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킴 Jan 10. 2024

샤넬 향수를 뿌리는 백수

나는 샤넬 코코마드모아젤이라는 향수를 뿌린다.

이십대 중반때부터 뿌려왔으니 얼추 10여년동안 나의 시그니처향으로 자리잡은 향수이다.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백화점에 가서 나를 위한 선물로 고른 향수이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어른이 되면 꼭 샤넬 No.5를 뿌리는 여자가 되어야지라고 다짐했지만, 정작 No.5는 나에게 어울리지가 않았다. 샤넬의 다른 향수 라인들을 다 뿌려봐도 나와 어울리는 향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뿌린 향수가 코코마드모아젤이었다. 백화점에 1층 화장품코너 냄새라고 할 수 있을만큼 향기에 대한 이미지가 화려하면서도 스탠다드했다.  그리고 나와 너무 잘 어울렸다. 그 이후 줄곧 외출시에 듬뿍 뿌려왔었다. 지금도 100ml 뜯지 않은 향수가 화장대 한 켠에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백수가 된 지금도 나는 이 향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질려서 다른 향수로 갈아탔다가도 결국에는 이 향수로 돌아오는걸 보면 아직 나와 맞는 다른 향기는 못 찾은것 같다. 백수에게 외출하는 날은 손에 꼽을 것이다. 특히 나의 경우 세미 히키코모리라고 할 정도로 동네를 벗어나질 않는다. 늘 복장은 츄리닝에 맨투맨이며, 머리는 질끈 묶거나 모자를 눌러쓴다. 


한동안은 복장이 너무 캐쥬얼하고 편해서, 또 동네 외출이니까라는 이유로 향수를 뿌리지 않았었다. 한껏 꾸미고 자신감 넘칠 때 뿌리는 나만의 향기가 샤넬 코코마드모아젤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수의 나날이 길어지면서 나만의 자신감도 낮아지고, 자존감도 낮아졌다. 그리고 한 구석에 치워뒀던 향수가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츄리닝을 입든 머리를 질끈 똥머리를 하든 어떤 구질구질한 모습에서도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부끄러웠다. T.P.O에 맞지 않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몸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나니 나의 기본 텐션도 높아지고, 츄리닝을 입더라도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백수의 애티튜드가 달라졌다.


그 이후, 자고 일어나서 씻고 무조건 향수를 뿌렸다. 집에서도 뿌리고, 외출시에도 뿌렸다. 하지만 이 한가지로 나의 생활 패턴은 달려졌다. 게으르고 늘어졌던 삶이 타이트해지고 부지런해지기 시작했다. 멍을 때리더라도 절대 눕지 않고 앉아서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하는 등 뭔가 실용적이고 나에게 도움 되는 행동들을 찾아서 했다. 루틴이 바뀌었다. 


나는 백수의 샤넬 코코마드모아젤을 뿌리는 여자다. 


향기의 힘은 대단하다. 그 사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나의 체취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표현되기를 원하는지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는 샤넬 향수를 뿌린다. 샤넬향수를 뿌리는 백수다. 



이전 04화 뜨끈한 어묵탕에 김밥 두 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