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젠장...!”
얼마나 산을 올랐는지 거리는 가늠할 수 없었다. 한 300미터 올라왔나? 시간은 한 30분쯤 걸린 것 같았다. 시간 감각도 사라져 있었다. 어쨌든 오두막까지 다 올라왔는데 지난 고생을 생각해서 무엇하랴.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당면한 젠장할 문제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 그건 아버지의 집 처마에 매달린 커다란 말벌집이었다.
거대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말벌집은 네모반듯한 집 정면에 떡 자리잡은 구 모양의 암 덩어리였다. 겉에는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녹아든 초콜릿 마블링 같은 무늬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순간, 부드러움과 견고함을 한몸에 갖춘 말벌집에 매혹됐다. 저걸 정말 말벌들이 만든 건가? 벌들의 침만으로 정말 저처럼 완벽하게 균형잡힌 예술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좌뇌가 벌집의 아름다움에 취한 사이 우뇌는 두 가지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저 벌집을 처리하지 않으면 집이 팔리기는커녕 오늘 내가 저 집에 들어갈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과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절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어미 말벌이 육아실을 만들려고 처마 아래에 끈적한 침을 바르자마자 아버지는 진저리를 치며 그 보이지 않는 침까지 박박 긁어냈을 테니까.
“이번에 며칠 집 비웠다고 또 얼마나 벌집을 지어 놨을지...”
아버지는 전전긍긍했다. 아버지가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끔 서울 병원에 오실 때마다 나는 벌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들어야 했다.
“벌이 처마에 벌집을 짓지 않도록 여름까지만 조심하면 돼. 그 뒤에는 벌집을 짓지 않거든. 하지만 벌들이 무슨 죄가 있니. 사람들의 집만 아니면 벌들은 어디라도 자기네들처럼 자연에 어울리는 곳에다 집을 지으면 되는 거야.”
아버지는 언젠가 자동차 차창에 튀어나온 가리개 아래에 벌이 작은 벌집을 붙여놓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 얘기인즉슨 어느 날 서울에 올라오느라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곁눈으로 창밖에 뭔가 까만 게 덜렁덜렁 거리는 게 보였다고 한다. 틈을 봐서 살짝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말벌이 자기가 지은 방 세 칸짜리 집에 간신히 매달려 버티고 있었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데도 벌집은 물론 벌도 떨어져나가지 않았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작은 곤충이지만 그 투지와 인내심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안쓰러워서 급히 가까운 휴게소에 들렀지만 그때쯤 벌은 사라지고 없었다. 속도를 줄였을 때 대담하게 집을 버리고 날아가 버렸을까? 아니면 힘이 달려 달려오는 뒤차에 부딪혀버렸을까 아버지는 알 수 없었다.
기분 탓일까 그 이후로 아버지는 벌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병원치료를 포기하고 오두막에 틀어박혀 생활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서울까지의 긴 여행을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의 몸속에 자리잡은 저 벌집과 같은 암 덩어리와 싸우기를 포기했는지도 몰랐다.
벌집이 저리 큰 것을 보니 겨울을 난 듯 싶었다. 적어도 올봄에 지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는 작년 봄에 저 벌집을 없애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재작년 여름엔가 집에다 무슨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뭐랬더라, 황토방을 만든다고 했던가, 다락방이었나? 지금 보니 벌집 바로 아래에, 그러니까 높은 기단 위에 만든 오두막 아래 시커먼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그곳이 불을 때는 구멍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아버지의 말씀이 수화기를 통해 또박또박 들려오는 듯했다.
“구들방이야. 구들방을 만든다고. 눈이 허벅지까지 오는 겨울에도 뜨뜻하게 지낼 수 있는 한식 구들방으로 개조하기로 했어.”
“집이 공사 차량도 못 들어가는 산 속이라면서 뭘 만들어요?”
“그냥 나 혼자 슬슬 하지 뭐. 운동겸.”
나는 구들방을 어떻게 만드는지 전혀 몰랐다. 그냥 벽돌 몇 장 깔고 황토나 슥슥 바르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구들방보다 아버지의 몸 상태가 걱정됐다. 서울까지 병원에 모시고 다니겠다는 내 말에는 대답도 않고, 시내의 큰 병원에 잘 다니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만 했다.
