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소녀, 아리>

1 티베트 소녀, 아리의 아침

by 정이나


초여름 어슴푸레한 새벽빛은 허락도 없이 얇은 천막을 감싸 안았고, 그대로 떨어져 아리의 눈꺼풀 위에 내려앉았다. 빛의 간지럼에 아리의 눈꺼풀이 옅게 흔들렸다. 아침이었다. 빛에 이어 휘파람 부는 듯 낮은 바람 소리도 아리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매애 매애’


양의 울음소리가 뒤척이는 아리의 몸을 깨웠다.


‘벌써 아침인가 봐.’


아리는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침마다 엄마가 양젖을 짤 때마다 양은 아련한 울음을 울었다. 그 울음은 날마다 같은 시간에 울리는 자명종과도 같았다. 아리는 아침에 자신을 깨우는 양의 울음소리가 좋았다.


아리는 이제 막 열세 살이 되었다. 티베트에서 태어나 티베트에서 자란 아리는 보이고 들리는 것뿐만 아니라 코로 스며드는 내음과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까지, 티베트의 모든 것에 마음을 주었다. 한낮에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과 밤마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 사파이어 같이 차갑게 빛나는 호수며 고원을 뛰어다니는 작은 동물들, 지천에 피어나는 아마 빛 들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리의 마음은 아무나 가 닿을 수 없는 구름 나라로 둥실 떠올랐다.


아리에게는 제 또래의 아이들이 귀찮아하는 땔감 모으는 일조차 즐거울 뿐이었다. 티베트에는 나무가 귀했다. 땔감을 구하기 위해서는 눈 지 하루 지난 ‘쭤’를 돌로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어야 했다. ‘쭤’를 바위에 널어서 햇볕에 잘 말리면 좋은 땔감이 되었다. ‘쭤’란 고원의 소, 야크가 눈 똥이다. 아리는 잘 마른 야크 똥을 품에 몇 개씩 안고 천막 주위로 들고 와서 마치 담을 세우듯 가지런히 쌓아놓았다. 똥으로 만든 담이 높아질수록 아리의 마음은 넉넉해졌다. 아리는 자신을 태워 가며 천막 안을 따뜻하게 해 주고 음식을 끓여주는 쭤가 고마웠다.


아리는 옷깃을 여미고 제법 쌀쌀한 천막 밖으로 나왔다. 늘어선 양들은 서로 머리가 엇갈린 채 두 줄로 묶여 있었고, 엄마는 양들의 꽁무니 뒤로 뱅 돌아가며 젖이 잘 돌도록 양 젖을 손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아리, 잘 잤니?”


엄마가 옷깃을 모아 쥐고 있는 아리를 보며 말했다.


“네, 엄마. 엄마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럼.”


아리는 천막 밖에 쌓아놓았던 야크 똥을 몇 개 집어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난로에 불을 지피고 나서 찻물이 든 냄비를 올려놓았다. 아리는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티베트의 노래 ‘나의 칭하이 호’를 조그맣게 흥얼거렸다. 열 개 손가락은 무릎 피아노를 치고, 발은 페달을 밟았다.


고원 위에서 짙푸르게 출렁이는

마음속의 큰 호수, 칭하이 호


거듭거듭 밀려오는 물결이 휘감길 때

내 마음은 아득한 옛날로 되돌아가네


보라! 세계의 지붕인 눈 덮인 고향에

피와 땀으로 힘들게 창조한 기적을!


아~ 아~

나의 칭하이 호

나의 칭하이 호


고원지대의 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날개를 단 물들은 공중으로 솟아올라 깨끗하게 사라져갔다. 아리는 익숙한 솜씨로 대나무로 만든 긴 통인 ‘돔부’에 뜨거운 찻물을 부었다. 깨끗한 천에 싼 네모진 야크젖 버터 한 덩이를 돔부에 넣고 소금을 살살 뿌렸다. 그러고 난 뒤, 아리는 긴 가락을 돔부에 꽂아 넣었다.


“이제 백팔 번을 저어야 해.”


꼭 백팔 번을 저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백팔 번을 돌면 세상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 영원한 쉼을 얻을 수 있다는 카일라스 코라를 생각했다. 카일라스는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는 성스러운 어머니 산의 이름이다. 카일라스 산 주변을 돌며 순례하는 것을 ‘코라’라고 한다. 아리는 카일라스 산을 백팔 번 돌 듯, 차를 백팔 번 젓는 정성을 다시 백팔 번을 한다면 소원이 이뤄지리라 생각했다.


‘그래, 정성은 한 걸음씩, 아주 조금씩 보태 가는 거야.’


가락을 오십 번쯤 돌리자 아리의 몸에도 열이 올랐다. 몸이 따뜻해졌다. 야크 똥 난로만으로는 열기가 부족했던 아리의 선조들은 체온을 올리기 위해 이런 백팔 배와 같은 기도를 개발했는지도 모른다. 아리는 두 발을 벌려 단단히 땅에 붙이고 두 손으로 가락을 잡고 저으며 남은 횟수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백팔 번을 다 돌리자 아리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아리는 정성스러운 기도 끝에 만들어진 걸쭉한 차를 작은 찻주전자에 나누어 따랐다.


‘이 정도 양이면 오늘 마시기에는 충분해!’


아리는 만족스러웠다. 아리가 만든 차는 고소한 맛이 났다. 사람들은 이 차를 ‘차페지아(수유차)’라고 불렀다. 이 ‘차페지아’가 오늘 하루 아리네 세 식구가 먹을 음식의 전부였다. 다른 날 같으면 차페지아를 한 잔 마시자마자 곧바로 야크 똥을 주우러 갈 테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어제부터 아빠가 양털을 깎고 있기 때문이었다.


차를 만드는 아리.png

AI 생성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