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나 Dec 07. 2024

열한째 날

첫키스

전날 하도 잠을 자서 눈이 탱탱 부었다. 하지만 몸은 가뿐했다. 밤새 폭신한 깃털 속에 얼굴을 묻고 온 세상을 날아다닌 기분이었다. 나를 하늘 높이 데려가 준 커다란 새는 어떤 새였을까? 


최진이가 사람들을 대접하느라 냉장고와 원두막 사이를 왔다갔다했다. 그래 봐야 슈퍼마켓 주스뿐이었지만. 마리아가 생글거리며 집에서 가져온 과일을 깎아 내놓았다.


나는 아버지가 일 년 내 해다 쌓 아놓은 장작을 아궁이격의 함실에 쑤셔 넣고 불을 붙였다. 올림픽 개막식에 성화봉송 하듯 장엄한 분위기에 모두 말이 없었다. 


‘타닥, 탁!’


내가 장작에다 대고 직접 라이터를 끼적거리자, 산불관리 아저씨가 말없이 종이에 불을 붙여 아궁이로 던져 넣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아저씨는 장작을 뒤적뒤적하라면서 불쏘시개를 건네주었다. 그랬다. 장작이 잘 타도록 산소를 공급해 주어야지. 학창시절 억지로 뇌 속에 구겨 넣었던 지식은 몸으로 익힌 지식을 못 따라가나 보았다. 하지만 뭐 어떠랴? 앞으로 수백 번은 더 불 피우게 될 텐데. 불은 신기할 만큼 활활 타들어갔다.


“불이 참 잘 드네. 함실 자리를 정말 잘 잡으신 거예요. 저쪽 골짜기에서 이쪽으로 바람이 불어오니까 말이야.”


정말 솔깃한 소리여서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구들방 지어 본 적 있으신가 봐요?”

“아아니.”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래도 이런 건 그냥 아는 거지.”

“엣헴!”


박카스 할머니가 방 문지방에 앉아서 예의 그 매의 눈으로 새는 연기를 잡아 내려는 중이었다. 한동안 구들방에 아무 이상이 없자 구경 온 마을 사람들이 짝짝짝 박수를 치며 구들방의 성공을 축하하려는 찰나였다. 할머니가 캑캑거리며 방 밖으로 또박또박 지팡이 다리까지 세 다리를 번갈아 놀리며 나왔다.


“아유, 연기가 새어 들어와~.”

“어디, 어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과연 구들장 틈새에서 올라오는 흰 연기가 보였다.


“장작 그만 넣어요.”


물론 한번에 성공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사실은 그러면 좋겠다고 은근히 기대했었지만.) 하지만 저렇게 연기가 많이 샐 줄이야. 그냥 연기가 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독기 품은 용처럼 아가리 가득 뿜어내는 수준이었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원래 새침 작업은 이삼일 걸려서 꼼꼼하게 하는 거래요. 잔돌을 틈새에 최대한 박아 넣으며 작업하다가 그 위에 황토를 바르면 되는 거예요. 모두 다 잘 아시겠지만요.”


최진이가 분위기를 띄우려 연설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최진이의 짐작과는 달리, 아무도 구들방 새침 작업에 대해 잘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다. 우리나라의 ‘전기가 필요 없는’ 전통 난방 장치는 과학기술에 밀려 잊혀진 게 틀림없었다. 시골 노인네들도 만드는 법을 잘 모를 정도로. 나는 왠지 서글퍼졌다. 팔리지 않을 게 뻔한 책을 만들고 있을 때처럼.


“어쨌든 잔돌만 잘 넣으면 된다는 거지?”

“무슨 이걸 이삼일이나 걸려서 해.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자 당장 해봅시다!”


사람들은 최진이가 일찍부터 와서 주워 모아놓은 자갈을 한두 개씩 집어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박카스 할머니가 외쳤다.


“이봐, 한 번에 하나만 들어가! 구들장 무너져!”


그 호통 소리를 듣고 모두가 하하하 웃었다. 사실 내심 나도 같은 걸 걱정하는 중이었다. 내가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아유, 이렇게 애들 써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깜찍이의 콧소리는 나의 전유물이 된 것 같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콧소리를 남발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이라도 그럴 만큼 나는 마을 분들이 정말로 고마웠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 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구나 싶었다. 사람이 많으니 왠지 흥도 났다. 내가 다른 사람 일에 이렇게 신경써 준 적이 있었는가 생각하면, 단 한 개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함실에 다시 한 번 불을 피웠다. 이번에는 연기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얼마간 더 다 같이 애썼지만(벽과 바닥 사이의 틈새, 구들장 돌 사이의 벌어진 틈새에 잔돌을 끼워 넣으며) 연기는 그 이상 줄어들지 않았다. 눈에 연기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기침은 계속 났다. 결국 119명예대원 할아버지가 마무리 연설을 시작했다.


