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와서 업어 가도 모르게 까무라쳐 잤다. 그런데 아침에 나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전날 무거운 모터를 메고 풀을 깎은 데다 술까지 마신 탓이었다.
“그냥 누가 와서 보쌈해 가면 좋겠다. 이왕이면 돈 많은 마피아 왕초 같은 애들이.”
팔다리를 큰대자로 펴고 널브러진 채 혼자서 킬킬거렸다. 생각만으로도 감각 있고 스릴있는 스토리 같았다. 그때 밖에서 낑낑 소리가 났다.
‘아참, 어제 이누크가 여기서 잤지.’
어제 저녁에 최진이가 이누크를 아버지 집에 놔두고 갔다. 잘 지켜주라면서. 그런데 도대체 무얼 잘 지키라고 한 것일까? 혹시 나?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나는 검도 유단자라구. 하긴 최진이가 그걸 알 리가 없었으니 그 마음만은 가상히 여겨 주어도 괜찮겠지. 아까부터 마피아 생각을 하던 나는 꼭 최진이가 내 부하처럼 느껴졌다. 겉모습만 보아도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살이 포동포동 찐 제멋대로 여장부와, 삐쩍 마른데다 늘 구부정하게 서 있는 순하디순한 남자를 나란히 세워 놓고 보면 그래 보이지 않겠는가.
문 앞에 개 사료가 있는 걸 기억해내고는 끙끙거리면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이누크가 내 손 안으로 코를 들이밀고 콧물을 잔뜩 묻혔다. 천방지축인 것 같아도 이누크는 충실한 개였다. 밤새 다른 데로 놀러나가지도 않은 듯했고, 집 밖에서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혹시 누가 쳐들어오지는 않을까 잠도 안 자고 밤새 보초를 섰을 지도 모르겠다.
“개 하나는 잘 키웠네.”
왠지 고마운 마음에 이누크에게 사료 대신 어제 산 맛있는 크림빵을 주었다. 입이 커다란 이누크는 일 초 만에 빵을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켜 버렸다.
일단 일어나서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맞으니 몸이 가뿐한 것 같았다. 서울에선 늘 몸이 찌뿌둥했는데... 어깨에 두꺼운 판지를 찾아 대고 다시 몸을 놀려 풀을 깎기 시작했다. 윙윙거리는 규칙적인 기계음이 정신을 좀 멍하게 했다. 어제 저녁 최진이와 시장 본 물건들을 가지고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일이 생각났다.
“아니, 이게 뭐예요?”
최진이는 시골총각답게 미적 감각이 떨어졌다. 나의 멋들어진 미로형 베이사이유 정원을 보고 ‘이게 뭐냐’니?
“아, 처음이라 이래요. 잘린 풀들이 쌓여서요.”
나는 둘러댔다. 최진이는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풀 더미 때문에요? 그냥 막 밟으면서 죽죽 깎아나가면 되는데...”
그래, 너 잘 났다.
“그러게, 내일 제가 깎아 드린다 했잖아요.”
“아니에요, 제가 해야죠. 제 아버지 집인데...”
최진이가 자세를 바로 했다.
“아버님이 이나 씨 얘기를 늘 하셨죠.”
“제 얘기를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최진이의 입꼬리가 확 올라가더니 금방이라도 웃음보가 터질 듯했다. 아버지가 도대체 뭐라고 하셨는지 알 만 했다. 분명 내 흉을 보셨을 거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보고 제정신을 차린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 왜요? 뭐라고 하셨기에 그래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최진이는 깜짝 놀란 듯 입을 떡 벌렸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소리 질러서 미안해요.”
“상상해 보곤 했어요. 이나 씨가 정말 아버님이 말씀하신 대로 독불장군인가... 하고요.”
“독불장군?”
과연 아버지는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함께 어울려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고 늘 잔소리를 해 댔다. 쳇, 그러는 아버지는 왜 이런 산골에 혼자 계셨던 건데? 왠지 부아가 났다. 최진이가 얼른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나쁜 뜻은 없었을 거예요. 늘 ‘귀여운 독불장군’이라고 하셨으니까요.”
귀여운 독불장군? 나도 모르게 내 손등을 들여다보았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손등 위에는 아기 손처럼 네 개의 뽕뽕 들어간 부분이 있었다. 왠지 짜증이 나서 주먹을 콱 쥐어 뽕뽕이를 없애려 했다. 설마 마흔 다 된 내 얼굴이 귀엽다는 건 아닐 테고. 역시 한 자식의 아버지라서 그랬을까? 나는 문득 최진이도 아버지와 같은 생각인지 궁금했다.
