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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나 Nov 24. 2024

넷째 날

골 빠지는 구들방 작업

웬일인지 오늘은 새벽에 잠이 깼다.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압력솥으로 밥을 한다고 투닥거려보다가 하도 뚜껑을 열어보아 설익히기도 하고, 산책을 한답시고 주변을 돌아다녔더니 이슬에 신발만 푹 젖었다.


오로지 풀을 깎겠다는 일념으로 삼일을 아무 생각 없이 보냈는데, 오늘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할 일이 없으니 잡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서울의 일 생각(가을에는 베스트셀러 한 건 터뜨려야 하는데...), 동료들과 친구들 생각(녀석들, 내가 이런 데 와 있는 걸 알면 시골여자 다 됐다며 얼마나 웃어댈까?), 이누크 생각(이 녀석 이름은 왜 이럴까?), 최진이 생각(이 인간은 도대체 뭐하는 작자일까,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걸까? 혹시 나를 좋아하나? 설마...), 아버지 생각(이 구들방은 무슨 숙제요, 아버지?)....


나는 그동안 자연 속 야생에 가까운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사흘째까지는 (신의 뜻대로) 순탄하게 잘 지내었다. 뼈 빠지게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그만 ‘진짜 일’이 넘쳐나는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형벌로 주었던 ‘일’은 이천 년이 흐르는 동안 ‘축복’으로 변신했다. 먹고살 돈이 쌓여 있다 해도, 우리에게 보람을 주는 일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곳에 아직 ‘축복’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그 축복을 외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축복은 하루 이틀에 걸쳐 풀을 깎는 일보다 훨씬 골 빠지는 일이 될 게 뻔했고, 무엇보다도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세간에, 들어간 비용만큼 나오는 것이 있어야 ‘일’이다. 그렇잖으면 그건 좋게 말하면 ‘예술’이며 나쁘게 말하면 ‘한량짓’이었다.

하지만 ‘일’(내겐 ‘예술’이라 부르건, ‘한량짓’이라 부르건 간에 벌려 놓은 일은 무조건 일이다.)이 거기 있는데 제대로 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내 사전에 있을 수가 없었다.


국제도서전의 행사 기간은 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간이었다. 그중 금요일은 이미 파장 분위기가 되어 버리고, 참관객들마저 하나둘 관광하러 가 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겨우 4일밖에 안 되는데, 그동안 부스를 차린 세계 유수의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책을 최대한 많이 소개하고 해외에 판권을 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부스 없이 참관만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책의 홍수 속에서 자국의 시장에 알맞은 새로운 개념의 책을 찾아내 자국 언어로 번역출판할 권리, 즉 판권을 선점해야 한다.


도서전이 시작되기 한 달도 더 전에, 출판사 저작권 담당자들은 출판중개에이전시를 가운데 끼고 해외출판사들과 도서전에서 만날 미팅약속을 한다. 미팅시간은 2, 30분 단위로 끊어진다. 그나마도 실제로 미팅을 하게 되면 10분도 미팅을 못하는 일도 많다. 부스에서 부스로 이동하는 시간 때문에 약속 시간에 맞추지 못해서 미팅시간이 줄어드는 일이 많다. 그리고 다음 미팅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찍 일어서야 하기 때문에도 미팅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부스를 차린 인기 출판사들은 (과장해서) 축구경기장만큼이나 커다란 여러 개의 행사장 안에 가득 들어차 있다. 행사장 사이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이다. 게다가 인기 출판사의 새로 출간예정인 책의 더미북(책꼴로 인쇄하기 직전의 컬러프린트물)을 보려는 해외중소출판사들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아서 도서전은 그야말로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종종걸음 치는 경보장이 된다. 바빠서 점심 따위 건너뛰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부스를 차린 출판사의 담당자들의 풍경은 느긋함 그 자체이다. 그 사람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은 무언가 하면, 미팅할 출판사 관계자와 중개에이전트가 오면 자기네 책이 무슨 극비 사항이라도 되는 듯 슬그머니 더미북을 보여주는 거다. 비밀을 공유하기로 선택받은 상대방 출판사 사람들이 더미북을 이리 저리 훑어보다가 내용을 궁금해 하면 최근에 시력이 원시로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멀찍이 책을 받쳐 들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열정적으로 내용을 설명한다.


인쇄된 글자보다 말이 더 많다. 꿈 보다 해몽이라고 했던가. (물론 그림책의 경우에만 그렇긴 하지만 그때마다 하품이 나오려는 걸 꿀꺽 하고 도로 삼켜야만 했다.) 그 내용을 에이전트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꾸역꾸역 통역해서(에이전트 역시 마음이 콩밭에 가 있기 때문인데, 에이전트들은 출판사 사람들보다 미팅도 더 많고 미팅 간 시간 약속이 더 촘촘했다.) 출판사 관계자에게 이야기해주는 과정은 정말 코미디다. 에이전트와 출판사 관계자들은 말이 끝날 때마다 내용에 맞춰 웃거나, 슬퍼하거나, ‘어머, 어머’를 연발하면서 자신이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책의 질이 웬만하다 싶으면, 책을 번역 출판할 판권을 사들이는 일에 무지하게 관심이 많다는 제스처를 하면서 입찰 붙을 때 자신에게 우선권을 달라고 무조건 조르고 본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음 미팅할 출판사의 위치가 어디인지 다시 한 번 가늠하면서 슬쩍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부스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손님들에게 적당히 대답해준다. 어차피 자국으로 돌아가면 연락 한 번 안할 가능성이 차고 넘치니까.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실제로 ‘일’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라도 진짜로 ‘일’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온라인교류가 활발해진 요즘은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과정이 많이 줄었다. 점차 국제도서전에 가지 않는 국내 출판사들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그걸 일찍부터 간파하고 가짜 일들 사이에서 진짜 일을 하려고 노력했던 선구자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였다.


