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엉망진창 레슨 날
아리에게는 자신보다 열다섯 해나 일찍 태어난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라싸에 관광을 온 한족과 만나 결혼해서 상하이에 살았다. 언니는 자리가 잡히자마자 티베트에서 막 열 살 된 아리를 데려왔다. 더 어릴 때부터 아리의 재능을 알아본 언니는 아리를 피아노학원에 다니게 했다.
아리는 상하이의 서쪽, 난징시루역 부근의 롱탕에 살았다. 롱탕은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이주해 온 서민들이 사는 아기자기한 동네였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사는 롱탕 거리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모여들어 온통 북적거렸다. 큰길가에서 휘황찬란한 백화점 쇼핑에 지친 관광객들은 한 블록만 걸어 들어가면 나오는 롱탕 거리에 들어와서 떠들썩하게 사진을 찍어 대곤 했다.
상하이의 바람은 티베트의 바람보다 덥고 습했다. 티베트 고원의 공기는 상하이보다 산소는 적었지만 훨씬 상쾌하고 신선했다. 상하이의 공기는 어딘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창밖에 가로질러 걸려 있는 긴 대나무에 빨래를 널었다. 가지각색의 빨래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휘날릴 때면 티베트의 오색 타르쵸가 생각났다. 티베트에서는 돌무더기를 쌓아 돌서낭탑을 만들고, 돌서낭탑에 부처님의 말씀을 적은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흰색의 천을 매달아 놓았다. 이를 타르쵸라 했다.
‘타르쵸를 볼 때마다 그 앞에서 향을 사르고 기도하곤 했는데…….’
아리는 머리 위로 흩날리는 빨래들도 타르쵸라고 생각했다. 상하이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이주민들의 소소한 삶과 소망이 빨래에 스며 있는 셈이었으니까. 아리는 햇빛에 반짝이는 빨래를 보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아리는 돌서낭탑에서 기도를 하듯 두 손을 모아 마음속의 타르쵸를 향해 기도를 올렸다.
“엄마, 아빠가 건강하게 잘 계시기를…….”
아리는 왜 자신이 부모님과 떨어져 상하이에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피아노는 기꺼이 아리와 마음을 나누는 멋진 친구가 되어 주었지만 아리는 티베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언니는 아리를 한사코 붙잡았다. 조금만 더 참으면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될 수 있다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아리의 재능이 도리어 아리의 발목을 붙잡는 덫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오늘은 레슨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 아리에게 피아노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아리는 계속하여 두 번째 기도를 올렸다.
‘레슨 선생님에게도 평화와 미소가 깃들기를…….’
아리는 레슨 방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선생님 앞에서 연습 도중에 계속해서 혼날 것을 생각하니 긴장이 되어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하지만 웬일인지 선생님이 들어오질 않았다. 약속한 시간은 벌써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선생님이 늦을수록 무언가가 가슴속을 점점 더 세게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더해왔다. 피아노 뒤에 있는 방음벽이 자신을 짓누르려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레슨 방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열지 않았는지 뻑뻑해서 잘 열리지 않았다. 아리는 피아노 의자에 올라가 온 힘을 다해 창문을 밀었고, 창문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밖으로 밀려 나갔다. 창문이 활짝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시원한 가을바람이 밀려들었다. 세찬 바람은 악보대에 쌓인 악보를 날려 버렸다. 악보대가 텅 비자 무겁게 짓눌렸던 아리의 가슴이 편안해졌다. 밀려드는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상하이에도 겨울이 오고 있었다.
상하이에서 세 번째 맞는 겨울이었다. 상하이의 겨울은 티베트의 겨울보다 포근해서 티베트의 가을 날씨쯤 되었다. 아리는 해발 4천미터 고원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생각했다. 바람은 적도에서 북극까지, 아시아에서 아메리카까지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기억하고 있다가 아리에게 들려주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이 전해 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리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예요?”
“아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까?”
아리는 이야기가 궁금해 바람이 뜸을 들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빨리요. 빨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세요.”
“그럼 오늘은 산 너머 마을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 주지.”
“제목이 뭐예요?”
“‘새앙토끼를 쫓는 티베트여우’야.”
아리는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피아노 앞에 앉아 오랜 친구의 뺨을 어루만지듯 피아노를 쓰다듬었다. 아리는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입술을 오므렸다. 이야기가 흥을 더해 갈수록 아리는 흥겨운 고갯짓과 경쾌한 어깨춤을 더하면서 빠르게 연주해 나갔다. 악보에는 없지만 아리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곡을,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연주하기 시작했다. 비좁은 레슨 방은 어느새 드넓은 초원이 되어 있었다.
