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만남
“풋!”
아리는 옷소매로 입을 막으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 내고 있었다. 웨이는 아리의 그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따뜻한 포옹이라도 기대했지만, 아리는 포옹은커녕 버스에서 내린 웨이의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웃어 대고 있었다. 웨이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아리는 겨우겨우 참아 왔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하! 웨이, 그 모습이 대체 뭐야? 꼭 버스에서 내린 북극곰 같잖아!”
버스에서 무거운 배낭을 들고 내린 웨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름에 가을용인 얇은 하얀색 누빔 점퍼를 입고 있다는 게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옷 자체는 꽤 세련된 것이었다. 차라리 웃어야 할 사람은 웨이였다. 아리는 여태까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유목민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통의상이 언니한테서 물려받은 것인지 손끝에서도 한 뼘은 더 나가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돌잔치에서 제 몸보다 한참이나 큰 옷을 입고 있는 어린애 같은 모습이었다. 둘은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나니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고, 점퍼에 두툼한 장갑까지 낀 사람은 웨이 하나뿐이었다. 아리의 말대로 자신의 모습은 영락없는 북극곰이었다.
“북극곰이면 어때, 우리가 이렇게 오랜만에 서로 만났는데!”
웨이가 살짝 웃어 보이자마자 아리가 달려와 웨이에게 매달렸다. 언제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는가 싶게 아리는 아무 말도 없이 머리를 웨이의 가슴에 기댔다. 그러더니 잠시 후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웨이는 조심스레 두 손으로 아리를 감싸 주었다. 아리는 한참 동안이나 그러고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기는 했지만, 별일 아닌 듯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목소리가 웨이의 가슴팍에서 흘러나왔다.
“숨쉬기는 괜찮아?”
그러고 보니 실내에 부족한 산소 공급이 되는 칭쟝열차를 타고 올 때와 달리 숨이 조금 가빴다.
“좀 숨이 막히기는 해! 가슴이 뭐에 눌린 듯 답답하기도 하고…….”
아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사랑스런 눈으로 웨이를 바라보았다.
“여기는 해발 4천 미터가 넘어, 산소가 별로 없어서 숨이 막히거든. 맨 처음에 티베트에 온 사람은 어지러워서 토하기도 해! 그 정도면 양반이야! 별일 없는 것을 보니 다행이다.”
“이제 겨우 숨 쉬는 법을 배웠다니. 티베트에서는 갓난아기나 마찬가지네.”
아리는 웃으며 웨이의 옷차림을 둘러보았다.
“한겨울도 아닌데, 솜 점퍼는 그렇다 치고, 두꺼운 벙어리장갑은 다 뭐야!”
“아! 이거, 이것을 보고 웃었구나!”
웨이가 장갑을 벗자 희고 긴 손가락이 아리의 눈에 들어왔다. 웨이의 피아노 치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원의 바람은 여름에도 차다기에…….”
웨이는 긴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리는 웨이의 손을 만져 보았다. 느낌이 좋은 손이었다. 아리는 건강해 보였다. 얼굴은 조금 더 가무잡잡해졌고, 볼도 통통해진 것 같았다. 티베트의 전통의상도 건강한 아리에게 잘 어울렸다.
“아리, 너 참 좋아 보인다.”
“웨이는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은데……, 걱정 마! 내가 여기서 맛있는 거 많이 해 줄게, 상하이로 갈 때에는 토실토실하게 만들어 줄게.”
아리는 웨이의 볼을 살짝 잡아당기고는 웨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비로소 티베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코르 광장 한가운데에는 장대가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장대에는 오색으로 물든 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웨이의 눈이 오색 천들에 멈추자 아리가 말했다.
“‘룽다’라고 하는 거야. 부처님의 말씀을 적은 깃발이야.”
아리가 별안간 웨이를 보고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있잖아, 우리는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을 한 번에 알아맞힐 수 있어.”
“옷차림을 보고?”
“아니, 눈빛을 보면 돼.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마법에라도 걸린 듯 저 깃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든.”
“이유가 뭐야?”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저 깃발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텅 빈 것 같다고, 그래서 자신이 티베트에 관광 온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곳,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받는대.”
“그렇구나. 나도 비슷한 느낌이었어. 너 말고도 저 깃발이 나를 반겨 준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깃발에는 그림 같은 꼬불꼬불한 글씨가 가득했다. 글씨들이 바람을 타고 세상 속으로 내달리는 듯했다. 높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깃발을 하늘 높이 날아 올리고 있었다. 룽다 아래의 넓은 바코르 광장 바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나무 조각을 달고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 이 장면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는데…….”
웨이는 티베트에 오기 전 티베트를 찍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반년을 넘게 절하면서 라싸로 오는 순례자들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순례자들은 두 무릎을 땅에 대고, 그다음에는 배, 팔, 머리 순으로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라싸를 향해 걸어왔다.
“오체투지라고 해! 머리와 두 팔, 두 다리를 땅에 대고 하는 절이지. 부처님의 뜻에 자신을 완전히 맡긴다는 뜻이야.”
“오체투지였구나!”
아리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기뻐하는 표정인지 슬퍼하는 표정인지 읽을 수가 없었다. 아리는 웨이의 손을 끌고 죠캉 사원 앞으로 갔다. 그곳에는 오체투지를 완성한 사람들이 죠캉 사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몸이 바싹 말랐는데도 그들의 표정에서는 전혀 힘듦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환하게 빛났다. 웨이가 아리에게 물었다.
“저들은 왜 저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거야!”
“행복하니까.”
“행복하다고?”