나는 십수 년 전부터 평소에 해외 각 출판사의 담당자들과 자주 메일을 주고받았다. 뭐, 도서 중개야 에이전시에서 한다고 해도 말이다.(언젠가 직접 수입을 하려고 했더니 에이던시에서 부린 난리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 다음에 도서전 참관은 그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나의 매력을 퍼뜨리는 용도로 활용했다. 푸근한 몸집의 내 인상은 사람들에게 왠지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듯했다. (미팅이 끝나면 테이블에 놓여있는 사탕을 한 움쿰씩 집어주었으니까. 그때만 해도 난 볼이 하도 통통해 어린아이처럼 귀엽게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속으로는 응큼한 계략과 전략을 품고 있는 줄도 모르고.) 파티에서 만난 새로운 인물들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맥을 넓힐 수도 있었다. 부스마다 틈틈이 벌어지는 작은 티 파티는 물론, 도서전 기간 동안 저녁 무렵에 열리는 출판사주최 와인파티에 기를 쓰고 참석해 순진한 얼굴로 질문을 하며 출판사 사람들 혹은 저자들과 안면을 트고 다녔다.(어눌한 영어로도 일단 질문만 하면 대답은 알아서 길게 떠들어대니까 그 다음으로는 경청하는 척만 하면 된다.)

남는 시간에는 사장이 인심 좋게 건네준 카드로 현지 관광을 했다. 사장은 처음에는 일하러 보냈더니 놀러만 다닌다며(정확히는 ‘외국까지 보내줬더니 영어도 못하면서 뻘짓하고 다닌다’며) 노발대발했지만 그 ‘놀러만 다닌 것’이 지금은 열매를 맺어 회사 발전에 한몫 톡톡히 하게 되었다는 걸 인정했다. 우리 출판사는 누구보다 빨리 새 책의 정보를 받을 수 있었고, 해외 도서의 한국어 판권을 자주 따 낼 수 있었다. 물론 우리 출판사가 국내 여타 출판사들 중에서도 책을 잘 만드는 편이고, (선인세를 많이 낼 수 있었고) 어느 정도의 매출을 내는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일 없이는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 일을 놔두고 서울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휴가도 열흘이나 남아 있었고. 나는 저녁 내내 고민한 끝에 당장은 경제성이 없어 보이는 ‘예술’이라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거나 이 집을 팔려면 아버지가 방에 파 놓은 구덩이를 메워야 했다.


햇빛이 잘 드는 그 방 구덩이에 깔린 흙에서는 이미 푸릇푸릇한 잡초들이 나 있었다. 하데스의 저주받은 저승에서도 페르세포네의 씨앗은 싹을 틔운 셈이었다. 그 방을 시멘트와 파이프를 사다가 원래대로 기름보일러 방으로 되돌릴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뜻대로 천연의 구들방으로 만들 것인가.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구들방이었다. 산불관리인 말마따나 구들방이 이 집의 가치를 올려줄지도 모른다. 어쨌건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드문 방을 만든다는 건, 왠지 참신한 생각 같았다. 마치 새로운 주제를 다룬 책을 매만져서 처음 이 세상에 내놓듯이. 오오, 그렇다면 ‘구들방 만들기’, 이건 진짜 일이었다.      


아버지는 목수였다. 주로 건물의 내장공사를 많이 하셨다. 소위 의사, 변호사, 같은 ‘사’자 들어가는 전문직 사업자도 아니고, 어느 회사에 소속된 정규직 직원도 아닌,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수입은 들쭉날쭉했다. 성격이 꼼꼼하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었기 때문에 일거리가 떨어진 적은 없었지만 일에 대한 대가는 언제나 늦거나 심지어 떼이는 일도 있었다.


딸들이 독립한 후에도 아버지는 계속 일을 하시다 병에 걸린 뒤에야 딸의 성화에 그만두셨다. 하지만 홀아비 혼자서는 ‘할 일’ 없이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사람 좋아하거나 술담배를 진탕 하는 분이셨으면 모를까, 아버지는 괴팍스러울만큼 깔끔해 사람 만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 후, 경과가 괜찮게 나오자 아버지는 바로 이 집을 사서 고치고 꾸미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집에서는 할 일 많아서 좋아.”


전화로 아버지 힘들지 않느냐고 여쭈면 아버지는 늘 아버지의 ‘할 일’에 대해 줄줄 읊으셨다. 통화를 하다가 새로운 할 일을 생각해내는 적도 있었다.


“아 참, 백반 사와야 하는데. 뱀들이 우글대서 말이야...”

“뱀, 뭐라고요? 아버지, 거긴 너무 위험...”

“뚝. 삐삐삐삐.”


