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티베트의 소녀, 피아노와 만나다
한동안 아리네 가족이 머물던 곳은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북쪽 시가체 시 부근이었다. 양털을 내다 팔 수 있는 라싸에서는 열흘 정도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라싸로 가는 길에는 꼭 남쵸 호수에 들렀다.
남쵸 호수는 아리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인지 몰라도 아리는 남쵸 호수에 다다를 때마다 마치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다. 머리를 헤집고 다니던 수많은 생각들이 맑은 호수 물에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아리는 작은 물살이 쉼 없이 밀려와 부딪치는 호숫가에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아리는 당장이라도 엄마 품처럼 넓은 호수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성스러운 남쵸 호수에서는 수영은 물론이고 몸을 씻어도 안 되었다. 가슴 가득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이 호수를 지날 때면 마음속 이야기를 호숫가에 풀어놓았고, 호수는 그윽한 얼굴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사람들은 호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었고, 신이 내어 주신 오늘 하루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깃들기를…….”
아리의 소망도 호수의 찰랑임 속으로 녹아들었다. 길을 떠난 지 벌써 스무 날째, 양들에게 풀을 먹이며 쉬엄쉬엄 이동하던 아리네 가족은 비로소 라싸 부근에 있는 초원에 자리를 잡았다. 한낮의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여름 한철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아빠는 라싸에 있는 바코르 시장에 양털을 내다 팔 생각이었다.
양털을 깎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양의 털을 깎아 주면 양들은 고원의 밤 추위를 이겨 내려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열심히 뛰어다닌 양들은 건강했다. 하지만 아리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설렘이 아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라싸 시내에 갈 수 있다!’
아리의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거렸다.
아리는 지난 봄에도 라싸 부근에 머무르고 있었다. 라싸 시내를 돌아다니던 아리는 레스토랑의 유리문을 통해 라운지에 홀로 놓여 있는 피아노를 보았다. 아무도 치지 않는 피아노가 너무나 외로워 보여서 아리는 그 피아노만을 홀로 남겨 두고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 피아노를 바라보던 아리의 간절한 표정을 보았던 것일까? 홀 안에 있던 주인아저씨가 문을 열고서 아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게 뭔지 궁금하니? 저건 말이지, ‘피아노’라고 하는 거야.”
아리는 주인아저씨가 약간 으스대며 말하는 그 순간조차도 피아노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아저씨는 의아해져 다시 물었다.
“너 혹시 피아노를 알고 있니?”
아리는 여전히 피아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중얼거렸다.
“피아노, 피아노……,”
피아노란 단어가 입술로 감겨들어 입 속에서 메아리쳤다.
“피아노, 알고말고요.”
아저씨는 아리의 허름한 옷차림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리며 살펴보았다.
“책에서 피아노를 보았구나!”
아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저, 상하이에서 피아노를 배웠어요.”
아저씨는 아리의 옷차림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가난한 유목민의 딸이었다. 아저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말해 보았다.
“그럼 말이지, 얘야, 네가 저 피아노를 한 번 연주해 보지 않겠니? 이 식당을 운영하던 외국인이 가게를 팔 때 피아노도 덤으로 넘겨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근처에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단다. 그래서 나도 건반만 몇 번 두드려 보았을 뿐,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단다.”
아저씨는 아리가 정말로 피아노를 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달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말을 들은 아리의 마음은 달랐다. 아리의 가슴이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만난 듯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아리의 설렘을 느꼈는지 유리문 너머에 있는 피아노도 더 이상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아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살며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 옛날 당나라에서 라싸로 시집 온 공주님이라도 되는 양, 한 걸음, 또 한 걸음 조심스럽게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아리는 피아노 앞에 앉아 두 손을 모으더니 입술을 오므려 ‘옴’ 하는 소리를 내었다. ‘옴마니반메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온 세상에 퍼지리라는 티베트의 기도문이었다.
아리는 잠시 아저씨를 올려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는 팔짱을 끼고 피아노 옆에 서서 아리를 내려다보았다.
