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소녀, 아리>

7. 웨이가 보낸 편지

by 정이나

이른 봄, 서둘러 티베트로 돌아온 아리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리고 여름부터는 라싸에서도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도 아리의 마음을 읽었는지 되도록 피아노가 있는 라싸 근처 풀밭에서 오래 머물렀다. 아리의 아빠는 유목민이었다. 아리네 가족은 풀밭을 따라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살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더 푸른 풀밭을 향해 이동하다 보니, 연락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아리의 언니는 아리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보내고, 보름이 지나 아리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아리의 아빠는 그 두 개의 편지를 동시에 받았다. 유목민에게는 집배원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유목민이 편지를 받기 위해서는 우체국 사서함을 이용해야만 했다. 우체국에 아리네 가족을 위한 편지함을 만들어 놓고, 아리네 가족이 우체국에 왔을 때, 모아 놓은 우편물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아리가 티베트로 돌아온 후 언니는 편지를 자주 보냈다. 아리가 걱정되기도 했고, 아리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아리는 라싸에 올 때마다 제일 먼저 우체국을 찾았다. 언니의 편지는 보통 두세 통이 함께 있었다. 저녁때가 되면 작은 난로 앞에 가족이 모여 앉아 편지를 읽었다. 날짜를 보아 가며 먼저 온 편지부터 아리가 읽어 나가면, 엄마 아빠는 곁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언니의 안녕을 기원했다. 편지를 읽는 시간은 짧은 기도 시간과도 같았다.


라싸에서 피아노를 칠 때마다 상하이에서의 일들이 생각났다. 그때마다 언니와 웨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라싸에서 처음 피아노를 쳤을 때에는 피아노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조금만 잘못 치면 어깨를 자로 내리칠 것만 같아 왠지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라싸 거리의 사람들은 아리를 보고 마냥 행복해했다. 못 친다고 꾸중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사람들은 아리가 피아노곡을 칠 때에는 신기해하며 숨을 죽여 가며 귀를 기울였다. 연주가 끝나면 느낀 점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었다. 아리가 민요풍의 노래나 티베트가 생각나는 곡을 칠 때에는 노래를 부르고, 맥주를 마시며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다.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있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더구나 레스토랑의 주인아저씨는 아리 덕분에 손님이 늘었다면서 피아노를 칠 때마다 돈을 주기도 했다. 돈은 많지 않았지만 유목인에게는 제법 큰돈이었다.

아리는 오늘도 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렸다. 오늘을 언니의 편지 말고도, 다른 한 통의 편지가 있었다. 너무나 불러보고 싶었던 이름이었다.


‘웨이!’


아리는 먼저 언니의 편지를 읽어 나갔다.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엄마는 옷깃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고, 아빠는 나무 그릇에 보릿가루를 담고 차페지아를 조금 부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반죽하기 시작했다.


언니는 아리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편지의 반절은 새로 생긴 아기에 대한 기쁨에 대해 쓰여 있었고, 다른 반절은 아리에 대한 걱정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끝에 엄마 아빠의 건강을 빌었다. 아빠는 반죽한 짬빠를 손가락으로 뜯었지만 입으로 가져가는 걸 잊은 듯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아리는 웨이의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 엄마 아빠 앞에서 조심스레 읽어 나갔다.





아리에게.


아직도 가끔 네가 티베트로 떠났다는 걸 잊어버릴 때가 있어. 학원에서도 너를 찾아 두리번거릴 때도 있고, 때로는 너를 만나러 나도 모르게 너의 언니 집으로 찾아가곤 해. 네 언니는 나만 보면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마워하셔. 난 그때 네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인데. 지난번에 너의 언니는 내게 맛있는 국수랑 쇼팽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티셔츠도 사 주셨어. 네가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졌다고 하면서. 네가 건강해져서 다행이야!


지금 그곳의 날씨는 어떠니? 상하이는 아직 초여름인데도 무척 더워. 사람들은 벌써 민소매 옷을 입고 다니지.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티베트는 높은 고원이라서 여름이라도 그다지 덥지 않다고 하더라. 그곳은 시원하겠다. 사방이 막힌 피아노학원에서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연습하면 땀이 줄줄 흐를 정도야.

네가 떠난 뒤, 난 예정대로 콩쿠르에 참가했어. 결과는 좋지 않았어. 왜 그럴까? 연습이 부족했던 것일까? 위대한 작곡가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나? 감정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 손가락이 음악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했나?


‘바보!’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피아노가 내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어! 피아노와 대화한다는 네 말이 사실이었다니! 난 그동안 잠을 자면서 피아노를 쳤나 봐. 넌 피아노 앞에서 늘 깨어서 함께 대화를 하거나 기도를 하는 것 같았어. 그렇게 네 몸을 타고 나온 그 연주에는 네 영혼이 오롯이 담겨 있었어! 그런 진실된 연주만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거야!


반면에 나는 꾹 참고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하기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정말 난 바보 같았어. 아리야, 어떻게 하면 피아노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남을 감동시키려 하기 전에 나 자신을 감동시키는 연주를, 살아 있는 연주를 하고 싶어!


아리, 오늘따라 네가 정말 그리워. 나도 그곳 티베트에 가면 너처럼 피아노를 즐길 수 있을까? 피아노만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를 감싸 안는 너처럼 세상과 하나가 되어 마냥 행복할 수 있을까?

네가 태어났다던 남쵸 호수에도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아리의 건강한 얼굴도 보고 싶어. 그래서 이번 여름 방학 때 티베트로 가려고 해. 벌써 엄마의 허락을 받았어. 내가 티베트로 가면 반갑게 맞아 줄 거지?

정말 보고 싶다.


상하이에서 웨이.





아리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편지를 읽으면 웨이가 아리의 옆에서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편지를 뺨에 가져다 대었다. 웨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리는 웨이에게 자신이 태어난 남쵸 호수며 바람의 계곡까지 자신이 아는 티베트의 모든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레스토랑에 가서 신나는 연주도 들려주고 싶었다. 편지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 마치 웨이가 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리는 편지와 잠시도 떨어지기 싫었다. 아리가 천막을 나오자 하늘에서는 수많은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천막 옆에서 먹이를 쫓고 있던 종다리는 깜짝 놀라 푸드득 날아올랐다. 아리는 웨이에게서 온 편지를 치켜들고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달빛이 아리의 머리칼을 어루만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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