아버지는 이야기 도중에 먼저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할 일들을 하려는 생각에 그만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당시 아버지와 한 몇 번의 통화에 의하면, 아버지는 먼저 풀숲 사이에 속속들이 감춰져 있는 쓰레기들을 모아 종량제봉투에 정리하여 버렸다. 숲속에 무슨 쓰레기가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이 나무 수액을 받는다고 나무에 상처를 내고 받쳐놓은 통과 각종 호스들(그래놓고 찾으러 오지도 않는다. 불쌍한 나무들...), 겨울에 사냥 온 사람들이 버린 탄피와 라면, 과자 봉지, 부탄가스, 야산을 개간해서 농사짓다 버린 농약통과 풀숲에 던져버린 막걸리 병, 이리저리 쑤셔 박아 놓은 농사용 검은 비닐들, 포대들, 참새를 쫓으려고 매달아 놓은 반짝이들, 그리고 집의 전주인들이 버린 듯한 무거운 쇠 패널들과 통유리, 유리조각, 창문틀,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주사기와 주삿바늘들(개 농장이 있었다는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나는 새삼스럽게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이렇게 깨끗한데! 하긴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한 해 동안의 묵은 쓰레기가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그런 다음에는 집 안팎을 조금씩 변화시키셨을 거다. 나로서는 그 전의 이 집을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변화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네모반듯한 창틀과 깔끔하게 칠해진 페인트칠에는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음을 알 수 있었다. 전기 배선도 손 본 듯했다. 헷갈리기 쉬운 스위치 옆의 벽지에다 정자로 ‘집 바깥 왼쪽 등’, ‘집 바깥 오른쪽 등’, ‘수도 모터’, ‘농사용 전기’ 등 써 놓으셨으니까.


책으로 가득한 작은 방에 있는, 잘 마른 아름드리나무 판목으로 만든 투박한 책장 역시 아버지의 작품이었다. 언젠가 자랑스럽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이 책장은 한쪽 벽면의 바닥에서 천장까지 딱 들어차게 만든 붙박이 책장이었다. 책은 삼국지 같은 대하소설부터 잡지, 버섯, 새, 뱀, 식물 같은 도감과 약초책, 자연살이 체험을 담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열어놓은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들어왔다. 드넓은 마당에는 이미 굵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아래에는 밑이 썩어 가는 통나무들이 몇 개 쌓여 있었다. 내 다리 굵기만 한 그 나무들은 껍질이 벗겨지다 만 것으로 보아 뭔가 만들려고 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울타리?


햇빛이 가장 오랫동안 닿는 마당 끝에는 작은 밭이 있었다. 풀이 무성할 때는 거기 밭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풀 깎을 때 밭에 꽂혀 있는 긴 장대에 몸을 부딪치고서 알았다. 주렁주렁 열렸을 고추의 무게를 지탱할 고춧대, 덩굴이 타고 올라가며 열매를 맺도록 만든 참외대 같은 것들이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새벽별을 보고, 낮 동안 손에 익게 다듬은 나무 장대를 벗 삼아 긴 장화를 신고 산 오솔길을 오르던 아버지, 먹을 수 있는 버섯과 독버섯을 구별하려고 미간을 모으던 아버지, 산중에서 만난 누군가의 조상 무덤에 고개를 숙이고 합장하던 아버지, 먹을 사람도 없는 오디와 산딸기를 따서 부지런히 효소를 만들던 아버지, 나무를 깎고 못질을 하는 아버지, 고되게 일을 한 후 입을 벌리고 낮잠을 자는 아버지, 밤잠이 없어져서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던 아버지...


갑자기 뱃속에서부터 무언가 북받쳐 올라오면서 눈앞이 하얗게 흐려졌다. 눈물을 삼키고 이곳에서 아버지가 홀로 했을 그 모든 일들을 선명하게 그려 보았다. 나는 그 쓸쓸한 장면에 나 자신을 그려 넣었다.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좀 더 어렸을 때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의지하고 사랑하던 어린아이적의 나의 모습을 아버지 옆에 그려 넣었다.


“무슨 일 있어요?”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최진이었다. 이누크가 혀를 쏙 내밀고 풍성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콧물을 쓱 닦고 반쯤 돌아앉았다. 아마 코가 빨개져 있을 것이었다.


“아니, 왜 살금살금 다가와서 사람 놀래요?”


나도 모르게 잠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울고 있었어요? 왜, 아버지 생각했어요?”


나는 벌떡 일어서서 아버지가 파 놓은 작은 공사현장으로 비닐을 들추고 들어갔다. 내가 만날 눈물, 콧물이나 훌쩍대는 줄로 알겠다. 최진이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이 방 바닥 팔 때 저도 아버님 곁에 있었답니다.”


오늘은 특별히 ‘아버지’라는 소리만 들으면 감정이 북받치는 날이었다. 나는 불투명한 비닐 너머에서 최진이 모르게 눈물을 삼키고,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슬픔의 덩어리를 삼키느라 대거리할 겨를이 없었다. 빌어먹을 콧물은 왜 이렇게 흘러나오는지. 흑흑 콧물 들이키는 소리는 최진이에게 내가 울고 있다고 선전하는 꼴이었다.


“장판을 걷어내고 시멘트를 깨는데, 시멘트 층이 어찌나 얇은 지 놀랐더랬죠. 덕분에 제거작업은 쉬었지만요. 보일러를 잠근 뒤 파이프까지 다 파 내고, 그날 저도 땀깨나 흘렸어요.”


