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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n 13. 2022

찰나에 관하여

윤슬만큼 반짝이는  없다

흔히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누구든 물결에 비친 햇살 조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윤슬이라고 한다. 순우리말인 이 단어는 내가 아끼는 낱말 중 하나다.


낮 시간에 한강 공원을 가면 항상 부서진 햇살 조각을 바라보곤 한다.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사진으로, 또 영상으로 남긴다. 너무 눈부시고 뜨거운 햇볕을 직접 보고 느끼기보다 물결에 비쳐 부서진 것들을 주워 담는 걸 더 좋아한다. 생각을 비우고 바라보기 좋다.


Stay Alive - Jose Gonzalez

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하면 유년시절을 어떤 기억이기보다 몇몇 순간과 인상들로 기억한다. 그래서 가족들은 때로 놀랄 때도 있다. 나도 우스갯소리로 외계인에게 납치 당했던 것 아니냐며 장난을 치곤 하는데, 대신 순간과 인상들은 굉장히 또렷하고 서사적으로 기억한다. 그 때의 감정과 정취와 향기들을 기억한다.


그 중 하나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월터 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아시는지. 원제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인데 꽤나 열심히 번역을 잘한 제목이다. 약 10년 전에 나온 영화인데도 아직도 기억 나는 장면이 있다.


영화 가장 절정의 장면이었다. 몇 날 며칠을 기다리며 백호를 찍으러 갔던 사진가가 백호를 포착한 순간,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월터가 묻는다. 왜 사진을 찍지 않느냐고. 사진가는 때로 너무 완벽한 순간을 보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사진기로 본 그 순간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어 사진을 찍지 않는다며 사진기를 챙겨 내려간다. 영화를 보고 당시 16살이던 나는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때로 그런 순간이 있지 않나.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순간. 이 찰나의 순간으로 삶이 기억됐으면 좋겠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 장소와 시간, 함께 있는 사람과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와 내가 느끼고 있는 정서들로 내 기억이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억 저장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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