“내 생각엔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어차피 이 위에 흙 바르고 하면 연기가 더 줄어들 테고. 내 어렸을 때 구들방에서는 언제나 조금씩 연기가 샜다우. 하지만 처음 불 때는 한두 시간만 연기 냄새를 맡으면 그 다음엔 연기가 안 났어. 원래 구들방이 그런 거야. 저녁에 한두 시간만 때면 불길에 달궈진 구들장의 온기가 아침까지 가거든.”


한동안 말없이 일을 돕던 아저씨가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정 연기가 신경 쓰이면 굴뚝에 가스배출기를 달면 된다는 것이었다. 가스배출기 안에 설치된 날개가 뱅글뱅글 돌면서 실내의 가스를 밖으로 뽑아 주는 장치였다. 전기로 움직인다는 흠이 있었지만, 급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듯했다.


“오오, 좋은 생각이야, 자네!”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 짓더니 마리아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리아도 미소로 답했다. 그 아저씨는 마리아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듯했다. 


나와 최진이는 순식간에 황토를 긁어모아 물에 개어 반죽했다. 산에 널린 게 황토였다 노인들이 최진이보고 새신랑 다 된 것 같다며 놀려대는 사이, 나와 마리아와 아주머니들이 구들장 틈새에 황토를 꼼꼼하게 발랐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이 모든 작업이 수다 시간 포함하여 채 두 시간도 안 걸렸다. 시골 아주머니들의 야무진 손놀림은 감탄할 만했다. 마리아까지 일머리가 똑 부러졌으니, 아주머니들은 손으로 하는 일에 서툰 나를 들었다놨다하며 놀려댔다. 화기애애했다. 역시 백짓장도 맞들면 낫구나. 


마을 사람들은 다 내려가고 나와 최진이만 남아 불을 더 땠다. 황토를 바싹 말려야 했고, 연기가 새는 곳을 좀 더 잡아내야 했다. 


“황토가 바짝 말라도 연기가 샐 거예요. 어제 인터넷 정보를 좀 찾아봤죠. 황토를 두세 번 더 바르면서 불을 때 말려 빈틈을 최소화해야 해요.”


찌는 듯한 여름에 불 앞에서 작업해야 할 최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그러게 나는 왜 이걸 시작해 가지고. 


“저 없을 때 혼자 하지 말고, 같이 해요... 그래요, 가을에 다시 올게요.”

“가을에요? 에이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그냥 제가 다 할게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틈틈이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 가을에는 내려오시면 좋겠네요.”

“네?”

“완성된 방을 한 번 보셔야죠. 그동안 진행 상황은 전화로 알려드릴게요.”


최진이는 이날 하루 종일 나를 도왔다. 지난 오년 간, 아팠을 때를 빼고는 처음으로 낸 휴가라 했다. 최진이는 오늘은 이누크에게도 휴가를 주었다고 하면서 씩 웃었다. 이누크는 마을의 자기 집에서 한가롭게 갈비를 뜯고 있다나.


최진이와 나는 아버지가 쌓아 놓은 장작의 양이 올 겨울을 날 수 있는 만큼인지 가늠해 보기도 하고, 구들방에 들어가 연기 새는 곳을 잡아내 황토를 덧바르기도 하고, 장작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둘이서 창고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해 보기도 하고, 전기 기사를 한번 불러서 점검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맞추기도 했다. 


어느덧 오후 4시쯤 되어 산중의 해가 꼴딱 넘어가려는 중이었다. 우리는 함실에 마지막 장작개비를 던져 놓은 뒤, 연못가까지 걸어가서 종일 고생한 발을 담갔다. 


‘꿋 구구 그르릉 꿋 구구 그르릉’ 


깊은 숲속 어디에선가 새 울음소리가 박자를 맞추어 들려왔다. 


“오, 이건 멧비둘기 울음소리 같은데요.”


최진이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나는 마리아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진이가 이마를 딱 쳤다. 


“아버님이 새에 대해 그리 잘 알고 계셨던 건 마리아 할머니 덕분이었군요!” 


평생 시골에서만 살았지만 최진이는 사실 새에 대해 잘 몰랐다고 했다. 아버지 덕분에 몇 가지 새들의 이름과 습성을 알게 되었다는 게 못내 기쁜 모양이었다. 관심 있는 여자에게 새 박사 흉내라도 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숲속에 살게 된 아버지는 병들어 우울한 마음속을 밝고 명랑하게 만들어주는 새 소리를 들었고, 새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을 테다. 마침 새바라기 마리아를 만나기도 했고. 아버지는 우리나라의 새를 총망라한 두툼한 도감으로 새 공부를 했고, 실제로 그 새들을 가까이 만나면서 책에서 익힌 지식으로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꼈다. 머리로 배운 뒤 몸으로 익히는 배움도 있구나. 나는 새삼스럽게 책을 만드는 내 직업이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세상을 배우는 일만큼이나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최진이는 야단스럽게 떼를 지어 다니는 조막만한 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애들은 노랑턱멧새라고 해요. 잘 보세요. 턱 부분에 노란 깃털이 있죠?”