최진이는 알아달라는 듯 잠시 틈을 두었다. 내가 입을 열지 않자 최진이는 포기한 듯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일이 아주 쉬웠죠. 그냥 다 흙이었거든요. 그것도 아주 보드라운 흙이었죠. 돌멩이가 많이 섞여 있긴 했지만, 그때부터는 아버님이 흙을 파서 통에 담으시고, 저는 그걸 밖에 내다 쌓아놓는 일을 했었죠. 가장 어려운 일은 아궁이 구멍과 연기배출 구멍을 내는 일이었어요. 벽을 뚫어야 했죠. 좁은 데서 작업하느라 아주 애먹었어요.”


최진이는 그밖에도 몇 가지 일을 더 꿈꾸듯 이야기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추억을 곱씹고 있는 듯하였다. 최진이가 내 아버지와 함께 고물상에 고물 팔러 갔다가 추어탕을 사 먹은 이야기, 함께 산에 올라 가을밤을 서 말도 넘게 따서 집집마다 나누어 준 이야기, 겨울에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아버지를 찾아왔던 이야기... 이누크 역시 그 정겨운 장면의 일부분이었다. 이누크는 자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까만 눈을 빛내며 꼬리를 쳤다.


난 처음에는 최진이에게 고마웠다. 이런 산속에 홀로 사는 늙고 병든 노인네의 소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발 벗고 도왔다니! 그런데 왠지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그 푸근한 장면에는 최진이가 아니라 내가 있어야 했다. 아버지와 킬킬대고,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면서 아버지의 마지막 삶을 같이 보냈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아버지의 가족이었다. 작년에 휴가도 없이 아버지를 홀로 두었던 것이 못내 가슴이 아파왔다. 어쩌면 최진이가 나의 빈자리를 메워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밀려난 것인지도 몰랐다.


“왜 그랬어요?”

“네?”

“그렇게 할 일이 없었어요? 자기 아버지도 아니면서!”


내가 비닐을 들추고 나와 따져 묻자 최진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건...”


내가 성난 황소처럼 콧김을 풍! 하고 내뿜자 최진이가 얼른 말했다.


“우리가 친구였기 때문이죠. 네, 맞아요. 저희 아버지는 술고래에다 도대체 집에 붙어 있질 않았었거든요. 이나 씨 아버님은 저와 맘이 잘 맞았어요. 그래서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마음이 편했다고요.”


나는 이 미심쩍은 대답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내친김에 궁금해하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그날.. .우리 아버지가 쓰러진 날에도 함께 있었던 거예요?”

“네. 병원에 모셔다 드린 후에 이나 씨에게 전화한 사람이 저였어요.”

“그때 왜 절 보지 않고 그냥 가 버렸어요?”


그 순간 최진이가 갑자기 움찔하며 깜짝 놀라는 걸 느꼈다. 그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날마다 산중에 와서 소일하던 사람이 그 엄청난 일이 일어났던 날, 바쁜 일이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낯선 병원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갑작스레 찾아온 암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최진이를 더 다그칠 순 없었다. 최진이가 뭘 잘못한 건 없었다. 오히려 감사해야할 일인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몰랐다.


어쨌거나 최진이 덕분에 치솟은 화가 슬픔을 다 날려 버렸다. 나는 왠지 아버지에게 배신감까지 느꼈다. 아버지는 빌어먹을 딸 없이도 이곳에서 새로 들인 양자랑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었잖아! 내가 앞서 상상했던, 아버지가 절절한 외로움 가운데서 지냈을 거라는 감상어린 장면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이 남자, 진은 마지막까지 우리 아버지에게 잘해 주었다. 그것만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구들방 만들 줄 알아요?”


내가 물었다. 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요? 혹시... 만들려고요?”

“그럼 이걸 마무리해야지 어쩌겠어요.”

“이나 씨가요?”


그럼 나 아니면 누가 만들겠니?


“네.”

“아이고, 이거 여자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긴 차도 못 들어오잖아요. 구들방 짓는 업자를 불러도 안 올걸요?”

“도대체,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주세요. 구들방 만들 줄 알아요?”

“아니오.”

“그럼 이거 만들자는 게 누구 아이디어였어요? 우리 아버지?”

“물론 아버님이시죠. 저도 처음에는 말렸어요. 이거 텔레비전 프로그램 ‘극한직업’에 나오는 일이라고요. 구들방 만들기는.”

“알겠어요. 제가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


나는 우선 창고로 가서 살펴보았다. 벽돌 묶음이랑 넓고 판판한 돌 같은 게 몇 장 있었다. 진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제가 도와드리면 좋은데, 이번 주에 일이 바빠서요. 다음 주에 시작하면 안 될까요?”

“저,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내가 생각해도 깜짝 놀랄 만큼 쌀쌀맞게 말했다. 최진은 따귀라도 한 대 맞은 듯이 멍청하게 멈춰 서 버렸다.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들어 괜히 이누크 머리만 쓰다듬었다.


“어차피 휴가가 일주일밖에 안 남았거든요.”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에 안심이 되었는지 최진이 말했다.


“그럼 틈틈이 와서 도울게요. 거절하지는 않으시겠죠. 아무리 ‘뭐든지 혼자서 하는 이나 씨’라도요.”