“오늘 보니 정말 아버님 말씀이 맞네요.”
뭐가 맞는다는 건지? ‘귀여운’ 아니면 ‘독불장군’ 아니면 둘 다? 참내. 그걸 궁금해하는 내가 갑자기 못마땅해졌다. 혹시 ‘귀여운’을 넣은 건 아버지가 아니라 상황을 모면하려는 최진이의 본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쳇.”
나는 최진이의 말을 무시하고는 거실 창턱에 엉덩이를 걸터앉은 채 그냥 뒤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내가 독불장군인 거 알아버렸으니 내숭 떨 필요 없겠지!’
“따닥!”
“앗!”
또 돌이 튀었다. 젠장할. 어제 생판 모르는 남 앞에서 발랑 드러누워 버린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얼굴에 열이 확 올라왔다. 아마 술이 덜 깨서 그랬을 거야. 그놈의 술. 어쨌든 술김에 최진이도 ‘난 뭐든지 혼자서 해요.’ 어쩌고 하면서 쫓아버릴 수 있었다. 내가 독불장군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하지만 독불장군이 뭐가 어때서. 누구나 자기 인생의 장군이 되어야하는 것 아냐? 도움 따위는 필요없어!
최진이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 뭔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았는지, 아니면 무시를 당했는데도 끄떡없는 자존감 높은 인간이라 그런지 뭔지, 이누크를 남겨두고 갔다.
요령이 생겨서인지 마당의 풀을 거의 다 깎았다. 쌓여있는 풀 더미는 모두 비탈에 있는 가시덤불 위로 던져 버렸다. 버석버석 풀 마르는 냄새가 피비린내 같았다. 나의 승리였다.
그나저나 땀범벅이 되어서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뜨거운 여름이라도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려니 몸이 오그라들었다. 이 집의 물은 어디 지하에서 끌어올린 물인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때 갑자기 어제 오며 가며 본, 집 아래 연못을 떠올렸다. 지금쯤 연못이 뜨거운 햇살로 데워져 있을 것 같았다.
과연 연못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물이 맑아서 바닥까지 들여다보였다. 바닥에는 다슬기가, 물에서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우와~”
연못에 한 발을 집어넣어 보았다.
“윽!”
차가웠다. 다리에 닭살이 다닥다닥 돋았다. 무릎까지 들어가자 물고기들이 다리를 주둥이로 쪼며 간질이기 시작했다. 꼭 닥터피시 같았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 물이 알맞게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누크가 다가와서 물을 마셨지만 물속으로 들어오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물에 젖는 게 싫은 것 같았다. 하지만 독불장군 왕초를 지키라는 주인의 명령을 받들어 주위에서 보초를 섰다. 누군가 오면 이누크가 짖어서 알려주겠지.
나는 땀에 젖은 옷을 입은 채 물 속에 들어가는 자유를 누렸다. 생각 같아서는 홀딱 벗고 싶었지만, 이나마도 이게 어딘가 싶었다. 좁은 욕실에 숨어 조막만한 샤워기가 뿌려대는 소독약 냄새나는 수돗물로 샤워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기분이었다. 햇볕아래 야외에서 산들바람을 쐬면서 1급수 맑은 물로 지친 몸과 찌든 마음을 씻어내는 이 순간! 그 옛날 연못에서 목욕하던 선녀도, 바다에서 태어난 비너스도, 인어공주도 부럽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나를 흉보거나 귀엽다고 둘러대는 남들의 시선을 생각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자 새로운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고 감각이 되살아났다. 눈앞에 보이는 결 고운 물결과 햇빛에 빛나는 초록 풀잎들의 탄력 있는 움직임, 그리고 온몸을 흔들어 깨우는 부드럽고 청량한 감각의 세계에 취해 버렸다.
내친김에 오후 내내 삼나무 있는 데까지 풀을 싹 다 잘라버렸다. 이제 아버지 집을 시끄럽고 더러운 속세로부터 뚝 떨어뜨려 놓았던 성벽을 다 무너뜨린 셈이었다. 도로에서부터 아버지 집까지 이르는 길이 좀 멀긴 해도 그야말로 뻥 뚫려버렸다. 가슴 속이 다 후련했다. 이제 언제든 편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누크도 기쁜 듯 펄쩍펄쩍 거침없이 길 위를 뛰어다녔다.
