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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킴 Jan 12. 2024

우아한 브런치는 꿈일까?

새해가 밝았다. 일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하는 대학교 후배를 오랜만에 만나기로 해서 들뜬 날이기도 했다.

아기가 있어서 외출할 수가 없다며, 자신의 집에서 보자는 후배의 연락에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하고 달려갔다. 


무릎을 살짝 넘는 키의 꼬마숙녀가 엄마 다리에 매달려 쭈뻣 나를 바라보았다.


"안녕? 반가워. 나는 아리이모야."


부끄러운지 엄마의 다리에 얼굴을 파묻고 나를 경계하는게 친해지는게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후배는 아기가 보는것이 힘든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감지 못해서 똥머리를 하고, 꾸민다고 꾸몄지만 다 늘어난 니트 츄리닝은 아가씨적 핏과는 많이 달랐다.


"언니, 미안해요. 이제 애기 밥 먹이고, 설거지 하려던 참이었는데, 집이 많이 어지럽죠?"


후배는 예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실상 두 살이 되지 못한 아기가 있는집의 엄마들이 늘상 그렇듯 피곤함에 쩔어서 초췌하기 그지 없었다. 괜스레 만나자고만 한 것 같아서 내가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너 밥은 먹었니?"


"아니요, 밥 먹을틈이 없어요. 아기 11시에 낮잠자니까 그때 간단히 먹으면 되요.

언니, 배달의 민족으로 브런치 시킬까 하는데 언니 아이스 바닐라라떼 맞죠? 브런치세트 시킬게요"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숙녀 아기씨는 애니메이션 보며 뻥튀기 과자를 먹다 관심이 자기에게 쏠리지 않자 뺑하니 울어버리며 심술과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잠깐이었지만 후배의 다크서클은 턱밑까지 내려오는 것 같았다. 거기에 잠투정까지 어우러져서 환상의 콜라보를 자아냈다. 그 광경을 보니 아이를 좋아하는 나지만 엄마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기가 잠들기전에 브런치가 배달이 되어 접이식 식탁에 올려놓으려고 하니 후배가 한 마디 하였다.


"언니, 식탁위에 올려놓으면 손으로 다 떨어뜨려요. 언니 죄송한데 저희 바닥에서 먹어요."


당황은 했지만 바닥에 브런치와 커피를 셋팅했다. 아기는 궁금한지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후배집에 도착한지 한 시간도 안되었는데, 도망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심통 부리는 아기를 달래는 엄마인 후배를 보면서 아이 키우기가 만만치 안다라는걸 간접경험하였다.


최후의 보류 쪽쪽이를 입에 물리고서야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는 낯선사람이 집에 온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쉬이 잠에 들지 못하다 간신히 재우고 바닥에 앉아 브런치를 먹었다. 장난감이 어지러진 방바닥에서 브런치를 깔고 후배와 단 둘이 앉아 먹다보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바닥에서 식사를 한 적은 대학교 때 잔디밭에서를 제외하고는 없었던 것 같다. 눈 앞에 스무살적 후배의 모습이 아른거리는데 벌써 아기엄마가 되어 지금의 몰골을 하고 있다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우아하게 브런치를 먹으며 아이를 보는 엄마는 영화나 텔리베이전에 나오는 환상과도 같은거라고 후배는 말했다. 현실은 바닥에서 허겁지겁 먹다시피하는게 일상이었다. 오늘처럼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날도 손에 꼽을 정도로 아이가 남긴 음식 잔반처리하듯 먹고 찔끔찔끔 챙겨먹는게 다라고 하였다. 


요즘 후배의 고민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사회생활을 언제 시작해야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들어가는 육아비도 만만치 않지만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는게 고민이었다. 이런저런 자격증 얘기와 함께 취업얘기, 금융이라고는 하나 실질적 집 장만 대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기는 언제 깼는지 쪽쪽이를 문채로 걸어왔는데, 기분이 좋은지 처음 봤을때와 달리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까의 환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랑스러웠다. 이 모습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나의 모습의 익숙해지고, 나도 후배와 어느정도 대화를 마칠때쯤 깨어나 고마웠다. 하지만 이제 내가 집에 가야할 시간이 돌아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되면 까페에서 제대로된 브런치를 먹자며, 그때는 이 지긋지긋한 츄리닝이 아닌 머리도 감고 예쁜 모습으로 만나자고 했다. 봄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엄마가 된 후배의 모습과 함께 바닥에서의 브런치를 허겁지겁 먹으며, 엄마의 무게와 엄마의 그런 모습도 아름다워 보인다는걸 느꼈다. 스무살의 모습과 서른살의 후배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아기와 많이 행복해보여서 좋았다.


언제 내가 바닥에서 브런치를 먹겠는가. 좋은 경험이었다. 

꼭 봄이 되면 예쁜 브런치카페에 데려가야겠다라는 다짐을 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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