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양몰이
아리와 웨이는 라싸의 레스토랑에 갔다. 아리의 말처럼 낡은 피아노가 있었다. 웨이는 조심스레 건반을 하나씩 눌러 보았다. 조율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몇몇 음이 약간 어긋났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가게 밖에는 주인아저씨가 ‘라싸 피아노 연주회’라는 작은 종이를 붙여 놓았다. 비록 손으로 쓴 글씨였지만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근처에서 아리는 인기 피아니스트였다. 아리가 피아노 앞에 나서자 박수가 흘러나왔다. 몇몇 사람은 몇 번이나 아리의 연주를 들은 모양으로 머리 위로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오늘은 특별히 두 명의 피아니스트의 합주입니다. 피아노 한 대를 두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아저씨는 아리가 적어 놓은 것을 외운다고 외웠는데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펴더니 말했다.
“맞아! 연탄곡, 연탄곡입니다. 곡목은 일명 젓가락 행진곡인 ‘피아노를 위한 작은 왈츠’입니다.”
웨이는 고개를 돌려 아리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웨이가 아리에게 먼저 하겠다는 눈짓을 보냈다.
“파파파파파파 미미미미미미~”
마치 초등학교 학예회에 온 것처럼 신나서 몸과 마음이 들썩거려졌다. 떨리기도 했지만, 그보다 즐거웠다. 손님들은 너무 정중하지도, 너무 들뜨지도 않았다. 그냥 ‘적당히’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연주되는 음악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고, 이 음악을 모른다고 해서 무식하다고 할 사람도 없었다. 모두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어깨를 들썩거리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젓가락 행진곡의 첫 소절이 끝나자 아리는 웨이에게 눈짓을 했다.
‘이 표정은…….’
웨이는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젓가락 행진곡의 변주를 하려는 것이었다. 아리는 상하이에서도 쉬운 동요를 변주하기를 좋아했다. 어느 정도는 즉흥적으로, 기분 내키는 대로 이뤄지는 연주여서 중간에 불협화음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것대로 곡에 재미와 긴장감을 돋구어 주었다. 웨이는 가슴이 쿵쾅쿵쾅 떨려 왔다. 웨이는 즉흥 연주에는 여태 별로 관심이 없었다. 피아노학원에서도 작곡가가 지어낸 악보를 외우고 익히고 연주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리는 웨이와는 정반대였다.
웨이가 앞서 연주한 대로 중심이 되는 멜로디를 연주하자 아리가 거기에 맞춰 변주를 시작했다. 웨이는 자신이 이제야 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꼬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간단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할 것은 아니었다. 웨이가 세운 간단하지만 단단한 뼈대에 아리가 풍성하게 옷을 입혀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웨이가 손가락 춤을 멈추었을 때 레스토랑 안에는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했다. 아리는 이처럼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도 쉽고 재미있는 음악을 사랑했다.
이튿날 아리는 웨이와 함께 부모님을 대신하여 양을 몰았다. 티베트에 온 사람들은 고산병 때문에 고생한다고들 하는데 웨이는 날이 갈수록 도리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아리가 멀리서 양을 치고 있었다. 웨이는 양탄자처럼 펼쳐진 풀밭에 주저앉았다. 양이 뜯어먹은 자리에서는 더욱 신선한 풀냄새가 풍겨 나왔다. 웨이는 팔베개를 하고 드러누웠다. 세상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웨이는 저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다.
웨이가 깨어났을 때, 해는 벌써 중천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웨이는 햇볕을 느낄 수 없었다. 웨이의 곁에 앉은 아리가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웨이, 세상모르고 자다니, 너 정말 피곤했구나.”
“아니, 피곤해서 잠든 게 아니야. 마음이 너무 편해서 나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어. 그리고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꿨어.”
“꿈에서 뭐?”
웨이는 얼굴을 붉혔다. 아리와 함께 있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아리는 우물쭈물하는 웨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치. 비밀이다 이거지. 뭐,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리는 싱긋 웃었다.
“그보다 어서 양을 우리에 몰아넣자고.”
아리네 가족은 커다란 야크 다섯 마리와 2백여 마리의 양 떼를 키우고 있었다. 티베트에서 야크는 자동차와 같았다. 짐을 실을 수도 있고 등에 탈 수도 있다. 그렇게 유용한 아크지만, 야크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산이나 나무처럼 한 자리에 붙박인 채 풀을 뜯었다. 목에 검붉은 두건을 두른 것 같은 검은 색 야크가 대장이었는데, 대장 야크는 아리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아리가 야크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닥거리면 대장 야크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른 야크들도 천천히 대장 야크를 따라 걷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학생이 줄 맞추어 걸어가듯 흰 야크 두 마리가 대장 야크를 따라 걸으면, 그 뒤로 새끼 야크 두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그러고 보니, 양몰이 개는 없어?”
“양몰이 개라니?”
“만화 같은 데서 보면 커다란 개가 사람 대신 양을 몰잖아.”