“그럼, 남들이 볼 때는 죽은 뒤에 극락에 가고 싶어서 저 사람들이 저런 고생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하지만 저분들은 단순히 고행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자기의 행복을 찾아서 몸과 마음을 한껏 내던지는 거지. 아,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반년 넘게 길거리에서 잠자면서 날마다 절을 하며 저마다 자신만의 성스러운 사원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거야! 한 걸음씩 부처님께 가까워질 때마다 머릿속은 맑아지고 마음속은 깨달음과 경건함으로 가득 차게 되지. 그런 행복감은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야. 무릎은 부서질 듯 아프고, 땅에 부딪친 이마에는 피나 나고 굳어서 피딱지가 지게 되지만 그럴수록 기쁨은 더한 거야.”
웨이는 아리를 보면 볼수록 알 수 없게 느껴졌다. 모르는 것이 많을수록 티베트의 소녀는 더욱 신비하게만 느껴졌다. 웨이는 아리의 전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해 오던 피아노 연습을 생각하니 자신도 피아니스트라는 사원을 향해 몇 년간의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웨이는 피아니스트로 가는 길의 대부분은 고통에 이어지는 고통일 뿐, 행복을 생각할 사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웨이의 오체투지는 겉모습만 오체투지일 뿐, 마음속에는 아무런 기쁨이 없었다.
아리는 웨이의 먹먹한 표정을 보고 그 마음속을 알 것 같았다. 아리는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슬프게 한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리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웨이가 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깨달음을 얻기를.’
기도를 끝내자 아리는 어느새 해맑은 소녀로 돌아와 있었다. 아리는 웨이의 손을 잡고 많은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파고 들어갔다. 웨이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아리의 손에 이끌려 티베트 사람들의 더 깊은 삶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웨이의 큰 배낭이 사람들 몸에 걸리기도 했지만, 아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웨이의 손을 잡아당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얼마 되지 않은 거리였는데도 숨이 벅찼다. 생각해 보니 여기는 상하이가 아니었다. 상하이에 비해 산소가 반밖에 되지 않는 티베트였다.
아리와 웨이의 손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시장이었다.
“이쯤 어디에 엄마가 계실 텐데…….”
아리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웨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헉헉, 여기 시장 아니야?”
“응 맞아! 바코르 시장이라고 해.”
아리는 웨이의 손을 꼭 잡고 앞서 걸어 나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웨이가 보기에 중국의 여느 재래시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암마(‘엄마’ 라는 뜻의 티베트 말.)~!”
아리가 티베트 어로 소리쳤다. 좀 떨어진 곳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고개를 들고 아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리의 엄마였다.
“네가 웨이구나.”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아리가 매일 ‘웨이, 웨이’ 노래를 부른 이유를 알겠다. 이렇게 잘생긴 도련님을 상하이에 두고 왔으니 날마다 생각날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아리?”
광장에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가 끄는 말은 조랑말처럼 작았다. 말이 너무 작아 사람을 태우고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엄마는 말의 목을 탁탁 두드렸다.
“그런데 아리, 세 명이 타기엔 이 마차가 조금 작지 않아?”
“세 명이라니?
“어머니, 너와 내가 타야 되잖아.”
“아니, 우리 셋이 타고 가면 말은 힘들어서 쓰러지고 말 거야.”
“그럼 어떻게 타고 가?”
“너 혼자만 타면 돼. 넌 멀리서 온 손님이잖아. 우리는 거의 마차를 타지 않아. 마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게 편하기도 하고.”
웨이는 아리와 아리의 엄마를 걷게 하고 혼자만 마차를 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리는 막무가내였다. 웨이는 하는 수 없이 홀로 작은 마차에 올랐다. 웨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가 마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게 편하다고 말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비포장도로를 통통거리며 굴러가는 바퀴는 조그만 돌을 하나 만나도 심하게 덜컹거렸다. 겨우 10분 마차를 타고 있었을 뿐인데, 칭쟝 열차로 이틀을 달려 온 것보다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엉덩이가 위에서 아래로 부딪치면서 더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덜컹이는 마차에서 중심을 잡느라 웨이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디 아파?”
아리가 물었다.
“아프지는 않아.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좀 힘드네, 걸어가고 싶은데…….”
웨이가 이 말을 하고도 마차는 한참을 더 가서 멈추었다.
빈 마차는 돌길을 지날 때마다 심하게 덜컹거렸다. 웨이는 ‘빈 마차가 요란하다’는 속담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마차는 지나갈 때마다 덜컹! 덜커덕! 덜컹! 덜커덩! 소리를 냈다. 아리는 웨이를 바라보았다. 웨이의 손등을 건반 삼아 딴딴따안! 딴딴따안! 두 소절을 연주했다. 웨이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아리의 마음을 알아들었다. 웨이가 콧소리로 ‘크시코스의 우편마차’를 불렀다. 아리도 같이 리듬을 맞추었다.
“딴딴따안! 딴딴따안! 딴딴딴딴 딴 쿵!”
둘의 합주가 이어졌다. 티베트의 털컹거리는 마차가 피아노 소품곡인 ‘크시코스의 우편마차’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회색으로 흐렸던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라싸 시내가 완전히 사라질 무렵, 웨이의 눈앞에는 끝 모르게 이어진 검은 모래 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산맥이 끝나는 곳에는 너비를 알 수 없는, 깊고 새파란 하늘이 캔버스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위로 몽글몽글한 구름과 빛나는 태양이 각자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모래 산맥을 지나자 끝을 알 수 없는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티베트의 푸르름이 웨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웨이는 저도 모르게 마차를 앞서 뛰고 있었다. 넓은 티베트의 벌판이 웨이의 가슴에 안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