지금으로선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자식이 제정신이었다면 암에 걸린 아버지를 홀로 산 속에 내버려두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 완치 판정은 받지 않았었지만 상태가 확실히 좋아졌었다. 아버지는 건강을 위해서라며 산속 집을 구입해 들어갔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방문을 미루고 있던 중이었다. 아버지 역시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고 일이나 하라고 하셨다.
이것저것 지난 일을 생각하다보니 왠지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과 그 앞마당이라 할 풀밭이 꽤 넓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축구 경기라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쪽 끝에는 원두막이 하나 서 있었고, 간이 화장실 하나가 자연의 초록색을 지닌 풀숲 사이에서 인공적인 초록색을 내세우며 서 있었다. 집은 언뜻 통나무 집 같기도 했지만 자세히 보니 속은 조립식 주택이었다. 겉면에 통나무 타일을 붙인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적어도 안은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을 테니까. 혹시 부엌이 조선시대처럼 바깥부엌 아닌가 걱정했었다. 화장실도 수세식일지 몰랐다.
벌들이 여전히 벌통 주위에서 윙윙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하고는 한 2미터 정도 거리가 있었다.
“저 정도면 살짝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눈앞에 벌어진 물리적인 어려움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게 야릇한 기분이었다. 나는 책상 위에 앉아서 하얀 종이 위에 꽉 박힌 이야기 나부랭이들 사이에서 헤매는데는 이제 진절머리가 난 모양이다. 오랜만에 검도 같은, 이성이나 도덕,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이 그저 몸을 놀리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검도를 하는 순간만큼은 한 마리 야생동물이 되어 오직 눈앞의 것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운동이 끝나고 나면 내 몸은 원초적인 개운함과 기쁨으로 가득 찼었다. 대련은 가끔 했다. 상대방을 때린다는 건 별로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검도도 어느 순간부터 흐지부지 되었는지 모르겠다. 뭐든 꾸준하지 못한 자의 변명일 뿐이다. 아, 나를 만족시켜 줄 세계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가방에서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서 머리와 어깨에 뒤집어쓰고 문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다행히 벌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벌집 가까이 갈수록 소름이 끼쳤다. 차라리 멧돼지나 호랑이와 마주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시커먼 꼬물이들이 저렇게 많이 우글거린다니, 윽!
문에는 번호를 돌려 열게 되어있는 싸구려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비밀번호는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대로 내 생일 네 자릿수였다.
‘삐걱.’
문을 열자 퀴퀴한 곰팡내가 확 풍겼다. 지하실도 아닌데 이런 냄새가 나다니! 귓가에서 벌들이 윙윙대는 것 같아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아하, 이 방을 공사하고 계셨군.”
정면에 있는 방의 바닥이 새로 관을 기다리는 묘지처럼 다 파헤쳐져 있었다. 공사현장의 왼쪽으로는 바닥에 타일이 깔린 욕실 같은 게 있었다. 실망스럽게도 수세식 변기는 없었다. 오른쪽으로 이어진 복도에는 비닐을 꼼꼼하게 쳐 놓아서 다른 방 쪽으로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비닐을 살짝 들추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손바닥만 한 공간 옆으로 그보다 더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고, 그 방에는 한쪽 벽면이 다 책으로 들어차 있었다. 거실 위쪽에는 좁은 통로에 간신히 붙어 있는 씽크대가 있었다. 작은 집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거실 전망 창쪽 커튼을 열었더니 놀랄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우~집 안에서도 저 징글징글한 정글이 다 보이잖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괜찮았다. 벌레와 뱀을 걱정하지 않고서도 숲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환상을 주니까. 창문 바깥쪽에는 방충망이 달려 있어 창을 열어두어도 벌레가 들어올 걱정은 없었다. 나는 환기를 시키려고 집 안의 창문이란 창문을 다 열었다. 갑자기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집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마치 계곡으로 차가운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목이 말랐었지, 참.