쉽게 노여움을 타지 않는 최진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듯 왠지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아버지는 잔소리도 잦고, 까칠하게 굴었던 적도 많지만 화를 쌓아두는 분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뒤끝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의 병은 어쩌다가 이 깨끗한 공기와 천진한 젊은이의 정기로도 낫게 할 수 없었을까?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니 구들방을 만드는 데는 일단 불에 잘 견디는 적벽돌과 판판한 화강암이나 현무암 구들돌이 방의 넓이만큼 있어야 했다. 알고 보니 창고에서 본 판판한 돌이 구들돌이었다. 그런데 그 수가 8장뿐이었다. 더 사와야 했다. 적벽돌도 300장은 있어야 했다.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것들을 어떻게 다 손으로 나르지? 아버지가 쓰시던 지게가 있었지만, 지게로 벽돌을 들어 나르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도로에서 이곳까지 오르막길로 자그만치 2~300미터는 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갈 채비를 차렸다. 이곳에 들어온 지 나흘째였다.


‘에라, 무슨 수가 생기겠지. 사람을 사든지. 나간 김에 장도 보고 와야지.’


먼저 중소 마트에 가서 필수품을 샀다. 집에 냉장고가 텅텅 비었으니 아예 열흘 치 먹을 것을 산다고 잔뜩 샀다. 마트에 가는 길에 본 건축자재 상점으로 가서 불길을 견딘다는 내화벽돌 300장을 샀다. 구들돌은 못 샀다. 내가 아무리 힘이 장사라도 가로세로 50센티미터에 두께 5센티미터짜리 구들돌 한 장을 쉽게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다. 요즘 밥을 부실하게 먹어서 그런가? 그렇지만도 않았다. 알고 보니 구들돌 한 장 무게가 40킬로그램은 되었던 것이다. 세상에 뭐 이런 게 다 있어? 갑자기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물며 그걸 산 속 집까지 옮길 수가 있을까?


“아유, 아줌마, 뭘 몰라서 그런지 겁도 없으시네. 구들은 장정 4명은 있어야 놓을 수 있다고요.”


가게 사장은 아는 체에, 으스대면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내가 살집이 좀 있어서 굼떠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기분 나쁘게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나더러 아줌마라니? 내 이래봬도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지성의 꽃, 출판사 팀장이라구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일단 시작만 하면 못할 것이 없었다. 나는 지구 끝 아마존 강물 한복판에 데려다놔도 살아갈 여자라고 누가 그랬다. 누가 그랬지? 아버지였던가?


나는 비위 상하게 하는 사장 얼굴을 싹 무시하고 다른 직원에게 벽돌 값을 치른 후 물었다.


“튼튼한 핸드카트 있어요?”


직원은 뭔가 거북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 같은 ‘아줌마’는 처음 봐서 겁이라도 먹은 모양이었다. 정말 튼튼해 보이는 핸드카트는 가격도 적잖았지만 잔돌이 많은 울퉁불퉁한 언덕을 오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차를 최대한 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가까이 대고 벽돌을 길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5장씩 묶은 묶음이 60개였다. 일단 먹을거리를 카트에 싣고 언덕을 올랐다. 처음엔 의기양양했는데, 반도 가기 전부터 속도가 느려지더니 나무 그늘만 나오면 쉬기 바빴다.


“역시 살을 빼야 해.”


나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내 체질을 탓했다. 하긴 그냥 물이 아니라 단 음료수 물이었지만. 지금 옮기고 있는 식료품 중에서 음료수가 가장 무거웠다. 목이 말라서 음료수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식료품들을 뒤적거렸다. 맥주 캔도 세 묶음이나 샀고, 안주거리랑 간식거리, 라면, 햇반, 봉지 김치, 냉동만두...


갑자기 위쪽에서 기척이 느껴져 올려다보니,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높은 잎갈나무 가지에 커다란 새가 한 마리 앉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 뒤쪽에 검은 두 줄 댕기를 드리고, 속세를 초월한 듯한 눈초리로 고고히 앉아 있는 걸 보니 왜가리였다. 왜가리는 서울의 근교 호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새다. 왜가리는 물새인 줄 알았는데 이 산속에서 더구나 높은 가지에 앉아 있는 걸 보다니... 정말 신기했다. 생각해 보니 물갈퀴가 발달한 물새인 가마우지도 호수근처 높은 가지에 둥지를 짓고 사니, 왜가리가 나무에 앉아 있다고 해서 그리 놀랄 것은 없었다.


나는 왜가리를 마주 올려다보았다. 왜가리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자기에게 닿을 수 없음을 아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 눈빛으로. 나는 과자를 요란하게 씹어대다 말고 멈추었다. 왜가리도 비둘기나 갈매기처럼 과자를 먹을까? 나는 손바닥에 오징어 맛 과자를 놓고 왜가리에게 잘 보이도록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왜가리는 갑자기 나를 외면했다.


“저 새... 혹시 아버지 아닐까?”


아버지가 환생이라도 하셨다면 꼭 저 왜가리로 태어나셨을 것 같았다. 왜가리는 잔소리는 하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눈빛과 태도로 나를 나무라고 있었다.


“그래, 가, 간다고.”


나는 일어서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개 짖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 그 다음으로 이누크의 모습이 보였다. 이누크는 단숨에 내게 뛰어왔다. 텅 빈 집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반겨줘서 즐거웠다. 이누크는 아버지에게도 이렇게 했겠지. 누구에게나 다정한 만인의 개, 이누크! 고마워!


이누크와 함께 언덕을 오르니 견딜만 했다. 자외선 때문에 푹 눌러쓴 모자 안으로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집에 와 보니 꼭꼭 걸어 잠그고 나선 집 안도 찜통이었다. 선풍기를 켜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누구네 것인지 모를 밭가에 두고 온 벽돌이 생각났다. 오늘 일을 하고 나면 아마 5킬로그램은 빠지겠지.