그런데 저녁 무렵이 되자 나는 풀을 다 잘라 버린 걸 얼마쯤 후회하기 시작했다. 겨우 점심 겸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햇반에 말아 먹고 널브러져 있는데, 이누크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아이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람 목소리에-물론 최진이가 전날 다녀갔지만, 내게 산골에서의 하루는 참 후딱 지나가는 것이면서도 길게 느껴졌다. 내가 그처럼 하루를 온전히 느끼며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른 창가에 서서 보니까 한 할머니가 허리에다 손을 대고 또박또박 집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누크는 계속 짖어댔지만, 할머니가 낯선 사람이라며 경계해서가 아니라 반가워서 그러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댓돌에 올라서더니 아버지 집 마루에 털썩 걸터앉았다.
“안녕하유? 하아, 하아~. 물, 물 한 잔만 줘요.”
“네? 네~”
할머니는 물을 반은 흘리며 허겁지겁 들이키더니 컵을 탁 놓았다.
“아가씨, 아가씨쥬? 전에 여기 살던 그 냥반 딸.”
그럼 그렇지. 동네 할머니였구나.
“그 냥반이 어찌나 부지런하게 이 집을 가꿔놨는지... 그나저나 왜 그 냥반 살아있을 때 한 번 안 왔어유?”
할머니는 아주 교양이 있는 분이셨다. 느닷없이 찾아와서 존댓말로 내게 한 방 먹였으니까. 할머니는 80살도 더 잡수신 것 같았다.
“아예, 살러 온 거유?”
“아, 아니요. 그냥 잠깐...”
할머니가 조그맣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꼭 형사가 용의자를 심문하는 눈빛이었다.
“...둘러보러 왔어요.”
아버지 집을 내놓으려 왔다고 하면 한바탕 욕을 먹을 것 같은 예감에 난 커다란 덩어리를 삼키듯 가까스로 말했다. 할머니가 매의 눈으로 집안을 한번 쓱 돌아보며 말했다.
“하긴, 젊은 사람이 이런 데서 살긴 힘들지. 그러니까 그 전 주인도 얼마 못 살고 나간거유.”
갑자기 웬 전 주인 이야기? 내가 의아해하는 틈을 타 할머니는 얼른 말을 이었다. 맙소사. 난 하루 종일이 무료한 할머니의 손아귀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여기가 옛날에는 무당 집이었어.”
할머니가 갑자기 말을 놓았다.
“그런데 그 무당 년이 싸가지가 없어서 동네 사람 깡그리 무시하고 돌아다녔다우. 언젠가 동네 사람하고 대판한 적도 있었지. 하여간 엄청 시끄러웠거든. 밤이고 낮이고.”
할머니는 손짓발짓을 해 가며 말을 늘어놓더니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아가씨 아버지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지. 그 애비에 그 딸이겠지?”
할머니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아가씨 아버지가 이 집에 들어와서 이렇게 집앞 터도 넓어지고 좋아진 거야.”
“예, 예.”
난 한동안 꼼짝없이 할머니와 대거리를 해야 했다. 할머니는 중매를 서 준다며 사주를 묻기 시작했지만 나는 서울에 남자친구가 있다고 둘러댔다. 사실 속으로는 점을 한 번 봐?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운명 같은 건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점 보러 다니긴 많이 다녔다. 재미로 그런 것도 있고, 무엇보다 친한 친구 하나가 그런 걸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야, 압구정동에 카페점 보는 데가 있는데, 같이 가자.”
“어? 나 귀찮은데... 너나 가.”
“야~ 같이 가. 혼자 가면 민망하단 말이야.”
“또 언제 결혼하는지 물으려고? 창피해 죽겠어!”
“그럼 뭐 물을 게 또 있어? 거기 사람들은 어차피 사람들 심리를 다 알아. 괜히 내숭 떨어 봐야 시간낭비야.”
매번 그랬다. 사주카페에 들어가서 먼저 좋아하는 음료수를 시키고 나면 점쟁이인지 예언자인지가 맞은편에 떡 앉는다. 양옆을 바라보니 우리 같은 손님들과 그 손님들을 상대하는 점쟁이들이 죽 앉아서 서로 엄청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우리 앞에 있는 점쟁이의 말을 들으려면 눈을 거의 가운데로 모으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이런 점쟁이들은 오히려 솔직한 편이다. 손님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물어 컴퓨터에 입력한 후 나오는 결과를 보고 우리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는 사람도 있다. 결과지는 일반인이 봐야 해석할 수도 없는 한자와 이상한 문자로 가득 차 있다.
