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멍!!”
꿈결에 개 짖는 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아, 정말 몇 년 만인지 모르게 잘 잤다. 어젯밤엔 정말 열대야도 없어 시원했고 너무 조용했다. 자면서 미소를 지은 건 평생 처음이었다. 나는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기 싫어서 베개에 얼굴을 비벼댔다.
“어? 이거 내 베개 아닌데?”
나는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어젯밤의 과정을 다시 되풀이해야 했다. 이곳이 어딘지 다시 한 번 질문한 뒤에 스스로 대답하고, 욕실에 가서 오줌을 누고 물을 뿌리는 과정을 말이다. 물론 손으로 더듬어 스위치를 찾는 일만 빼고.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멍멍멍!!”
다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덤불 산 속에 야생 개들이라도 살고 있는지? 슬며시 커튼 한쪽을 들어올리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럼 그렇지, 창문 앞까지 이렇게 풀이 빽빽한데 뭐가 보이겠어?
그 순간이었다. 스펀지 같은 까만 공이 풀 사이를 가르고 유리창으로 확 달려들었다.
“앗!”
순간적으로 손에 잡았던 커튼 자락을 놓쳤다. 커튼은 다시 창문에 온전히 드리워졌다.
“그게 뭐였지?”
그건… 개였다. 다시 커튼을 들어 보니 개가 내 얼굴을 보면서 유리창 표면에 콧김과 끈적한 콧물을 마구 문질러대고 있었다. 커튼을 옆으로 탁 제치니 거실 안으로 온통 초록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버지의 이중 창에는 불투명한 간유리가 없었다. 이중 샤시 창문을 닫은 채라도 바깥의 자연이 날것 그대로 비쳐 들어왔다.
개는 무지하게 컸다. 저런 종을 뭐라 그러지? 허, 허스키였던가? 온몸을 뒤덮은 검은 털에, 파란 눈이 박힌 부분을 알려주듯 눈 주위와 콧등에만 하얀 반점이 있었다. 개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엄청나게 촐싹거리면서 당장이라도 투명한 유리창을 통과해서 내게 달려들어 침 세례를 퍼부을 것 같았다.
“거기 누구 있어요?”
목소리에 뒤이어 덤불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태 볼꼴 못 볼꼴 다 본 나이지만 이런 사람 하나 없는 숲속에 남자가 나타나다니! 혹시 어제 혼자 내가 이리로 올라오는 걸 보고 뒤따라온 것일까? 경계심이 일었다.
개가 이번에는 남자에게로 가서 또 촐싹거렸다. 개의 주인인 것 같았다.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이라고 누가 말했다. 어떤 책에서였던가?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동물한테는 잘하는지 몰라도, 사람에게 막 대하는 사람을 얼마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당당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뭐래도 여긴 내 아버지 집이고, 나는 검술을 할 줄 안다.
나는 투명한 유리창이라는 안전한 방패 안에 떡 버티고 서서 팔짱을 탁 꼈다. 남자가 의아하다는 듯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처마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유리창이 꼭꼭 닫혀 있어 목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여기 말벌집이 있는데요!”
“네, 알아요!”
“괜찮겠어요?”
“네, 걱정 마세요. 여기서 살 거 아니니까요!”
그때 갑자기 남자가 ‘아야!’ 소리를 지르며 정수리를 감싸 쥐었다. 벌에 쏘인 모양이었다. 개가 처마 쪽을 향해 멍멍 짖기 시작했다.
“아야... 그만 둬, 이누크.”
남자가 유리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곁눈으로는 불안한 듯 연신 처마 쪽을 살피면서 말이다.
“아, 저기... 정수 형님 따님이시죠?”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고 팔짱이 풀려버렸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알지? 아버지가 이곳에서 완전히 홀로 생활한 것만은 아닌 듯 싶었다. 아, 그날 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려다주었다는 그 사람인가?
말벌이 요란스러운 두 침입자를 감지한 듯했다. 창문 앞을 배회하는 벌의 수가 늘어났다. 막 공습을 하려는 전투기처럼 오금을 저리게 하는 벌들의 붕붕 소리가 살벌하게 유리창을 뚫었다.
“아이고, 벌 때문에... 이따 다시 올게요~”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줄행랑을 쳤다. 높이 솟은 풀들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개는 주인 뒤꽁무니를 놓칠세라 쫓아갔다.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아서 우스웠다. 하지만 미안하기도 했다. 내 집에 기껏 찾아온 손님에게 벌침을 쏘여 돌려보내다니... 문을 열어줄 걸 그랬나?
