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소녀, 아리>

6. 사라진 아리

by 정이나

웨이는 의자에 걸터앉아 무심코 손톱을 깨물었다. 웨이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이 불안할 때면 손톱을 깨물곤 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아리와 친해지면서 손톱을 깨무는 버릇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손톱을 깨물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아리가 가출을 했다고요?”


아리가 어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아리가 아는 길이라고는 학원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뿐이었다. 아는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수많은 간판에 어질어질하여 길을 잃어버리던 아리였다.


“평소대로 연습시켰을 뿐이에요.”


선생님은 아리 언니의 전화에 우물우물 대답했다.

공안에도 연락해 보았지만, 밤새 아무 소식도 없었다. 아리는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아리와 친한 친구는 없었다. 웨이만이 아리의 유일한 친구였다.


‘아리, 도대체 어디에 간 거야!’


불안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혹시 나쁜 사람들에게 잡혀간 것은 아닐까? 아니야, 아닐 거야!’


아리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리의 언니는 회사도 나가지 않고 아리를 찾았지만, 아리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웨이도 마찬가지였다. 아리가 갈만한 곳을 전부 찾아보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아리를 찾을 수 없었다.


‘혹시 티베트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아리는 피아노 연습에 힘들어할 때마다 웨이에게 되뇌듯 말하곤 했다.


“칭쟝열차를 타면 여기서 티베트 라싸까지 이틀밖에 안 걸려.”


말이 이틀이지, 상하이에서 티베트까지는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로 이틀 밤낮을 가야 하는 아주 먼 거리였다. 아리가 말할 때에는 그저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아리가 사라지자 그 거리가 왠지 매우 가깝게 느껴졌다. 아리가 이틀만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곳, 웨이는 아리가 티베트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저녁을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티베트에선 아직 아무 소식도 없었다.


웨이는 길을 가다가도 흠칫 놀라 문득문득 뒤돌아보았다. 어디에선가 아리가 갑자기 나타나 어깨를 잡고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놀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티베트에 가지 않았다면…….’


웨이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리가 학원에서 뛰쳐나간 지 보름째,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대륙에서 밀려오는 추위를 막기 위해서는 두꺼운 옷을 입고도 옷깃을 올리고, 목도리까지 둘러야 했다. 상가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고, 상점 앞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연말의 기분을 더하고 있었다. 아리의 언니는 시내를 옮겨 다니며 아리의 사진이 들어있는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웨이도 가끔 거들었지만, 이렇게 해서는 아리를 찾을 것 같지 않았다.


‘오늘은 신텐디 쪽으로 가 보자.’


웨이는 남은 전단지를 아리의 언니에게 넘겨 주고 혼자 신텐디로 향했다. 신텐디는 상하이 남쪽에 있는 화려한 쇼핑몰이었다. 쇼핑몰 뒤로는 작은 골목이 미로처럼 엉켜 있었다. 골목은 군데군데 빙판이 져서 미끄러웠다. 하지만 술래잡기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아리가 벽돌 주택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 골목에서도 아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날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웨이가 반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골목길을 나왔을 때 하늘에서는 작은 눈송이가 흩날렸다.


신텐디 골목의 반대편으로 나온 웨이는 느릿느릿 흘러가는 황푸 강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번화가에서 꽤나 떨어진 곳이었다.


‘아리도 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좋으련만…….’


춥고, 배고프고, 발은 시리고, 온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다리가 아팠다. 아무 데나 쓰러져 깊이 잠들고 싶었다. 강변에는 화려한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웨이를 빼고는 모두 즐거워하고 있었다. 강변에 선 연인들은 서로의 손을 잡거나, 허리를 두르거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눈 내리는 푸르른 강물이 강변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약속하는 듯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강변 한 편에 알록달록 분홍빛으로 꾸며진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카메라 한 대가 있었고 동물 인형 탈을 뒤집어 쓴 사람이 익살맞게 춤을 추며 카메라 앞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모았다. 하지만 추운 겨울, 시린 손을 불어 가며 강변에 나와 피아노를 치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한참 만에 거지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나타나 더러운 담요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쓴 채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동물 인형 탈을 쓴 사람이 나와 그 사람을 쫒아 버리려 했지만,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담요를 만지기 싫은지 주춤하고 있었다. 몸집이 작아 어른인지 아이인지 모를 그 사람은 더러운 담요 안에서 시커먼 손을 내밀어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려놓았다. 카메라맨만이 좋은 장면을 만났다는 듯 열심히 찍어 대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은 그 사람은 오른손 검지를 내어 피아노 건반을 하나 쳐 보았다. 음이 멀리 가지 못하고 강변에서 부서져 버렸다. 그는 숨을 고르듯 잠시 멈추더니 다시 한 음을 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음이 부서지기 전 다른 음을 쳤다. 다른 음이 부서지기 전에 또 다른 음을 이어갔다.