잠시 쉬면서 사온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댄 뒤에야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핸드카트를 끌고 수월히 내려갔다가 벽돌 5묶음을 기세 좋게 싣고 산을 올랐다. 이누크도 즐거이 따랐다. 아무리 이누크가 카트 끄는 걸 도와줄 수 없다 해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조그만 토끼 같은 게 풀숲 사이에서 작은 소리만 내도 나는 귀신이라도 본 듯 흠칫 놀라곤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뱀이나 멧돼지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벽돌이 너무 무거워 온몸이 기진맥진이라서 딴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갑자기 이누크가 하늘을 향해 멍멍 짖기 시작했다. 왜가리가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서 깃털을 고르고 있었다. 생각 끝에 벽돌 두 묶음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에야 계속 길을 오를 수 있었다.


구들장 아궁이 앞에 겨우 벽돌 15개를 놓고 거실에 드러누운 나는 갑자기 숨이 턱턱 막혀왔다. 한여름, 날이 푹푹 쪘다. 머리가 핑 돌기 까지 했다. 생전 현기증이라고는 모르던 내가 이곳에 와서 벌써 세 번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하아, 그 많은 걸 언제 다 옮기지?”


하지만! 이 몸 사전에 포기란 없다! 며칠이 걸려서라도 다 옮기고 말 거야! 나는 씩씩대면서 다시 산을 내려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털이 겨울 이불같이 두텁게 난 시베리아 개, 이누크는 이번에는 내 빵을 두 개나 먹고도 더워 죽겠는지 침을 폭포같이 흘리며 집 앞 그늘에 드러누워서 따라오지도 않았다.


“이누크!”


이누크는 대답으로 낑낑 신음 소리를 냈다. 애처로운 눈빛을 하면서. 이누크의 눈에서 꾀병을 부리려는 땡땡이의 조짐이 보였다. 개니까 망정이지 회사의 누군가가 저런 눈빛을 했다면 카트라도 집어던질 뻔했다. 망할놈의 개! 별 도움도 안 되면서 내 빵이나 아작 내고 죽는 소릴 하다니!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그 개 주인 ‘망할놈’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도와준다더니!


아는 욕이란 욕은 다 입에 주워 담으며 아래까지 내려가서 벽돌 2묶음을 실었다. 아까 길에 두고 온 벽돌 2묶음도 올라가는 길에 싣고 갈 생각이었다. 몇 발짝 옮기기도 전부터 머리꼭대기서부터 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하는데, 땀에서 꼭 돼지 육수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내 몸에서 발산되는 푹푹 올라오는 열기에 코가 꽉 막히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쉬는 걸 포기하고 묵묵히 길을 오르고 있으려니까(일단 쉬면 일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인도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말해 준 인도의 별별 수행자들이 다 생각났다.


‘사두’라고 불리는 수행자들은 힌두교의 가르침에 따라 혹독한 수행을 한다. 굶는 수행, 편치 않은 요가동작으로 오랫동안 참는 수행,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살아가는 고행 등 그 밖에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고행을 하곤 한단다. 이 사두들을 정신적 스승이라는 뜻의 ‘구루’라고 하며, 친구는 진짜 구루를 찾아 축복을 받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인도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수행자들 중에는 축제 때만 얼굴에 연지곤지 찍고 변신하고 나타나 동냥을 받는 가짜들도 있고, 심지어 뚱뚱한 사두 같은 사기꾼도 있으니 참고하란다.


“쳇!”


뚱뚱한 사두라고 무조건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다니. 괜히 기분이 나빴다. 내가 아무리 뚱뚱해도 이 벽돌들을 다 옮기는 순간 오리지널 사두, 즉 구루로 소생(죽다 살아남)할 것 같았다.


“녀석, 그날은 한걸음에 달려와 내게 축복을 받고 싶어질걸.”


눈곱만큼 남은 기운을 킬킬거리는 데 다 써버렸다. 그때 머리 위쪽에서 ‘쿠왁!’ 하는 소리가 났다. 올려다보니 그 나무 위의 왜가리였다. 울음소리는 꼭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제길~!”


심심해졌는지 때맞춰 언덕 중턱까지 굴러 내려온 이누크가 왜가리를 보고 다시 짖기 시작했다. 왜가리의 짜증나는 울음소리는 멍멍이의 피쳐링에 묻혀버려 다행이었지만 이번에는 개 짖는 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이누크, 조용히 좀 해!”


냅다 소리를 지르자 이누크도 왜가리도 화들짝 놀란 듯했다. 왜가리는 너털웃음을 웃더니 커다란 날개를 펼쳐 너울너울 여유 있게 산 너머로 날아갔다.


겨우 집에 와 닿아 또다시 벌렁 드러누웠다. 그런데 이번엔 이누크가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자 마음이 불안해서 잠시나마 쉴 수가 없었다.


“아이구, 먹보 녀석! 옛다!”


나는 목구멍이 깔깔한 게 식욕도 없었다. 던져준 빵을 꿀꺽 삼키는 이누크를 보며 이누크가 시베리아에서 썰매를 끄는 개라는 걸 떠올렸다. 난 잠시 터무니없는 상상을 했다. 이누크가 벽돌을 가득 실은 썰매를 끌고 멍멍 짖어대며 흥분하여 이곳까지 솟구쳐 올라오는 장면을.