혹은 만나서 얼굴을 보자마자 우리들에 대해서 다 안다는 듯 히죽히죽거리는, 사기성 짙은 남자 점쟁이도 있었다.
“자, 맞혀 볼까요? 아가씨는...”
남자 점쟁이는 왼편에 앉은 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 당신은 세련되지만...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타입이네요.”
“오! 맞아요, 어떻게 알았지? 정말 용하다!”
친구가 내 팔을 잡고 흔들었다. 내가 뚱하게 점쟁이에게 물었다.
“목소리는 왜 그래요?”
“잠깐만요.”
점쟁이는 종이에다가 선을 마구 휘갈기면서 고개를 덜덜 떨었다.
“지금 신의 목소리를 듣는 중이에요. 점을 볼 때는 목소리가 이렇게 변하지요.”
“풉!”
웃음가스를 마신 듯 폐에서 공기 한 덩어리가 거세게 올라와 빵 터져버리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점쟁이는 모르는 척 휘갈김과 덜덜거림을 계속했다.
“당신의 운명의 상대는 28, 35, 39 에 나타날 거예요.”
“아, 맞아! 정말 신기하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없나요? 이제 한 번밖에 안 남았잖아요.”
친구는 37세였다. 정말로 재작년에 남자 하나를 차 버린 전력이 있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오늘은 신이 잘 말해주려 하지 않네요. 신년에 다시 한 번 운수를 보러 오시면 알게 될 거에요.”
흔한 수법이었다. 다음번에 다시 오게 하려는. 내 표정에서 그걸 눈치챘는지 나를 향해 점쟁이가 말했다.
“손님은... 일복이 터졌네요.”
“헉.”
친구가 나를 대신하여 헉 소리를 냈다. 오, 내가 일이 많은 걸 어떻게 알았지? 내 인상이 그렇게 보이나?
“그 일 좀 줄이지 않으면 남자가 붙지 않겠네요.”
점쟁이는 단정지었다. 내게는 운명의 남자를 만나는 나이 같은 건 말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다 나 하기 나름이라는 뜻 아닌가. 다 저 하기 나름인 인생에서 정해진 운명을 알고 싶어서 점쟁이를 만난다니. 이 모순 속에서 더 물을 것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하늘에 대고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우선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잘 계시는지 알고 싶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암에 걸린 건지 아닌지도. 아, 암이 언제쯤 완치될지 어떨지 누가 대답해줄 수만 있다면!
동네 할머니는 당신이 굳이 바카스를 좋아한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마을회관에 시원한 바카스 한 상자를 철철이 사다 바친 아버지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었다.
“아, 예.”
할머니는 끙차 소리를 내면서 산을 내려갔다. 내 대신 이누크가 할머니를 배웅해 드렸다. 나는 한숨 돌렸지만 그 다음 순간 깜짝 놀랐다. 이번엔 웬 아저씨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팔에 ‘순찰’이라고 쓰인 노란 완장을 차고 있었다. 아저씨는 구들장 아궁이를 흘긋 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산중에서 불조심하고 계시나 한번 들렀습니다.”
“네. 보다시피 불은 피우지 않아요.”
“하긴, 여름이니까요.”
아저씨는 손을 마주 비비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미소를 흘렸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다행히 이누크가 돌아와 있었다. 이곳에서 지내려면 개가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말이죠, 제가 어렸을 때 이곳에 살았답니다.”
에? 또 이 집의 역사 이야기야? 그럼 아저씨가 무당이었나? 아니, 어렸을 때랬지. 그럼 아저씨 엄마가 무당?
이게 웬...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는 마루 아래 돌 쌓인 다 무너져가는 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말이죠. 그냥 돌이 아니에요. 시커멓게 그을렸죠? 옛날 구들장돌이에요.”
아, 여기가 무슨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경로당인가 왜 여기 와서 한담을 나누려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저씨가 가리키는 돌을 마지못해 보았지만 구들장돌과 그냥 돌이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여기 보세요. 이렇게 넓적하고 판판한 돌이 불길과 연기에 데워져서 방이 따뜻해지는 거예요. 아가씬 도시에서 살아서 모르죠?”
아저씨는 의기양양했다.