“하하하! 넌 텔레비전을 너무 봤어! 티베트 개들은 양몰이를 잘 못해. 티베트 개는 양을 몰기에는 너무 크고 느리거든. 게으름뱅이라 언제나 잠만 자는걸. 그렇게 잠만 자도 귀엽지만…….”
“그러고 보니 여기 와서 티베트 개를 한 마리도 못 본 것 같아.”
“맞아! 티베트 개가 인기가 있다 보니, 새끼를 낳자마자 도시로 팔려가. 양이나 야크보다도 티베트 개가 더 비싼 값에 팔려. 개를 도둑맞은 사람도 많아서 이제 유목민에게 남은 개는 거의 없어.”
“그럼 어떻게 이 많은 양 떼를 몰아?”
“뭐, 양치기마다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어. 나는 엄마한테서 배운 대로 해. 궁금하니? 한 번 보여 줄까?”
때마침 새끼 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옆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한 마리가 대형을 흩트리자 나머지 양들도 ‘매애 매애’ 소리를 내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웨이는 아리가 일어나 막대기를 휘두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리는 그저 슬슬 걸어다니면서 돌멩이 하나를 던질 뿐이었다.
“돌을 던져서 양 떼를 몬다고?”
“그냥 던지는 게 아니라니까 잘 봐!”
아리의 손에는 줄이 들려 있었다. 아리는 줄에 돌을 재어 던졌다. 그때마다 돌멩이가 땅에서 튀는 듯 보였다. 아리가 튀긴 돌멩이는 정확히 새끼 양의 눈앞에 떨어졌다. 양은 깜짝 놀라 ‘매애’ 소리를 내며 비틀거리더니 무리 속으로 돌아갔다. 아리가 몇 번 더 돌멩이를 튀기자 양들은 조용히 무리 지어 걸었다.
아리는 도로를 가로질러서 더 높은 초원으로 양 떼를 몰았다. 너무 많은 유목민들이 라싸 근처에 머무르기 때문에 라싸에는 언제나 양에게 먹일 풀이 부족했다. 양들은 배가 고프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배부르게 해 주어야 했다.
아리는 양들을 몰고 한참을 올라갔다. 고지대라 그런지 웨이는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차올랐다. 1시간쯤 오르자 거짓말처럼 푸른 풀밭이 나타났다. 풀의 크기가 너무 비슷비슷해 마치 잔디 깎는 기계로 깎아낸 듯했다. 양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풀을 뜯어 먹었다. 웨이는 아리를 따라오느라 지쳤는지 숨을 몰아쉬다가 양 떼가 흩어지자 풀밭 위에 벌렁 누웠다. 그때 뭔가가 웨이의 곁을 스치며 지나갔다.
“뱀, 뱀?”
웨이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뱀은 아니었다. 쥐보다 약간 뚱뚱한 야생동물이 땅굴 속을 들락거렸다.
“귀엽지? 마멋이야.”
갑자기 서 있던 마멋들이 사이렌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웨이는 깜짝 놀라 아리 옆에 몸을 붙이며 물었다.
“왜들 저래? 혹시 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아니야. 저기 하늘을 봐!”
매 한 마리가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저 매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웨이 네가 아니고.”
“나는 안 무서워하고, 나보다 한참 작은 매를 무서워한다니 자존심이 상하는걸.”
“마멋을 보고 깜짝 놀란 사람이 누군데?”
웨이는 안심이 되자 다시 누웠다. 아리는 그 옆에 앉아 양 떼들을 내려다보았다. 매는 멀리 날아가고 마멋 몇 마리가 땅굴에서 나와 망을 보고 있었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매는 저 산 너머 북쪽에 있는 아리 지구에 산대. 매들은 신과 이야기하는 아주 성스러운 동물이라고 하셨고. 그래서 매는 한 번 태어나면 수백 년이나 산대.”
“아리 지구라고?”
“응, 네 짐작이 맞아. 할아버지가 그곳 이름을 따라 내 이름을 지은 거야. 할아버지는 티베트의 초원에서 태어나 이 초원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 본 적이 없으셨어. 할아버지의 꿈은 상하이도 미국도 아닌 아리 지구에 가 보는 일이었지.”
“못 가셨구나.”
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 나갔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아리 지구에 대한 전설이 이어져 내려왔어. 아리 지구에 있는 성스러운 산, 카일라스를 순례하면 영원한 쉼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지.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도 마지막으로 ‘아리 지구’라고 작게 읊조리셨어. 티베트에 전해 오는 말이 있는데 죽기 전에 마지막 내뱉는 말을 신이 들어주신다고 해. 할아버지는 지금쯤 아리 지구에서 신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계실 거야.”
“그곳은 이곳보다도 아름답겠지?”
“응, 그곳은 신의 땅이니까. 야생 당나귀 떼가 초원을 가로지르고, 산양들은 바위를 타고 올라가지. 그 밑으로는 눈처럼 새하얀 눈표범이 웅크리고 있지만 산양들이나 야생 당나귀를 잡아먹지는 않는다고 해.”
웨이는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보았다. 눈이 부시지 않았다. 멀리 아리 지구에 있는 성산 카일라스가 새하얀 눈에 싸인 채 세상을 굽어 보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아리가 서서 바람과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