껄껄한 목을 가다듬으면서 씽크대의 물을 틀어 보았다. 수도꼭지는 한참동안 쉭쉭, 덜그럭덜그럭 거리는 소리만 내더니 드디어 팟팟팟 하면서 물을 튀겨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간 희뿌연 물이 나왔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층 안정된 물소리를 내면서 맑은 물이 흘러나왔다.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고 주전자에 물을 올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끓였다. 목 타는 한여름에 뜨거운 물을 마셔야 했지만 그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혼자 배가 아파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어쩔까 싶었다.
물이 끓는 동안 나는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빼고 냉장고 안과 찬장 문을 차례로 열어 보았다. 혹시 안에 코모도 도마뱀 같은 게 도사리고 있을지도 몰라서였다. 하지만 냉장고 안은 정말, 깨끗이! 비어 있었고,(당연한 일이었다. 이 집이 비어 있은 지 일 년이나 되었는데! 설사 뭐가 들어 있었다 해도 결과는 끔찍했을 거다. 그런데 누가 청소한 거지?) 찬장 안에는 약간의 쌀, 그리고 라면 하나가 모셔져 있었다. 라면은 유통기한이 6개월이나 지나 있었다.
보글보글 끓는 물과 라면. 갑자기 행복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둥실 떠올랐다. 아, 난 너무 단순해! 부리나케 주방을 뒤져 냄비를 찾아내 가지고 끓는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 레버를 돌렸다. 물은 몇 초 안 되어 끓기 시작했다.
“흐음~”
콧구멍이 다 벌렁거렸다. 새삼스럽게 내 몰골이 어떤가 싶어 거울을 찾아보았지만, 집에는 거울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화장 같은 걸 고치는 타입이 아니어서 내 가방 안에도 거울은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얼굴은 봐서 뭐해.
매콤한 라면에 아버지가 담가 둔 달착지근한 오디술을 홀짝거리니 이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는 듯하였다. 이곳에는 죽는 소리를 해대는 사장도, 마감기한을 넘기고 잠적해버리는 작가도,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는 디자이너도 없었다. 무슨 말만 하면 ‘노처녀라서 그렇다’며 수군거리는 인간들도 없었다.
“두 발을 번갈아 놀리는 것만으로 찾을 수 있는 천국! 그 천국이 바로 여기였어. 아버지 말씀이 맞았어!”
대낮부터 은근히 취해서는 나도 모르게 바닥에 엎어져 잠을 퍼질러 잤다. 깨어나 보니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잠시, 내가 어디 와 있는지 헷갈렸다.
“아, 아버지 집.”
형광등 스위치를 찾느라고 온 사방 벽을 더듬더듬 코끼리 만지듯 어루만진 뒤에야 방을 밝힐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손에 이상한 것이 잡혀 몇 번이나 화들짝 놀랐다. 목덜미에서 뭔가 간질이는 듯하여 머리카락이 쭈뼛 서기도 했다. 불을 켜고 보니까 손에 잡힌 것은 거미줄이요, 목덜미를 간질이던 것은 작은 나방이었다. 윽. 거미줄이 끈적끈적하게 손가락에 들러붙었다. 지금 보니 낮에 잠깐 낫질 했다고 손바닥에 작은 물집이 잡혔다.
불을 켜고서 새삼스럽게 이곳의 어둠은 도회지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아무 다른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어둠이었다.
나는 ‘욕실’에 가서 오줌을 눈 뒤에 물을 뿌려 하수구로 흘려보냈다. 어렸을 때 수세식 변기에 앉으면 엉덩이가 변기 속으로 쑥 빠질 것만 같아서 하수구에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누었을 때처럼. 그때 물을 뿌리지 않아 엄마한테 냄새 난다고 혼이 났었지. 엄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나를 홀로 키웠고... 그런데 잠깐, 이 하수구는 어디로 연결되는 거지? 아랫마을의 하수처리시설까지 가 닿을 리는 없을 테고. 아니, 내가 뭔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지?
낮에 먹은 라면 때문에 속이 좀 부대꼈다. 아니면 오디술 때문인가?
“끄억!”
트림을 한 번 꺽 하고 내뱉었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마지막 손길이 닿았을 요와 이불을 꺼내 장판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고 다시 한 번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