“근데 구들장이 왜 방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거예요?”
“거야, 옛날 한옥을 헐었을 때 나온 구들장이 돌담 쌓기 좋게 생겼잖아요. 누군가 이 집을 지으면서 재활용한 거예요.”
그랬군. 이 땅에 이 조립식 집을 짓기 전에는 한옥이 있었다는 거다. 진짜배기 한옥이.
“그땐 집앞 터도 이렇게 넓지 않았죠. 이 아래 비탈이 집 앞에 바싹 붙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이사온 중이 포클레인을 불러서 이렇게 터를 넓혔어요.”
“에? 아까 할머니는 저희 아버지가 터를 넓혔다고 하시던데요?”
“그건 할머니가 잘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에요.”
“중이 이곳에 살았다면, 그럼 무당은 언제 살았나요?”
“어, 무당이라고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한동안 이 동네에서 나가 살았어서.”
그때였다. 갑자기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너머를 보니 고쟁이 바람의 활동적인 아줌마가 등장하고 있었다. 아줌마는 더운지 계속 온몸 구석구석으로 부채 바람을 넣느라 번잡스러웠다.
“아, 무당이 살았었다는 말은 나도 들었어요. 중이 살기 전이었던가, 뒤였던가? 하여튼 이 조립식 주택을 처음 지었던 사람은 개장수였수.”
“에, 개장수요?”
나는 어느새 이 집에 얽힌 이야기에 완전히 말려들고 말았다. 개장수, 개장수가 뭐지? 개 파는 사람인가?
“아이고, 말도 마요. 처음에 여기 왔을 때, 그때는 여기까지 차가 들어왔었어요. 저기 저 개천을 타고 차가 거슬러 올라왔답니다. 지금은 개천의 폭이 좁아져서 안 되지만. 하여튼, 늙은 개장수하고 그 아들인지 젊은 사람하고 둘이 지은 것 같던데. 하여간 개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 주변이 완전 개똥 쓰레기 산이었다오. 아마 지금도 집 근처에서 개 주사놓은 주삿바늘 몇 개쯤 나올걸?”
고쟁이 아줌마는 문득 나를 보더니 물었다.
“근데, 아가씨는 누구?”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내 아버지 집 앞마당에서 동네 모임을 하고 있으면서 정작 집 주인인 나더러 누구냐니! 그러자 어렸을 때 여기 살았다던 산불 관리 아저씨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중얼거렸다.
“글세, 새로 이사온 분이신가...”
고쟁이 아줌마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얼른 자기가 자기 물음에 대답했다.
“아참, 여기 살던 냥반 따님이시겠구먼. 나도 참, 따님 만나러 온 건데!”
아줌마가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손을 잡기가 뭐해서 애매한 웃음만 흘렸다. 아줌마는 성격 좋게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거둬들이더니 말했다.
“저는 아버님한테 이 집을 중개해 주었던 공인중개사예요. 저도 이 동네 살아요. 여기 사시는 동안 가끔 찾아뵈었었죠. 따님이 있다는 말도 직접 들었어요. 그런데 아버님하고 별로 안 닮았네... 눈매가 좀 닮았나?”
“아, 예.”
“다름이 아니고, 이 집 정리하실 생각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시라고요. 오늘은 일요일이고 하니... 젊은 분이시니 홀랑 서울로 올라가 버릴까 봐 서둘러 올라오는 길이에요.”
아줌마가 황금색으로 코팅된 번쩍번쩍 빛나는 명함을 건넸다. 이런 시골구석 주택들도 거래가 잘 되는 모양이었다. 아줌마는 잠시 기다렸다. 마치 내가 금방 집을 내놓겠다고 말하기라도 할 듯이 말이다. 사실 나도 그러려고 삼일 전 이곳에 왔지만 지금은... 급할 게 뭐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핑계 삼아 다 부서지다만 구들장 아궁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런 집도 누가 사나요?”
“그럼요. 이 집만큼 산속에 쑥 올라와 있는 집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소박하게 지어진 집들이 꽤 있어요. 주로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분이 저렴한 가격에 이런 집을 사서 이사들 오시죠.”
그때 집 안을 기웃거리던 산불 관리 아저씨가 말을 자르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와, 구들장을 만들고 계셨군요! 오, 여자가 어떻게…! '여자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인데...”
내 눈이 이글거리는 걸 보고 찔끔한 아저씨가 얼른 덧붙였다.
