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웨이의 깨달음
아리는 아침 일찍 야크 젖을 짜고 있었다. 웨이가 일어나서 천막 밖으로 나오자 아리는 아침 인사 대신 이렇게 외쳤다.
“웨이! 오늘 피아노 치러 가자!”
“어, 그래도 돼? 오늘은 아르바이트로 피아노 치는 날도 아니잖아.”
“나 혼자 조용히 웨이의 연주를 듣고 싶어서 저번에 특별히 아저씨에게 허락을 받았지. 웨이가 정말 듣고 싶어 하면 내 연주를 조금 들려줄 수도 있고…….”
라싸는 여느 도시와 비슷하게 닮아 가고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밀려드는 라싸는 여느 관광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빠졌고, 사람들의 손에서는 스마트폰이 떠나질 않았다. 스마트폰 벨 소리가 기도 시간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사원에서는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은 티베트의 문화를 지키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첨단 문명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보다 손바닥만 한 기계가 내는 기계음에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티베트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온통 황금 칠을 한 조캉 사원은 몇백 년 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스님들은 문명과는 담을 쌓은 채 맨발로 기도하고 있었고, 가난한 신도들도 변함없이 아침 일찍부터 부처님을 향해 몸을 낮추었다. 몇 달 전에 출발했는지 모르는 믿음에 가득 찬 신자들도 온몸을 다 부서트리며 오체투지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웨이는 여태껏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티베트의 어린아이들처럼 남들의 삶을 따라가고 있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피아노를 치는 모습 가운데 그 어디에도 웨이는 없었다. 웨이의 삶에는 아빠나 엄마에게서 배운 지혜도,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전설도 들어있지 않았다. 자신보다 열 몇 살 많은 선생님이 한 평도 안 되는 레슨 방에서 꾸중하는 소리가 웨이가 들었던 모든 소리였다.
아리는 꽉 막혀 있던 웨이의 삶에 새로운 문을 열어 주었다. 레슨 방의 문이 아니라 작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비록 삐거덕 소리가 나는 낡은 문이었지만, 웨이에게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목, 깨달음에 이르는 문과도 같았다.
웨이는 조용히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렇게 거대하게만 보였던 피아노가 조금은 작게 느껴졌다. 평생을 쳐도 유명한 피아니스트처럼은 절대 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쯤은 이제 버려도 좋을 것 같았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완전하게 치기 위해 골방에 틀어박힐 필요도 없었다. 생각 없이 앞사람의 발자취만을 좇아 내달리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들기만 한 길이었다.
‘그래, 알고 보면 베토벤의 열정도 모차르트의 숨결도 이 바람 속에 함께 담겨 있는 거야!’
그랬다. 옛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옛날의 지혜도 오늘날의 아름다움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웨이는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악보를 버렸다. 악보를 버리니 음악이 들려왔다. 웨이는 천천히 건반 위를 누볐다. 어떤 곡을 연주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웨이 앞에는 오로지 자신만이 있었고,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자신의 연주가 자신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다른 누구를 위한 연주가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연주회, 지난 모든 기억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아득한 기억의 끝에 웨이는 웨이와 마주 앉아 있었다.
눈 쌓인 산꼭대기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성스러운 산, 카일라스는 순백의 긴 머리를 흩날리며 웨이를 바라보았다. 산기슭에는 자연과 하나 된 눈표범이 보석 같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 선 구도자여! 건반 위에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여! 음 하나에 또 다른 음을 덧대며 어머니인 카일라스에게로 가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심장을 품고 새로 태어날지어다. 하지만 어둠에 둘러싸이면 빛이 들어올 수 없는 법, 어둠 속에 가려진 삶의 장막을 거두어라! 카일라스의 전령사, 바람이 분다. 어둠을 뚫고 차가운 바람이 분다.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비출 평화와 자비를 품고 한 걸음씩, 또 한 걸음씩 나아가라.
인생은 ‘마니차’와 같다. 마니차는 부처님의 말씀을 적은 원 모양의 통이다. 이것을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면 세상에 평화가 깃든다고 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마니차인 인생을 돌리고 또 돌리며 지혜로운 말씀 ‘옴마니반메훔’을 중얼거린다. 진정한 꿈이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잘 해서 겉모습만 번드르르하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며 마음속을 늘 사랑과 평화로 채우는 것인가. 삶의 무거운 짐이 자신을 짓누르지 않도록 늘 우리를 일깨워 주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을 한 걸음씩 최선을 다해 누리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