“도 레 미 솔솔 솔 라 도 파파~”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추어 섰고,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연주는 더욱 빨라졌다. 웨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 음들이, 이 음악이 낯설지 않았다.


‘이 곡은……!’


웨이는 이 곡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껏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치던 연주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음악에는 찬바람이 밀려드는 황푸 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음들은 물결을 타고 일렁이다가,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떨려오기도 했다. 그 무엇보다 작은 목소리가 피아노의 음을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카메라맨의 입에 오롯이 미소가 번졌다.


“슈만의 아베그변주곡.”


수많은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애달픈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아베그변주곡은 처음이었다. 손을 비비던 사람들은 추위를 잊었고, 연인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사람들의 미소에 평화가 깃들기 시작했다.


변주곡은 점점 더 힘을 받고 있었다. 그를 감싼 거적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그곳에는 웨이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아리!’


얼어붙은 웨이의 입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리의 연주가 끝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아리가 떠나가려고 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리를 놓아 주지 않았다.


“브라보! 브라보!”

“앙코르! 앙코르!”


아리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얇은 담요를 뒤집어썼다. 낮은 음에서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땅, 아리의 고향 티베트를 불러오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땅에 귀를 대곤 하셨다.


“아빠 뭐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


“땅의 숨소리를 듣는단다.”


“땅의 숨소리……, 아빠! 땅도 숨을 쉬나요?”


“물론이지. 귀를 대고 잘 들어 봐. 보통은 십 분에 한 번 정도 숨을 쉰단다. 하지만 화났을 때는 우리처럼 숨이 거칠어지지.”


“그럼 화났을 때는 오 분에 한 번 정도 숨을 쉬나요?”


아빠는 빙긋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리는 아빠를 따라 땅에 귀를 대어 보았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땅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리는 땅의 숨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리하여 날마다 땅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죽였다. 티베트에서의 삶은 느린 듯 빠르고, 빠른 듯 느렸다. 아리가 한 해를 더 살고, 또 한 해를 살아 내었을 때, 땅은 자신의 느린 숨소리를 아리에게 들려주었다.


“땅이 내쉰 숨은 높은 산에서 낮은 벌판으로 흘러간단다. 사람들은 대지의 숨을 바람이라 한단다.”


“그렇다면 숨을 들이쉴 때는 어떻게 되나요?”


“바다 저 건너에서부터 바람이 산으로 밀려온단다. 바람이 밀려 올 때는 언제나 지나 온 땅의 이야기를 전해 주지. 자 바람 소리를 잘 들어보렴. 바람 소리에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아리를 귀를 기울여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아리에게 바람은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은 숨이었고, 바람은 생명이었고, 바람은 말이었고, 바람은 이야기였고, 바람은 노래였다.


“사람과 대지가 원래 하나였단다. 둘은 하나의 생명이지. 사람은 대지의 숨을 나누어 마시고, 사람은 자신의 숨을 대지에게 돌려주지. 그래서 사람이 아프면 대지도 아프고, 대지가 기뻐하면 사람도 들뜨게 된단다.”


아리는 이 기분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다. 숨 쉴 시간조차 아껴서 사는 바쁜 상하이의 사람들에게 저 멀리 티베트에서 불어오는 섬세한 숨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아리의 손은 신들린 듯 움직였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리만의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아리의 음악을 가슴으로 전해 받고 있었다. 아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악보와 똑같게, 선생님과 똑같게, 다른 피아니스트와 똑같게, 어제와 똑같게……, 아리는 악보가 아니었다. 아리는 선생님도 아니었고, 아리는 그 어떤 위대한 피아니스트와도 달랐다. 더구나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아리는 어제의 아리와도 결코 같지 않았다. 아리는 똑같이 연주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에 결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연주할 수 없었다.

아리는 아리일 뿐이었다.


그렇게 아리의 마지막 소절이 끝났다

아까와는 달리 함성도 앙코르도 없었다. 아리는 행복했지만 그 행복감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 잠시,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동물 인형 탈을 쓴 사람이 탈을 벗었다. 겨울인데도 그의 얼굴은 땀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그는 인형 장갑을 낀 손으로 사람의 박수를 쳤다. 소리는 소리를 불렀다. 박수는 박수를 불렀다.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지의 숨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깨어나 박수 소리로 자신이 받은 고마움을 되돌려주고 있었다.


아리만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아리는 행복했다.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몇 사람이 아리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아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너무 지쳐서 이제 그만 쉬고 싶을 뿐이었다. 아리는 강변을 따라 걸어갔다. 목적지는 애초에 없었다.

아리의 피아노 소리를 들은 웨이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두 걸음,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리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아리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웨이는 달려가 아리의 머리를 받쳐 들었다. 아리의 눈이 거의 감겨 있었다. 몸에 열이 올라 온몸이 뜨거웠다.


“아리! 아리야! 정신 차려!”


아리는 닷새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영양실조에 심한 감기와 우울증이 겹쳐 링거를 맞은 채 안정을 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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