앞서 달려가는 새앙토끼를 잡으려 티베트여우가 재빠르게 뒤쫓았다. 여우는 새앙토끼보다 덩치도 크고 발도 길었다. 새앙토끼가 다섯 걸음을 달려가면, 티베트여우는 여섯 걸음씩 쫒아 왔다. 작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풀숲에 숨어 보기도 했지만, 코를 킁킁거리던 여우는 쉽게 새앙토끼를 찾아냈다. 새앙토끼의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대로 잡혀 죽을 수는 없었다. 새앙토끼가 죽으면 엄마 아빠가 슬피 울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때 새앙토끼의 머리맡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새앙토끼의 냄새를 품고 비탈을 내려가면 여우가 금방 따라올 텐데, 새앙토끼에게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칠 힘도 없다,
천만다행으로 새앙토끼의 앞에는 작은 바위틈이 있었다. 새앙토끼는 바위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티베트여우는 코를 킁킁거리며 한 발 한 발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자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티베트여우는 앞발로 눈가를 문질러 보았다. 여우 앞에 떡 나타난 바위가 마치 도깨비의 성난 얼굴과 같았다.
‘조로롱, 조로롱’
새앙토끼가 어디 있나 귀를 쫑긋거려 보았지만 새들의 지저귐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뿔난 티베트여우가 높은 나무 위의 새들을 향해 짖어 댔다. 그때 새앙토끼의 냄새를 품은 바람이 티베트여우의 목구멍 속으로 확 달려 들어갔다. 새앙토끼 냄새에 목이 막힌 여우는 캑캑거리면서 언덕 아래로 달아났다.
“하하하하하!”
눈앞에서 토끼를 놓친 여우의 안타까움과, 안심한 토끼의 모습, 바람의 장난스런 복수까지 생각하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리의 손가락은 바람이 전해 준 음을 세상에 알려 주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지만 아리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문이 열리고, 아리의 꿈은 서둘러 깨어져 버렸다. 이야기를 품고 있었던 바람은 어느새 도시의 메마른 바람으로 변해 있었다. 선생님은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레슨 방 안이 난장판이었다. 바람을 따라 악보가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져 날리고 있었다. 아리의 머리칼은 마구 헝클어져 있었고, 피아노 아래에 벗어 놓은 아리의 신발과 양말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선생님은 너무 놀랐다. 아리보다도 더 당황한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선생님이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으려고 하는 찰나, 상하이의 메마른 바람이 선생님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선생님은 아리의 이름을 부르다 말고 재채기를 해 대었다.
“아리, 아리! 콜록, 콜록! 이게 다 뭐 하는……, 에에~ 에취!”
선생님은 한참이나 콜록거린 후에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레슨 방 문을 지나 연습 대기실로 불어 나갔다. 하나 둘씩, 연습생들이 아리의 레슨 방 주위로 몰려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들여다보던 웨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리는 겁먹은 아이처럼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웨이는 불안해졌다. 그렇다고 선생님 앞에 당당히 서서 아리의 편을 들 용기도 없었다. 웨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아리의 레슨 방 안으로 들어와 창문을 닫고, 흩어진 악보를 추슬러 악보대에 올려 놓았다. 아리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듯했지만 밖이 소란스러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다행한 것은 아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아리를 주목하는 있는 눈이 많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될 수 있으면 부드럽게 이 상황을 넘기고 싶었다. 아리는 이 학원에서 가장 골칫덩이이긴 하지만 가장 재능 있는 아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웨이가 모아놓은 악보를 차례대로 정리해 나갔다.
“아리 학생, 선생님이 없는 동안 실컷 놀았으니 이제 다시 연습하기로 하지요. 이제 콩쿠르가 얼마 안 남았어요.”
“자, 슈만의 변주곡을 다시 쳐 보세요.”
아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처럼 슈만의 곡을 치기 시작했다. 씩씩거리는 선생님의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직도 몇몇 아이들은 레슨 방 밖에서 작은 세로 창에 매달려 아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리는 음을 제대로 살려 내지 못했고, 기다렸다는 듯 30센티 자가 아리의 어깨를 내리쳤다.
“시작부터 이게 뭐예요? 시작부터…… 내가 콩쿠르의 심사위원이라면 단칼에 떨어뜨리겠어요! 자, 다시 쳐 봐요.”
수백 번도 더 친 곡이었지만, 치면 칠수록 곡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치면 칠수록 곡은 어려워져 갔다. 어느 부분에서 쉬어야 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빠르게 달음질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이 좁은 방에 계속 머물러 있다간 숨이 막혀 버릴 것만 같았다.
문에 매달려 있던 연습생들은 따분해졌다. 어느새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리는 손가락이 떨려와 점점 더 엉망으로 치게 되었다. 선생님은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다가 어느 틈엔가 레슨 방을 나가 버렸다. 웨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방에 들어왔을 때 아리는 건반 위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아리, 괜찮아?”
웨이는 아리의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였다. 눈물범벅이 된 아리가 목이 메는지 갑자기 입을 가리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