우리가 한 발짝 다가가자 새들은 물고기 떼처럼 일사불란하게 다음 덤불로 옮겨갔다. 갑자기 귀를 사로잡는 특이한 소리도 들려왔다.


‘지지지이~ 콕!’


“어머, 들려요?”

“쉿!”


최진이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었다. 그러자 백 미터쯤 떨어진 반대편에서 똑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지지이~콕!’


처음에는 새 한 마리가 이쪽저쪽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같은 종의 새 두 마리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번갈아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었다. 10분 동안을 그렇게 서서 우리 둘은 키득거리며 새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더위를 식힐 겸 구경도 할 겸 작년에 쌓인 낙엽이 카펫처럼 깔린 숲속에 들어가자 때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거대하지만 투명해서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손바닥으로 숲 전체를 몇 번이고 훑어 내리는 시원한 바람에 우리 둘은 땀방울을 하나도 남김없이 빼앗겼다. 이상하게도 움직이는 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럴 리 없었다. 가만히 주의를 기울이자 내게 신비의 심안이라도 생긴 듯, 나는 머릿속에 그려볼 수가 있었다. 곳곳에 숨어있는 생명들의 숨소리와 떨림을 말이다. 


나무 이파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낙엽 아래에는 수많은 것들이 꿈틀거렸다. 아마 잠시라도 정신을 집중하여 숨은그림찾기라도 했다면 나무줄기 색과 비슷한 굴뚝새나 눈에 띄지 않는 직박구리 같은 장난꾸러기들이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윙크를 보내고 있는 걸 발견할 것 같았다. 공중을 부유하듯 날아다니는 곤충들은 더 이상 징그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늘만큼은 곤충들의 붕붕하는 투명한 날갯짓이 분위기를 한층 신비스럽게 만들어주는 스테레오 사운드였다. 


“어? 저길 봐요!”


오소리 같은, 몸통이 길고 날렵한 동물이 무언가 깃털 있는 것을 물고서 우리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짐승은 최진이의 외침을 듣자 먹잇감을 문 채 언덕너머로 잽싸게 홱 넘어가 버렸다. 최진이는 그쪽을 향해 다가갔다.


“가엽게도..”


새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알 수 있었다. 희생당한 아이는 꿩이었다. 짧은 격투가 벌어졌던 잔해가 남아 있었으니까. 갈색과 검은 색이 섞인 긴 꼬리깃털과 새하얗고 작고 보드라운 작은 속 깃털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하는 수 없죠. 이게 자연의 법칙이니까.”


최진이가 손을 탈탈 털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신기하지 않아요? 이런 곳에서도 다양한 삶의 현장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요. 겨울에도 꼭 와서 보세요. 눈에 잘 띄지 않는 동물들의 발자국을 많이 볼 수 있죠.”


최진이의 맑은 눈빛과 끝없는 인내심, 땀에 젖은 티셔츠를 생각했다. 그러다 그의 달콤한 땀 내음을 맡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참아서는 안 되었다. 이대로라면 우린 언제까지나 평행선일 거야. 


나는 최진이의 어깨에 재빨리 손을 살짝 얹은 뒤, 그의 입술에 충동적으로 내 도톰한 입술을 대었다. 한껏 발돋움을 하면서 그냥 내 입술을 갖다 찍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구잡이 선제공격은 최진이에게 어떤 확신을 주는 데는 충분했던 것 같다. 얼어붙은 듯 서 있던 그가 갑자기 용기백배하여 양팔을 벌려서 나를 껴안았으니까. 그의 양 손바닥이 내 팔을 꼭 쥐자 갑자기 쓰러질 듯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우리 둘은 순식간에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되어서 숲을 빠져나왔다. 최진이는 아버지의 집을 보자 부끄러운 듯 함실에서 흰 재를 마구 퍼내더니 밭에 가져다 살살 뿌렸다. 그러고는 괜히 구들방을 왔다갔다하면서 바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유, 이 방, 엄청 뜨거워요. 혹한기에도 끄덕없겠는걸요!”


나는 그가 내가 없는 동안에도 혼자서 이곳으로 와서, 아버지와 그, 나와 동네 사람들의 손길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 구들방에 불을 때고, 바닥에 엎드린 채 황토를 바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황토가 다 말라 새침 작업이 끝난 뒤에는 마른 황토를 양껏 뿌리고, 모래를 구해다 뿌리고 꾹꾹 눌러 평평하게 다지는 그의 믿음직스러운 두 다리와 두 팔을 그려 보았다. 어머니 대지의 숨결을 품은 그 자연의 흙 위에 마침내 우리 둘이 함께 고른, 여러 번 풀을 먹인 한지 장판을 깐 구들방의 모습도. 그가 날마다 나를 위해 새벽부터 타닥거리며 불을 때는 모습도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