‘아, 이제 도저히 못 해. 사람이라도 사서 벽돌을 옮겨야 하나. 재료만 다 갖춰지면 나 혼자서 반드시 구들방을 완성할 수 있는데!’


내가 머릿속으로 잔머리를 굴리며 자기 합리화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무슨 천둥치는 소리가 마당 어귀 쪽에서 났다.


“부르릉!”


얼른 창가로 가서 보니 거대한 무한궤도바퀴 한 쌍이 앞다리를 들어올리며 포효하고 있었다.


“쿵!”


커다란 수코뿔소처럼 앞다리를 바닥에 구른 포클레인 운전석에 앉은 아저씨는 다름 아닌 산불관리 아저씨였다. 포클레인 갈퀴 위에 잔뜩 얹어져 있는 건 내 벽돌들이었다. 나는 믿어지지 않아 눈을 끔벅거렸다. 내게 어떻게 그런 민첩함이 남아 있었을까? 거의 맨발로 뛰어나갔다.


“아저씨!”

“어이구, 이런 데서 누가 맨발에 슬리퍼 바람으로 다녀요? 뱀에 물려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래 마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었는데, 아저씨가 어떻게 알고 벽돌을 날라 준 것일까? 아저씨는 아궁이 앞에 한 묶음씩 벽돌을 들어 내려놓아 주셨다.


“아이고, 마누라가 여간 성화여야지. 불쌍한 아가씨가 생고생을 하고 있다고 하도 떠다미는 바람에.”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니 뭘. 걱정 말아요. 하여튼 보기 드문 아가씨요, 이런 걸 다 할 생각을 하고. 내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오.”


아저씨는 서둘러 차에 타고 덜컹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몇 시간 동안 끙끙거리며 고생을 하고 보니 포클레인의 위력에 큰 감동을 받았다. 늘 당연하게 사용하던 문명의 이기를 마치 처음 본 것만 같고 내가 육십만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구석기인 같이 느껴졌다. 아저씨는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바람같이 나타나서 신기한 마술로 나를 구해준 후에 영웅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왠지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벽돌 나르기로 적어도 5킬로그램을 뺄 수 있었는데! 사두로 거듭났을지도 모르고! 할 수 없지 뭐.


지나간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나는 앞으로 나아갈 일을 생각했다. 재료가 갖춰진 지금부터는 ‘정말로’ 나 혼자서 방을 완성하리라! 그러다보면 한 3킬로그램은 빠지겠지! 한 장 한 장 벽돌과 씨름하며 부둥켜안고 끌며 들어다 놨다 땀을 흘렸던 벽돌 나르는 일에 비하면 구들장 놓은 일은 한결 쉬워보였으니까.


이 모든 쌩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끝난 직후에 최진이가 어정어정 걸어 올라왔다. 종일 뭘 했는지 완전히 파김치가 된 모습이었다. 이누크가 주인에게 달려가 알랑방귀를 뀌었고, 주인은 이누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하루 일을 예정보다 빨리, 그리고 훌륭해 해냈다는 만족스러운 기분에 취해 있었다.


최진이는 내가 해 놓은 일에 놀랐다. 아저씨가 벽돌의 반은(그랬다. 나는 벽돌의 반은 내가 날랐다고 허풍을 떨었다.) 포클레인으로 날라다 주셨다는 점을 감안해도 대단한 일이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한껏 들떴던 기분은 어스름이 지면서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선심 쓰듯 최진이에게 말 한 마디를 건넸다.


“오늘 일이 많았나 봐요. 완전히 지쳐 보이네요.”

“보람찬 일을 많이 했거든요. 하긴...”


최진이 피식 웃었다.


“일이라기보다는 앳된 송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고 하면 맞겠지요.”


착한 동네 총각을 찜통더위에 여기저기서 불러대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는 노인네들을 떠올리는 게 어렵진 않았다. 부르지 않아도 오지랖 넓게 이곳에도 자꾸 들르는 걸 보면 최진이 성격도 노인들의 기대에 부응했으리라. 나는 쯧쯧 혀를 차려다가 그만두었다. 최진이 덕분에 우리 아버지는 덜 외롭게 지냈던 것이다.


“뭐 좀 먹고 갈래요? 오늘 먹을 것 잔뜩 사왔어요.”


최진이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친절하게 구는 걸 처음 봤기 때문일 거다.


“아니, 전에 어머님께 맛있는 밥도 얻어먹었고 해서요... 그럴래요?”


나는 친절하게 굴려고 마음만 먹으면 사근사근 천사라도 될 수 있다. 그런 나를 보고 직원들은 ‘가식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하나 추가해주었지만 싫지 않았다. 가식을 부릴 수 있다는 것도 능력이니까. 말문이 막힌 채 고개만 끄덕끄덕하는 최진이를 보면서 내가 그동안 왜 이 사람에게 그리 못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반을 데우고, 손질할 필요 없는 포장된 김치찌개를 끓여 상에 내놓았다. 준비하는 동안 최진이는 푸성귀를 뜯었다. 야생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민들레잎과 고들빼기 이파리였다. 씁쓸한 맛이 나지만 입맛을 돋우는 싱싱한 유기농 먹을거리였다.