거북한 기분도 잠시, 집 안을 걸레로 싹싹 닦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물도 귀찮아서 끓이지 않고 그냥 마셔 보았는데 맛있었다. 배 속도 괜찮았고.
창문을 여니 즐겁게 노래하는 새 소리가 라이브 음악처럼 마음을 들뜨게 했다.
‘꼬르륵.’
아, 소고기 스테이크라도 구워서 아스파라거스랑 곁들여 야외에서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여기선 그런 요리는 만들 수 없었다. 우선 재료가 없었다. 그 다음으로 나는 요리를 할 줄 몰랐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달랑, 라면이랑 계란프라이? 밥은 전기밥통이 없으면 못했다. 게다가 야외에는 발 디딜 데도 없었다. 게다가 말벌에, 자꾸만 눈에 따라붙는 초파리에, 허리까지 튀어오르는 징그러운 메뚜기에 개구리까지! 뱀은 또 어떻구? 사실 아직까지 뱀은 못 봤지만 개구리가 저리 많으니 뱀 천지겠지 싶었다.
시내로 나가면 만사해결인데, 가기가 너무 귀찮았다. 말벌 공습부대를 지나, 정글 밀림을 지나, 가시덤불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다시 그 모든 걸 지나 이곳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럴 바에야 내려간 김에 그냥 서울로 올라가지! 아이고, 아버지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셨을꼬? 나는 생각할 힘도 없어서 그냥 쌀을 끓여 간장이랑 참기름을 쳐서 비벼 먹고는(온갖 양념이 다 있었다) 시원한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서울엔 이따 오후에 올라가지 뭐.”
급할 게 없었다.
어젯밤 하도 자서 그런지 낮잠이 안 왔다.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만 가득했다. 벌집은 그렇다 쳐도 어쨌든 밖에 무성한 풀들은 베어내야 했다. 아니면 뽑아버리든지. 아까부터 배 속에서 열심히 꾸무럭거리고 있는 대장이 볼일을 봐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 끝에 현관으로 나가는 걸 포기하고 벌집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작은 방 창을 넘어서 밖으로 나갔다.
집 맞은편에 있는 창고로 보이는 건물까지 풀숲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가 보았다. 창고에는 여러 가지 연장이 많이 있었다. 호미, 곡괭이, 낫, 심지어 지게도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농부들이 쓰는 풀 깎는 기계도 있었다. 배낭처럼 어깨에 메고 부메랑처럼 생긴 날이 달린 기구를 뱅글뱅글 돌리면서 풀을 날려버리는 기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산 낫을 어디쯤에 던져 두었는지 생각이 안 났다.
집에 두고 온 진검 생각도 났다. 하지만 밀림 속에서 어차피 진검을 휘두를 확 트인 공간이 없는 바에야 아무 소용없었다. 진검은 원룸에 모셔 놓은 것들 중에 가장 비싼 거였다. 어차피 거의 장식용이었지만, 일단 남자들이 그걸 보면 그 순간부터 눈에 띄게 겸손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일단 아버지의 낫을 하나 들고 나와서 집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길에 늘어선 풀들을 베기 시작했다. 조금 하다 보니까 풀이 뿌리를 박고 있는 땅이 축축하단 걸 알게 되었다. 햇빛이 바닥까지 닿지 못해서 그랬으리라. 그냥 풀줄기를 잡고 쓱 잡아당기니 풀이 통째로 뽑혔다. 오호라. 나는 또다시 낫을 내던지고 풀을 뽑기 시작했다.
풀을 얼마쯤 뽑자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나는 전략을 바꿔 풀 뽑는 면적을 가로 약 50센티미터로 좁혔다. 한참을 애쓴 끝에 나는 발치에 뭐가 있는지 훤히 보이는 땅에 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성취의 기쁨도 잠시, 간이 화장실의 문을 연 나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쳐 떡이 되어 거실에 벌러덩 누워 있을 때, 아침의 그 남자가 다시 왔다. 사실 그 남자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어쩐지 구수하게 느껴지는 느린 사투리를 하는 웬 할아버지랑 같이 왔다. 할아버지도 남자이기에 나는 경계하는 마음이 다시 일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 놀라지 마시유. 벌집 땡겨주러 왔으니께.”
할아버지는 지독하게 질겨 보이는 느낌의 긴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꿀벌 칠 때 쓰는 것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고. 아침의 그 남자도 할아버지와 같은 복장이었다. 나는 거실 창문을 열었다.
“나오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벌집 떼어 주신대요.”
