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소녀, 아리>

8. 만남을 기다리며

by 정이나

웨이를 기다리는 사이 새끼 양이 태어났다.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새로 늘어난 식구는 아리의 몫이었다. 양 우리에 마른 풀을 넣어 주고, 새끼 양이 어미의 젖을 잘 빨지 못할 때면 아리가 우유를 젖병에 담아 새끼에게 젖을 먹었다. 아리는 아이를 돌보는 엄마 같았다. 새끼 양에 관심을 쏟느라 열흘이 후딱 지나갔다. 그다음에는 아빠와 함께 양털을 깎았다. 털을 제대로 깎지 않으면 양은 털 무게에 짓눌려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양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주기적으로 털을 깎아 주어야 한다. 더구나 양들의 털은 아리네 가족의 주요한 소득원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아버지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젖이 나오지 않는 늙은 양 한 마리를 정육점에 팔아 넘겼다. 아리는 이틀에 한 번은 레스토랑에 나가 피아노도 연주해야 했다. 그렇게 바쁜 한 달이 지났다.


아리는 새벽부터 조캉 사원 앞 버스정류장에 나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웨이가 버스를 타고 올 것을 알면서도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 지나는 차들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였다.


‘웨이는 얼마나 변했을까?’

‘이게 얼마 만이지?’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갑자기 못 오면 어쩌지?’

‘버스를 잘 못 탔으면 어쩌지? 혹시 잘 못 알고 다른 곳에서 내렸으면 어쩌나?’


아리는 조캉 사원이 있는 바코르 광장을 둘러보았다. 바코르 광장의 모습도 요 몇 년 사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리가 상하이로 떠났던 4년 전과 비교하면 못 알아볼 정도였다. 신식 건물들이 세워지고, 작은 구멍가게 대신 백화점이 들어섰다. 라싸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몇몇 유목민들까지도 조캉 사원 앞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적은 경전을 읽는 대신 스마트폰을 누르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간판이 생기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부쩍 많아졌다.


상점은 외국인 손님을 끌기 위해 여러 나라 언어로 간판을 내걸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외국인을 따라다니며 공예품을 팔았고, 외국인이 내리는 버스 앞에 서서 구걸하는 아이들도 많이 생겼다. 오랜만에 티베트로 돌아온 아리에게는 모두가 낯선 광경이었다. 아빠는 빠르게 변하는 라싸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셨다. 스마트폰 때문에 부처님에 대한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아리가 상하이에 나가지 않고 티베트에서만 살았다면 이 모든 변화를 신기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가 생각하기에 티베트는 그저 상하이를 닮아 가고 있을 뿐이었다. 상하이 또한 그보다 발전된 세계를 닮아 가고 있었다. 물론 아리의 생각도 아빠와 같았다. 라싸가 상하이처럼 바뀌는 모습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하이에는 여유란 것이 없었다. 오늘을 즐기기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축해야만 했다.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당장 피아노를 즐기기보다 내일을 위해 피아노를 연습할 뿐이었다. 상하이에서 행복은 언제나 미래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행복을 뒤로 미루고 있는 웨이나 친구들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미래인 어른들의 모습도 행복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상하이에서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언제나 피곤했으며 하루하루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어른인 아리의 누나나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도 그저 미래를 위해 살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유목민은 달랐다. 유목민들에게 미래는 중요하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유목민에게는 언제나 오늘뿐이었다. 오늘 양의 배를 채워 주어야 하고, 오늘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오늘 누릴 즐거움을 누려야 했다. 유목민들은 오늘의 행복을 생각할 뿐 미래의 행복은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의 행복은 신의 뜻일 뿐이다. 아버지는 가끔 티베트에 전해 내려오는 속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걱정을 하느라 소중한 하루를 없애 버리지 말고, 날마다 충실하게, 행복하게 살아 내라는 뜻이었다.


아리가 웨이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웨이도 아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칭쟝 열차에서 이틀 밤을 보낸 웨이는 온몸이 뻐근했다. 달리는 기차 안은 털컹거리고 시끄러워 침대칸에서도 제대로 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는 둥 마는 둥 아침 일찍 깬 웨이는 허리를 펴고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커튼을 열자 창밖의 풍경은 밤새 많이 바뀌어 있었다.


상하이에서 태어나 상하이에서만 자라온 웨이에게 창밖의 풍경은 비현실적인 영화처럼 느껴졌다. 멀리 티베트의 토림이 보였다. 티베트 땅의 붉은 흙이 삐죽삐죽 올라온 풍경은 정말 ‘토림’이라는 이름처럼 흙으로 된 숲과 같았다. 아침 해가 토림을 비추자 흙덩이들이 하늘로 자라 올라가는 듯한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멀리 갈색 초원에는 검은 야크들이 점점이 흩어져 풀을 뜯고 있었다. 야크는 한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아 마치 작은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상하이에는 어딜 가나 사람이었다. 웨이의 작은 방 안을 빼고는 온통 사람뿐이었다. 사람이 너무 흔해 사람들은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티베트의 초원에서는 기차를 타고 몇 분을 달려도 한 사람 보기가 힘들었다. 동물도 몇 마리 없었다. 그저 붉고 푸른 땅과 삐죽 솟은 산뿐이었다. 사람이 귀한 만큼 사람의 감정도 귀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었다. 배우고 또 배우고, 고치고 또 고쳐서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는 이런 곳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다.


창밖으로 새파란 호수가 넓은 평야처럼 펼쳐져 있었다.


‘저곳이 아리가 말하던 남쵸 호수가 아닐까?’


제 마음대로 피아노를 치는 아리의 행복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리는 이런 곳에서 살아왔구나!’


웨이는 아리가 부러웠다. 태어나서 한시도 경쟁을 멈추어 본 적이 없는 자신의 삶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티베트의 자연은 고요하지만 거칠었고, 광대하지만 가슴에 한껏 품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티베트의 자연은 아리의 연주와 맞닿아 있었다. 아리의 연주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웠고, 그 자유는 아리의 삶을 벗어나지 않았다. 기차가 속력을 줄이고 있었다. 집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침대칸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미 짐을 챙기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는 중국어로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티베트 사람들은 티베트 말로 인사를 건넸다.


“타시텔레(‘당신의 행복을 기원합니다.’라는 티베트 인사말).”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은 웨이를 보고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웨이도 두 손을 모으고 사람들의 인사말을 흉내 내어 보았다.


“타시텔레.”


인사를 하는 바람에 가방이 어깨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가방에는 아리가 보낸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웨이는 자신에게 인사를 한 사람이 아리와 같은 티베트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참으로 반가웠다.


기차가 속력을 줄였다. 기차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서서히 멈추고 있었다. 아리를 만날 때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드뷔시의 아마 빛 머리의 소녀가 울려 퍼졌다. 열 손가락이 가만 있지 못하고 허공에 달린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웨이에게만 들리는 피아노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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