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소녀, 아리>

10. 고원의 저녁

by 정이나

유채기름을 태운 빛이 천막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야크고기를 끓이자 구수한 냄새가 났다. 아리는 야크 똥 난로에 쭤를 집어넣었다. 아리는 두꺼운 장갑을 낀 웨이의 모습이 생각날 때마다 혼자 키득거렸다. 아리는 시장에서 사 온 국수를 탕에 넣었다. 웨이는 연료로 쓰는 것이 야크 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리는 똥을 만진 손을 닦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아리는 웨이에게 손 씻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상하이에서는 밖에 나갔다 오면 손을 씻었기에 웨이는 왠지 꺼림칙했다. 적어도 밥을 먹기 전에는 손을 씻고 싶었다.


“아리야, 나, 손을 씻고 싶은데…….”


올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내리지 않았다. 물을 쓰려면 때때로 잠깐 내리는 비를 통에 받거나 시냇가에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했는데 냇가는 꽤 멀었다. 애써 길어 온 물은 대부분 차를 끓이거나 요리를 할 때만 썼다. 유목인들에게는 수도 시설이나 우물 시설이 따로 없었다. 씻으려면 직접 냇가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우물이 있는 곳에서 머물기도 하는데 라싸 근처에는 너무 많은 유목민이 몰려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었다. 웨이는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냈다. 물티슈로 손을 깨끗이 닦고 아리에게 내밀었다. 아리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이곳 생활이 많이 불편할 거야…….”

“괜찮아. 걱정하지 마.”


웨이는 지난 겨울, 상하이에서 아리가 노숙하던 일을 떠올렸다. 유목생활은 노숙생활과 비슷해 보일 정도로 웨이의 눈에는 엉망이었지만 이곳에서 아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웨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유목과 노숙이 어떻게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둘 사이에 공통점이라곤 없는데! 노숙은 의지할 데 없이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보살핌을 받지 못해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가 될 뿐이었다. 상하이의 공중화장실에 가면 물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 물로 몸을 깨끗이 씻는다 한들, 몸과 마음의 병이 깨끗이 나을 것인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노라면 바이러스와 세균에 감염돼 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반면에 유목은 생활하는 한 방법일 뿐, 따뜻한 천막에서 보살펴 주는 가족과 함께 먹는 저녁이 있다. 손 따위 자주 씻지 않아도 따가운 햇살과 고원의 거친 자연환경에 균 따위는 힘을 잃고 곧 사라진다. 티베트인에게는 그저 인간다운 고소한 냄새만이 풍겼다.


티베트의 전통 요리는 중국의 전통 요리에 비해 간단했다. 그저 큰 사발에 칼국수 한 그릇이 전부였다. 노란 빛깔의 야크고기를 끓인 국물에 담겨있는 국수인 뚝바는 상하이에서는 먹어 보지 못한 맛이었다. 웨이는 한 그릇을 다 먹고 또 한 그릇을 먹었다. 음식이 뜨거운지 후후 불 때마다 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리는 자신을 만나러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와준 웨이가 고맙게만 느껴졌다. 입맛에 맞지 않을 텐데도 이렇게 음식을 잘 먹어 주는 웨이가 또 한 번 고마웠다. 웨이가 국수를 먹으며 내는 후르륵 소리마저 음악처럼 들렸다.

뚝바를 배부르게 먹고서 아리와 웨이는 밖으로 나왔다. 티베트의 여름밤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유목민의 천막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빼고는 별빛과 달빛이 전부였다.


“매애 매애~~~”


아리의 발소리를 듣고 우리에서 나왔는지, 작은 양 한 마리가 통통 튀듯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양이 움직일 때마다 목에 달린 방울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방울 소리가 울음소리와 뒤섞여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아리가 양을 품에 안자 양의 울음소리가 멈추었다. 방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티베트의 밤이 적막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리는 한 손으로 양을 안고 한 손으로 웨이의 손을 잡아당겨 양의 등에 갖다 대었다. 새끼 양이 웨이의 손길을 눈치챘는지 울음소리를 내었다.


“부드러운데.”

“그뿐이 아니야! 양털은 정말 따뜻해. 가끔 양 우리에서 새끼 양을 안고 함께 잠들곤 해. 엄마와 아기가 따뜻함을 나누듯 새끼 양과 나도 서로 따뜻함을 나누는 거야.”

“내가 아리에게 나누어 주듯, 아리도 내게 나누어 주고…….”


웨이의 말에 아리의 손이 살포시 떨렸다. 새끼 양은 그 떨림은 아는지 모르는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잘 자. 메루.”

“새끼 양의 이름이 메루구나.”

“응.”

“웨이, 너 혹시 양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니?”

“매애 매애 하는 소리 말이야?”

“응, 그런데 양마다 그 소리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니?”

“양의 목소리가 양마다 다르다고? 그것은 처음 듣는 말인데.”

“사람의 목소리가 사람마다 서로 다르듯 양의 목소리도 서로 달라! 한 마리 양도 기분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지.”

“그럼 넌 양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럼. 세상에 같은 소리는 하나도 없어. 바람에는 온갖 생물들의 영혼들이 담겨 있어. 사람이며 동물, 풀과 나무의 영혼까지, 서로 목소리가 다른 영혼들이 바람 안에서 소리를 내지. 우리는 바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소리를 듣는 거야.”

“…….”

“난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해. 다른 생명들은 다른 숨을 쉬고 있고, 다른 숨소리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 유목민들은 모두 바람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 그래서 내가 이야기를 따로 해 줄 필요가 없어. 하지만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티베트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 그들은 너무 바빠서 바람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


작은 반달이, 반달만큼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그 반달만큼의 빛으로도 티베트의 초원은 밝히기에는 충분했다. 아리와 웨이는 한참이나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웨이는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이야기를 했다. 웨이의 귀에 대고 영혼들이 이야기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웨이는 야크 털 요를 바닥에 깔고 양털 이불을 덮었다. 따스함이 온몸을 감쌌다. 바람 소리가 천막 안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바람 소리에 맞춰 아리가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이 바람을 타고 티베트 고원에 메아리쳤다.


‘이 바람도 누군가에게 우리 이야기를 전해 주겠지.’


웨이는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 보았다. 손가락 끝이 허공을 누를 때마다, 가느다란 떨림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악보에 인쇄된 음악이 아닌 웨이, 자기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고 싶었다. 아니, 이젠 웨이만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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