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피아노를 배우던 날
“바보! 바보!”
아리는 혼자 꾸짖듯 중얼거리며 자기 머리에 세게 꿀밤을 주었다. 어느새 조캉 사원 앞이었다. 사원 앞의 둥근 광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아리를 바라보았다. 아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길거리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느새 바코르 시장에 도착한 것이다.
‘아빠는 어디 있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아리의 생각은 금방 바뀌었다.
‘아빠는 아직도 야크 털을 흥정하고 계실 거야. 사람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날 기다리지 않으실걸.’
아리는 초원으로 돌아가자는 괜한 투정으로 아빠를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시내 구경은 아빠도 여러 달 동안 별러 온 일이었다. 아리는 힘없이 천막이 있는 초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리네 천막은 라싸 시내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서두르고 싶지는 않았다. 아리는 딱딱한 아스팔트 도로 아래에 있는 흙으로 된 갓길에 내려섰다. 밤새 얼었다가 따듯한 햇살에 녹은 땅은 퍼석퍼석해서 밟는 기분이 좋았다.
‘참 폭신폭신해. 마치 피아노 건반 같아.’
방금 전 피아노를 치고서 받은 박수에 당황했던 일은 이미 잊어 버렸다. 아리는 양팔을 좌우로 쭉 편 채, 발로 피아노를 연주하듯이 사뿐사뿐 뛰며 걸었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이름 하나를 속삭여 주었다.
“웨이, 웨이~”
이제 막 어깨까지 자란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아리의 목에 두른 노랗고 붉은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 나풀거렸다. 여름이 온 걸 아는지 여느 때보다 더 초원은 푸르렀다.
아리는 열 살 즈음부터 작년 겨울까지 3년 동안 중국 상하이에서 살았다. 상하이에 있는 피아노학원에서 웨이를 만났고, 웨이는 아리에게 건반 누르는 법을 알려 주었다.
“건반을 차지게 눌렀다 떼어 봐. 그러면 건반이 손끝을 따라 올라오거든.”
웨이는 비밀을 속삭이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자신이 피아노를 치듯이 웨이는 아리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등을 겹쳐 올리고는, 아리의 검지손가락을 눌러 ‘라’ 음이 담긴 건반을 깊게 눌렀다. 웨이의 손가락 밑에 있던 아리의 손가락이 건반과 함께 올라올 때 아리는 이미 마치 고원에서 불어오는 듯한 ‘라’ 음에 푹 빠져 있었다. 바람처럼 스스로 노래하는 건반, 아리는 ‘라’ 음을 가진 피아노가 마음에 들었다. 아리는 건반의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웨이는 건반 하나에 이렇게 기뻐하는 아이는 본 적이 없었다.
“왜 웃는 거야? 건반의 느낌이 이상하니?”
“아니, 건반이……”
“건반이 뭐?”
“건반이……, 벌꿀처럼 달콤해. 꿀통에 손가락을 담갔다 떼면 달콤한 꿀이 손가락에 묻어 올라오듯이.”
웨이는 건반을 벌꿀에 비유하는 아리의 엉뚱한 생각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아리는 웨이의 그 웃음도 건반만큼 달콤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포개 놓은 채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웃다 보니 아리의 입술에는 실제 달콤한 꿀이 묻은 느낌이었고, 아리는 혀로 그 달콤한 꿀을 빨아 먹었다. 웨이도 따라서 자신의 입술을 핥아보았다. 정말로 달콤함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 피아노는 아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악보에는 노랫말이 쓰여 있지 않아도 건반이 내는 소리 안에는 언제나 노래가 담겨 있었다. 아리에게는 건반이 부르는 노래가 들렸다. 아리는 건반을 누를 때마다 입술을 달싹거려 건반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하지만 피아노 선생님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리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선생님은 얼굴을 찡그렸다.
“아리, 노래는 안 돼. 입은 다물고 연습해야지.”
“하지만…… 음악은 노래 아니에요? 노래하지 않으려면 왜 노래책을 연주하나요?”
“노래책이라니…… 아리, 피아노를 잘 치려면 집중해야 해. 노래를 하다간 정신이 흐트러져 연습이 되겠니? 그리고 여긴 피아노학원이야. 노래는 집에서 부르고, 여기 학원에서는 피아노만 치는 거야! 알겠니?”
아리는 피아노 한 대와 피아노 의자만으로 꽉 찬 자그마한 방을 둘러보았다. 방이 얼마나 좁은지 등이 벽에 닿을 지경이었다. 벽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다. 여러 층으로 된 학원 건물에는 이런 방이 수없이 많았는데, 양계장에서 작은 우리에 갇힌 닭들처럼, 아이들이 작은 방에 갇힌 채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다. 학원에는 피아노 소리와 선생님의 꾸짖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피아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아리는 더 이상 피아노 곡에서 자유롭게 바람과 벌꿀을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시끄러운 소리가 새어 나갈라 꽉 닫아 놓은 좁은 피아노 방의 창과 문은 아리를 움츠러들게 했다. 절대 틀려서는 안 되는 새까만 악보가 놓인 악보대는 아리의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고, 선생님의 꾸지람은 아름다움을 듣는 아리의 귀를 꽉꽉 막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