“아~ 이런 구들장은 이제 이 동네에서도 하나 없는데! 구들장 좋지~. 뜨끈뜨끈 지지고. 아마 이 구들장 때문에 집값 올라갈지도 모르겠는걸요.”
아저씨가 미적지근하게 허허 웃자, 아줌마가 코웃음을 한 번 쳤다.
“그거야, 사람 취향에 따라 다르겠죠.”
두 사람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떠났다. 남자 대 여자로 소박한 전원생활과 편리한 도시생활의 장점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펼치는 모양이었다. 이누크는 두 사람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갑자기 본분을 잊었는지 두 사람을 줄곧 따라 내려가며 계속해서 짖어댔다. 오 분쯤 지나자 이누크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채 사람들의 목소리는 사라져버렸다. 시간이 더 지나자 주위가 완전히 조용해졌다. 한낮이라 새들도 나뭇잎 사이에서 쉬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돌리며 한참 기다렸다. 혹시 누군가 또 올라오지 않나 겁내면서. 싹 깎아놓은 마당이 훤히 내다보였다. 뿌듯했다.
묵은 빨래를 하고 보니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앗! 늦었다.”
온전히 햇빛을 누리던 앞마당에 그늘이 반쯤 드리워져 있었다. 한낮에는 빨래가 한두 시간이면 빳빳이 마르는데, 오늘은 너무 늦었다. 내일에나 마르겠다. 숲으로 둘러싸인 산 중턱에는 햇빛이 다른 곳보다 늦게 드리우고, 빨리 거둬지나 보다. 아마 이 동네 자체의 고도가 높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
무거운 모터를 메고 이틀에 풀을 다 깎아서인지, 아니면 질근거리며 손빨래를 해서인지 몸이 온통 뻐근했다. 그런데 뭐지? 이 피로는? 하루 일을 마친 뒤의 기분 좋은 노곤함이라고나 할까? 나는 드러누워서 반쯤 감긴 눈으로 확 트인 거실창으로 들어오는 숲으로 둘러친 병풍을 감상했다.
‘초려 삼간 중 한 칸은 나 자고, 한 칸은 청풍에게 내어주고 한 칸은 명월에게 주고, 강산은 들일 데 없어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의 시가 요상하게 변형된 채 입술 끝에 머물렀다. 아버지 방은 저 책으로 가득찬 방이었겠지. 바닥의 아궁이 구멍으로 지금도 바람이 솔솔 불어들어오는 저 되다 만 구들방은 청풍의 것이겠고, 거실 방은 달밤에 달빛이 비쳐들 테니 명월의 방이고. 강산은 투명한 창을 통해 이 집을 둘러쳤고. 과연 아버지였다.
깜빡 풋잠이 들었다가 눈을 번쩍 떴다. 그 사이 그늘은 마당 끝까지 다다랐고,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시냇가에 유난히 커다란 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커다란 새들은 아름다웠다. 저 새들은 무어라 부르는 새들일까? 커다란 새들은 까마귀처럼 “깍깍” 하면서 글자 그대로 ‘떠들어댔다’. 하지만 나는 그 울음소리가 좋았다.
어두워지자 누군가에게 엉덩이라도 찰싹 맞은 듯 촐싹거리면서 이누크가 돌아왔다. 나는 그때 아버지 손때 묻은 새 도감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잡지도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는 이곳에서 어두운 밤에 할 만한 일은 오직 책을 들춰보는 일뿐이었다. 알고 보니 이누크도 읽을거리를 가지고 왔다. 최진이에게서 온 쪽지였다.
풀을 다 깎았다면서요? 대단해요.
오늘 하루는 정신없이 바빠 못 올라가 뵀네요.
하지만 ‘뭐든지 혼자 하는’ 이나 씨를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누크에게 저희 어머니 음식을 좀 들려 보냅니다.
맛있게 드시길~
이누크는 하네스 애견벨트 아래에 큼지막한 반찬통 하나를 달랑달랑 매달고 있었다. 열어보니 김치부침개랑 하얀 절편이었다. 매콤한 냄새에 정신을 쏙 뺀 채 쫄깃한 절편이랑 같이 씹었다. 내내 그 냄새를 맡으며 올라왔을 이누크에게도 나누어주고.
“녀석, 정말 쓸 만한데!”
이누크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멍멍 짖었다. 다시 보니 이누크는 벌써 집에서 많이 먹고 왔는지 배가 빵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