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넬 코코마드모아젤이라는 향수를 뿌린다.
이십대 중반때부터 뿌려왔으니 얼추 10여년동안 나의 시그니처향으로 자리잡은 향수이다.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백화점에 가서 나를 위한 선물로 고른 향수이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어른이 되면 꼭 샤넬 No.5를 뿌리는 여자가 되어야지라고 다짐했지만, 정작 No.5는 나에게 어울리지가 않았다. 샤넬의 다른 향수 라인들을 다 뿌려봐도 나와 어울리는 향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뿌린 향수가 코코마드모아젤이었다. 백화점에 1층 화장품코너 냄새라고 할 수 있을만큼 향기에 대한 이미지가 화려하면서도 스탠다드했다. 그리고 나와 너무 잘 어울렸다. 그 이후 줄곧 외출시에 듬뿍 뿌려왔었다. 지금도 100ml 뜯지 않은 향수가 화장대 한 켠에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백수가 된 지금도 나는 이 향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질려서 다른 향수로 갈아탔다가도 결국에는 이 향수로 돌아오는걸 보면 아직 나와 맞는 다른 향기는 못 찾은것 같다. 백수에게 외출하는 날은 손에 꼽을 것이다. 특히 나의 경우 세미 히키코모리라고 할 정도로 동네를 벗어나질 않는다. 늘 복장은 츄리닝에 맨투맨이며, 머리는 질끈 묶거나 모자를 눌러쓴다.
한동안은 복장이 너무 캐쥬얼하고 편해서, 또 동네 외출이니까라는 이유로 향수를 뿌리지 않았었다. 한껏 꾸미고 자신감 넘칠 때 뿌리는 나만의 향기가 샤넬 코코마드모아젤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수의 나날이 길어지면서 나만의 자신감도 낮아지고, 자존감도 낮아졌다. 그리고 한 구석에 치워뒀던 향수가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츄리닝을 입든 머리를 질끈 똥머리를 하든 어떤 구질구질한 모습에서도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부끄러웠다. T.P.O에 맞지 않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몸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나니 나의 기본 텐션도 높아지고, 츄리닝을 입더라도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백수의 애티튜드가 달라졌다.
그 이후, 자고 일어나서 씻고 무조건 향수를 뿌렸다. 집에서도 뿌리고, 외출시에도 뿌렸다. 하지만 이 한가지로 나의 생활 패턴은 달려졌다. 게으르고 늘어졌던 삶이 타이트해지고 부지런해지기 시작했다. 멍을 때리더라도 절대 눕지 않고 앉아서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하는 등 뭔가 실용적이고 나에게 도움 되는 행동들을 찾아서 했다. 루틴이 바뀌었다.
나는 백수의 샤넬 코코마드모아젤을 뿌리는 여자다.
향기의 힘은 대단하다. 그 사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나의 체취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표현되기를 원하는지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는 샤넬 향수를 뿌린다. 샤넬향수를 뿌리는 백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