실은 욕망에 넘어가고 싶어도 매번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욕망을 못 본 체하고 도발에 의연한 체할 수 있게 해주는 두려움과 걱정이 늘 욕망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걱정이 가책, 양심, 분별력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해법은 욕망을 따를 때와 두려움을 따를 때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욕망과 두려움을 직시하고 분간할 필요가 있다. 욕망은 뜨겁고, 솟아오르고, 천연색이고, 달콤하고 매콤하며, 속살거리고, 바람 같이 오고 간다. 두려움은 서늘하고, 낮고, 무채색이거나 회색이고, 무미하거나 씁쓸하고, 말이 없고, 그늘 같이 늘 드리우고 있다. 욕망은 일어서서 나서려고 하고, 두려움은 주저앉아 지켜본다.


욕망과 두려움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뱃심이 느껴지면, 가급적 따르는 게 좋다. 다른 쪽을 돌아보게 되지만, 웬만하면 따르는 게 후회할 일이 적어진다. 뱃심대로 하다가 늘 욕망을 따르게 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늘 두려움을 따르게 될 일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욕망과 두려움은 대개 함께 오기에 정직하게 직시하면 균형이 크게 어그러지지 않는다. 지금은 욕망의 때라는 것, 지금은 두려움의 때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선택하면, 많은 것이 간명해진다. 욕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어정쩡한 선택이 반복되면, 많은 것이 모호하고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워진다. 적어도 모터사이클에서는 그렇다.  


저지르라고 하는 욕망이 나쁜 것이 아니다. 참으라고 하는 두려움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다. 욕망은 곁눈질하고, 앞으로 나가고, 위로 올라가고, 넘어선다. 두려움은 전방을 주시하고, 자리를 지키고, 몸을 낮추고, 안에 머문다. 욕망은 한계를 넘어서고, 확장하고, 변화시키고, 다채롭게 한다. 두려움은 경계를 지키고, 내실을 다지고, 일관성을 따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한다. 욕망은 촉발하고 추동하지만, 지나치면 파괴적이다. 두려움은 안정시키고 진정시키지만, 지나치면 옹색하고 답답해진다. 두려움으로 관리되는 욕망을 따르는 사람에게서는 여유와 매력과 자존이 느껴진다.


모터사이클이 두렵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라이더들도 두려움을 안고 모터사이클을 시작한다. 두려움보다 욕망을 따른 선택이다. 욕망을 선택하고도  시동을  ,  1 기어를 넣을 , 흥분이 섞인 두려움으로 호흡이 가빠진다. 도로에 나가면 시속 삼사십 킬로미터를 넘기지 못한다. 자동차들에 겁먹고 치여서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시작의 짧은 욕망 뒤에   두려움의 시간을 맞는다. 두려움의 시간을 통과하며 라이딩을 하고, 재킷과 헬멧과 부츠와 글러브 사들인다. 두려움과 욕망은 하나인 듯하다.  


그렇게 초심자를 벗어난다. 욕망과 두려움의 사이클을 거치며 초심자가 라이더가 된다. 그러면 새로운 욕망들이 찾아든다. 익숙하지 않은 , 가보지 않은 길이 가보고 싶어진다.   여정을 떠나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장소에 가고 싶어진다. 평화롭고 아늑한 길과 장소를 여행하고 싶어진다. 고독하게 깊어질  있는 곳을 여행하고 싶어진다. 느긋하고 낭만적이고 아취가 있는 장소를 찾게 된다. 길과 장소들에서  섬세하고 깊게 공감하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능력에 부치는 속도나 뱅킹각으로 한계를 넘어볼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원하고 생각한 것들을 시도하고 경험하면서 감각, 감정, 생각이 넓고 깊어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느낌은 라이딩에서 생활로 돌아와도 한동안 지속된다*.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사고로 걱정을 끼친 적이 없다. 분수에 넘치는 돈을 써서 원망을   같지도 않다. 차들의 흐름대로 같이 흐름을 탈 수 있게도 되었다. 모터사이클을 타는  행색이 크게 누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욕망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자책하는 일도 줄었다. 두려움을 가진 나를 별달리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주   있게 되었다. 모터사이클 타는 것에 우쭐해하거나, 라이더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일도 잦아들었다. 조금은 편안하고 느긋하다.


바린이는 벗어난  같다.


* 솔로 프리스타일 알피니스트 마크 안드레 르클렉은 “산에 다녀오면 어떤 상태의 기분에 휩싸이는데, 내려와서도 한동안 지속돼요”라고 말했다. 조선일보(202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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