“어머나.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요, 화장실에도 벌집이 있어요.”
평소 내 목소리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되도록 조그맣게 말했다. 초면에는 누구나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법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입을 쭉 내밀고 웅얼거리듯 말하는 편집실의 깜찍이를 따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속이 메스꺼워졌다.
“아이고, 정말이유?”
할아버지가 난처한 지경이 곱빼기가 되었다는 듯 입술을 일그러뜨리더니 급기야 쩝쩝거리는 소리를 냈다.
“걱정 마시유.”
할아버지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벌집 퇴치 작전에 할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듯했다. 원기를 되찾은 남자가 개를 향해 외쳤다.
“이누크, 저리 좀 가 있어!”
개는 사람들에게서 흥분과 긴장의 기운을 느낀 듯 오두방정을 떨며 방충망에 코를 들이대고 있는 참이었다. 방충망이 눌려 창틀에서 몽땅 빠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유리창을 닫고, 작은 방 창 쪽으로 가서 얼굴을 살짝 내밀고 할아버지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무시무시한 벌집 크기에 대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사진 한 장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양손에 하나씩 벌 잡는 살충제 스프레이를 들고 벌집은 물론, 날아드는 벌들에게 살충제를 총 쏘듯 마구 분사하기 시작했다. 남자도 지지 않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가며 살충제를 발사했다. 한동안 그러자 벌이 줄어든 것 같긴 했지만 여전히 많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결심한 듯, 가스분사기를 꺼내 들었다. 나는 처음에 그게 가스분사기인지 몰랐지만 할아버지가 그 기구의 앞쪽에 불을 붙이자 불이 확 붙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마치 서커스에서 하는 불쇼 같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모양의 불길이 벌들을 향해 공중으로 또르르 굴러가는 듯하였다.
“우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와 남자가 입은 게 방염복이었나? 저리 자신 있게 불을 당기는 걸 보니. 불에 놀랐는지 벌이 거의 사라지자 할아버지는 남자에게 커다란 비닐봉지를 벌집 밑에 받쳐 들게 하고서 장대로 벌집을 떼어내려고 갖은 애를 썼다. 벌집이 잘 떨어지지 않자, 할아버지는 숨을 몰아쉬었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으리라.
고집 센 벌집에 화가 난 할아버지는 장대로 벌집을 마구 치기 시작했다. 벌집은 내 예상대로 견고했다. 별로 부서지지 않았으니까. 보다 못한 남자가 장대를 넘겨받더니 벌집에 일격을 먹였다. 장대가 생각보다 푹 들어갔는지 남자의 몸이 순간적으로 기우뚱했다. 그 바람에 벌집의 반이 부서져 떨어졌고, 어깨를 으쓱하며 전의를 가다듬은 남자가 한 번 더 장대를 휘둘렀다. 다음 순간 벌집은 윗부분만 남고 다 비닐봉지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 있었다. 화장실의 벌집에는 불을 지르지 않아도 됐다. 어쨌거나 처마 밑의 벌집보다는 작았으니까.
“휴우~!”
한참 만에 할아버지와 남자가 모자를 벗었다. 나는 얼른 문을 열고 나갔다.
“아유, 고맙습니다.”
나는 또다시 깜찍이를 따라하고 있었다.
“으허허, 뭘. 이래 봬두 119대원이유.”
할아버지가 넉살 좋게 말했다. 남자가 손짓하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명예대원이시죠. 지금 119에 인원이 없어서 급한대로 할아버지랑 둘이 왔어요.”
할아버지와 남자는 집 앞에 걸터앉아서 우주복 같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죄송스런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드릴 게 없어 시원한 물을 한 잔씩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워. 겨울이었으면 벌집술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리 살충제를 뿌려 댔으니...”
할아버지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흔들며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내게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정수 형님이 따님 얘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저는 동네 총각 최진이라고 해요. 아버님이 절 의지하셨었죠.”
남자는 ‘총각’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더니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이거 드세요. 지금은 할아버지와 함께 가야 해요. 저... 내일은 와서 풀 좀 깎아 드릴게요. 괜찮죠?”
이누크가 봉지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사방에는 벌집 부서진 잔해가 널려 있었다. 조그마한 벌집 칸에는 하얀 애벌레가 꽉 들어차 있었다. 살충제를 마시고 불에 탄 벌들 중에는 아직도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갑자기 어지러웠다.
남자는 서둘러 할아버지를 쫓아 내려갔다. 이누크는 힘없이 늘어뜨려진 내 손을 핥더니 곧 주인을 따라 뛰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