둘이 마주앉아 먹으려니까 갑자기 십년 전부터 마음속 장롱 속에 꼭꼭 처박아 두었던 수줍음이 삐져나오는 듯했다. 밥을 입속으로 가져갔다가도 쌈으로 손을 뻗는 최진이의 긴 손가락을 보면서 얼을 빼고 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밥을 씹어대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노동을 하는 손이 그렇듯 투박하질 않았다.


“그래, 진 씨는 무슨 농사를 지으세요?”


진이 음식을 꿀꺽 삼켰다.


“뭐, 벼를 짓죠. 어머니가 텃밭에서 먹을거리 조금 지으시고요. 아참, 그러고 보니 호박을 안 가져왔네. 이번에 애호박이 너무 잘 됐어요.”

“아, 네. 괜찮은데.”


호박을 가져와봤자 곤란해질 뿐인데. 진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물었다.


“여기서 혼자 지내는 것, 무섭지 않아요?”


무섭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할까? 사실 약간 무섭긴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곳에 익숙해져서인지 별로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 여차하면 멧돼지라도 들이받아 버릴 커다란 개, 이누크도 있었고, 밤이면 문을 꼭꼭 잠그고 자니까 누가 들어와서 해코지할 수 있겠는가? 하긴 낮이라 해도 워낙 인적이 드물어 여기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긴 했다. 마음을 정했다.


“하나도 안 무서워요. 저 이래봬도 검도 유단자거든요.”


최진이가 갑자기 캑캑거리자 씹다 만 밥풀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에? 정말이에요? 아버님은 그런 말씀 안 하셨는데!”

“도대체 아버지는 진 씨한테 무슨 제 얘기를 그리 많이 했대요?”


최진이가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나 궁금해졌다.


“아니... 그냥... 부모가 자식자랑 늘어놓는 게 뭐...”


아마 아버지가 검도 얘기를 안 한 게 맞을 거다. 아빠는 여자가 무슨 검술이냐며 내가 원래 그런 것보다 더 대가 세질까 봐 걱정하셨다. 검도 배운다고 대련하다 맞고 다닐까 봐 싫어하기도 하셨고. 그리고 뭐, 해외출장 많이 다니는 것도 말씀 안하셨을 테고. 여자가 위험하게 밖으로 나돌아다닌다고 생각하셨으니 말이다. 참내, 내 인생의 핵심을 다 빼놓고 나에 대해 무얼 얘기하셨단 말인가!


최진이가 말했다.


“주로 이나 씨가 똑똑한 여성이라면서 자랑하셨죠. 겉으로는 세 보이지만 속은 착하고 여리다는 것도요.”

“윽!”

“왜요?”

“그 말을 믿어요?”


최진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도 함께 웃음이 나왔다. 이누크도 웃었다.


손님이 있어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바람이 집 안까지 불어 들어와 정말 시원했다. 맥주캔까지 따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밖이 깜깜해졌다. 그걸 깨닫자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그때 최진이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어? 저기!”

“에?”


최진이가 얼른 신발을 신고 어둠속으로 뛰쳐나갔다. 이누크도 조용히 주인 뒤를 따라갔다. 달은 없었지만 방의 불빛 덕분에 어느 정도는 보였다. 나도 천천히 걸어 나갔다. 최진이가 서 있는, 시내 가까운 곳에서 조그만 크리스마스 전구 같은 불빛 알갱이가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아, 반딧불이!”


갑자기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던 그 반딧불이를 실제로 보게 되자 기분이 묘했다. 오염이 없는 청정지역에서만 살 수 있다는 반딧불이는 오염물질 작렬하는 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용이나 해치처럼 상상의 생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존재가 내 앞에 떡 하니 나타나다니! 그나마도 지난 삼일 동안은 있지도 않은 강도가 무서워서 문을 꼭꼭 닫고 있는 바람에 집 바깥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아마 이누크 혼자 이 장관을 맘껏 즐겼겠지.


반딧불이는 고요하고 캄캄한 호수 속을 위아래로 떠다니듯이 천천히 날아다녔다. 양손을 오므려서 반딧불이 한 마리를 손 안에 가두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꿈속으로 들어온 듯, 정신이 또렷하면서도 황홀한 기분이었다.

 

“참, 예뻐요.”


최진이가 말했다. 최진이는 얼굴을 간질이는 반딧불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꼼짝도 않고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싫지 않았다. 아마 반딧불이 조명으로 내 얼굴이 좀은 뽀송뽀송해 보이겠지. 거기다 맥주 한 잔 걸쳤으니. 아, 내가 누군가에게 예뻐 보인 적이 언제였던가!


“반딧불이, 참 예쁘죠?”


뜨악했다. 그러면 그렇지. 촌 총각이 어찌 내가 지닌 도시적이고 세련된 미를 알겠어? 감상에 빠지지 말고 이 녀석을 쫓아버린 뒤 내일의 구들방 만들기 일정이나 짜야겠다 싶었다. 나는 최대한 눈을 부라리며 최진이를 이제 내려가라며 떠다밀었다. 최진이는 오늘의 피로를 다 잊은 듯, 큰소리로 하하하 웃더니 콧노래를 부르며 산을 내려갔다.


‘저거 원, 이렇게 깜깜한데 앞이나 보일는지.’


내려 보낸 다음에야 생각이 미쳤다.


“이누크, 가서 네 주인 고꾸라지지 않게 돌봐드리고 와.”


이누크 엉덩이께를 한두 번 치자 이누크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산을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믿음직한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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