아리는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어서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듯 근질근질했다. 아리는 ‘나의 칭하이 호’를 연주했다. 얼마나 연주를 맛깔나게 했던지, 주인아저씨는 어느새 팔짱을 풀고 어깨를 들썩이며 발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아서 음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까, 굳은 손가락이 잘 움직여 줄까 걱정스러웠지만, 자신의 손끝에서 또렷이 들려오는 음 앞에서 모든 걱정은 봄볕에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나의 칭하이 호’는 티베트인이 사랑하는 대중가요였다. 이 곡을 치는 데는 복잡한 손기술 따윈 필요치 않았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아리의 입술에서는 노랫말까지 흘러나왔다. 아저씨는 홀린 듯한 아리의 연주에 빠져들었다. 아리의 연주에 감동받은 아저씨는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그러고는 아리에게 언제라도 와서 피아노를 쳐도 좋다고 거듭 말해 주었다.
하지만 지난 넉 달간 아리는 안타깝게도 라싸에 머무를 수 없었다. 유목민인 아리네 가족은 양들에게 신선한 풀을 먹이기 위해 먼 곳으로 이동을 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만큼은 그대로 라싸에 머물러 있었다. 아리는 티베트의 고원에서 양 떼를 모는 동안 마음속으로 수많은 연주를 했다. 바람이 내어 주는 선율을 따라 건반을 눌렀고, 풀들이 흥얼거리는 동작을 따라 손가락 기술을 익혔다. 야크의 등을 건반 삼아 누르면 손가락 끝에서 피어오르는 소리가 마음속까지 파고들었다. 피아노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자연에서 더 많은 음을 배우면 배울수록 피아노에 대한 목마름은 하루하루 간절해졌다.
아빠와 함께 오랜만에 라싸에 도착한 아리는 곧바로 레스토랑을 향해 달려갔다. 숨을 헐떡이며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레스토랑 주인아저씨는 마침 밖에 나와 카펫을 털고 있었다. 몇 번 보지 않은 얼굴이지만, 아저씨는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맞이하듯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저씨, 아저씨!”
“오! 라싸에 피아니스트께서 납셨구나. 그래, 오늘은 어떤 연주로 이 아저씨를 놀래 줄 거니?”
“야크를 타고 양 떼를 칠 때 바람에게 배운 노래를 쳐 볼 생각이에요.”
아저씨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이면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마음껏 연주해 보거라!”
아리의 손이 건반 위로 올라갔다. 처음 열여섯 개의 잔잔한 음을 칠 때까지는 놀라울 것이 없었다.
“미 미미 미 파 미 도 미~”
아리는 혹시 날아갈세라 가슴에 쌓아 놓았던 음들의 껍질을 한 껍질 한 껍질 벗겨 나갔다.
“미 미미 미 파 미 도 미.”
바람의 소리는 초원을 지날 때에는 부드러웠지만, 산 위에서 내려올 때는 섬세하고 날카로웠고, 산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에는 세찼다. 티베트 고원의 겨울 칼바람을 표현할 때에는 오른손이 검은 건반과 하얀 건반을 쓸어내렸고, 칼바람을 이겨 내는 야크의 고요한 눈동자를 표현할 때에는 왼손이 검은 건반과 하얀 건반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음정은 음정을 더해 가락을 지어내고, 가락은 가락과 어울려 화음을 만들어 냈다. 바람은 아리의 몸을 통과해 나오며 새로 태어났고, 연주를 듣는 사람은 새로 태어난 음악을 통해 티베트의 바람을 느꼈다.
양손의 빠른 아르페지오는 듣는 사람의 정신을 쏙 빼어 놓았다. 빠르게 펼쳐지는 음들은 거센 회오리바람이 되어 멍하니 서서 연주를 듣고 있는 주인아저씨의 영혼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리의 연주는 꽉 막힌 유리창까지 뚫고 나갔다. 사람들은 레스토랑으로 밀려들었고,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유리창 밖에 서서 아리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라싸에 처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였지만, 피아노가 바람을 표현하고 있었기에 티베트 사람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소리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리의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몸을 어떻게 가누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열린 유리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아리는 갑자기 한기를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잠시나마 작은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빼고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브라보!”
어느새 안에 들어와 있던 금발의 외국인 남성이 ‘브라보’를 외치면서 박수를 쳤다. 라싸의 사람들에게 아리의 연주는 최면과도 같았다. 잃어버린 과거의 모습이기도 했고, 가고 싶은 극락의 모습이기도 했다. 아리의 연주로 걸린 최면이 외국인의 목소리로 깨어났다. 레스토랑의 안과 밖으로 박수 소리가 가득했다.
아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부끄럽기만 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귓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리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레스토랑 밖으로 내달렸다. 몇몇 사람은 달려가는 아리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가만히 합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