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가 제일 못하는 것 같아요.
하루 9시간, 점심시간을 제외한 8시간을 매일같이 학생들과 부대끼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개별 면담을 진행하게 될 때가 꽤나 있다. 각 학생들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따로 면담이 필요하다며 찾아오는 학생들의 서두는 대부분 자괴감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걔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학생의 말이 있는데, 아직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머릿속에 재생이 된다.
"교수님, 정말 이런 말 하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살아오면서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본 적이 없는데요. 저는 살면서 이런 점수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진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 학생 i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든 생각은 의아함이었다. 학생 i의 평균 시험 점수는 70~80점을 오가는 정도였다. 최상위권은 아니더라도, 중-상위권은 충분히 오가는 점수였다. 매번 완벽한 평가를 만들어서 진행하였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평균 점수 70점을 목표로 출제되는 시험의 평균 이상을 해내고 있었음에도 학생 i는 영 성에 차지 않아 하였다. 더 좋은 성적에 대한 향상심은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충분히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그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 걸까?
알고 보니 학생 i는 국내 최상위권 대학의 졸업생이었다. 대학 입학 전부터 대학 졸업까지 항상 최상위권 성적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90점 아래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학생에게 70-80점은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의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이었던 것이다.
'잘한다.', '못한다.'의 기준은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상대적인 것이다. 아무리 나의 성적이 반 평균보다 높아도 나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결국 '못 친 시험'이 되어버린다. 남들과 같은 수준의 이해도를 가지고 있어도, 시험 시간에 잠시 집중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공부를 못 하는 나'가 되어버린다. 평과 결과는 명확하게 나의 현재 성장 척도를 수치화하여 보여주는 좋은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의 본 의도는 잊은 채 나의 상대적 위치를 가늠하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다면, 그리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이건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라 생각된다.
끈임 없는 주변과의 비교는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비교 대상 군을 잘못 선정한다면 나를 갉아먹는 좀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위와 비슷한 이야기로, 가장 많이 듣는 말들이 있다. '내 옆 사람들은 전부 다 잘하는데 저만 못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만 저희 팀에서 쓸모가 없는 것 같아요.', '저 빼고는 다 괴물들 밖에 없어요.' 등 등. 특히, 2인 1조로 진행하는 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순간 쏟아지는 걱정들이다. 재밌는 것은, 2인 1조로 팀을 꾸리는데 그 2명이 각자 따로 찾아와서는 자기가 팀원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두 학생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다.
"팀원 A도 얼마 전 찾아와서 지금 B 씨가 하시는 말이랑 똑같은 말씀 하고 가셨어요."
그러면 대부분 믿지 않는다. 팀원은 자기보다 훨씬 똑똑하고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싶어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재밌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임포스터 신드롬(Impostor syndrome) 혹은 가면 증후군이라고도 부르는 심리 상태인데, 대체로 자신의 업적 혹은 성과와 능력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사기 혹은 편법이라고 생각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거기에 덧붙여 자신이 이룬 성과 등이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사기 혹은 편법이라는 것이 들통날 것이라는 두려움에 더욱 방어적인 행동을 취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 학생들의 행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다.
동일한 조건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동기들 속에서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있다면, 이런 과도한 불안감을 종식시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이 편법이나 사기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일종의 학업 방식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면 그러한 순간들이 반드시 찾아온다.
분명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인데, 수업 내용 없이 문제를 풀거나 작성하려고 하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교재나 강의 영상을 다시 돌려보며 따라 쓰듯이 작성을 하고 나면, 내가 공부해서 푼 것이 아니라 답안지를 펼쳐놓고 받아쓰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방금 힘들게 푼 문제들을 척척 풀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강의를 보고 따라 쓰기만 한 나는 상대적으로 편법으로 문제를 풀었고, 전혀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위의 일련의 과정을 잘 한번 되짚어 보자. 수업 내용을 잘 정리하면서 작성했다면, 그걸 우리는 '필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사회적 합의를 한 것이다. 강의에서 강사가 입으로 말하는 내용들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따로 정리하는 것, 그것이 필기다. 그리고 그렇게 필기한 내용을 토대로 계속해서 유사한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조금씩 익혀나가는 것이 학습이다. 초등학생 시절, 수학책과 수학 익힘책이 나뉘어 있었던 것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수학 책의 내용으로 이론을 배우고, 익힘책의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풀어보면서 이론을 익혀나갔었다. 그렇게 문제를 풀다 보면 너무 어렵거나 잘 이해하지 못해 막히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그럴 때면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이야기가 있었다.
"답안지 보고 베껴 쓰지 마!"
맞다. 답안지를 보고 베껴 쓰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그건 정말 편법이고, 사기이고, 받아쓰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도저히 풀 수가 없는 문제를 마주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풀이를 보고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풀이를 봐도 이해가 안 간다면? 주변 사람이나 강사에게 질문해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질문하기를 꺼려한다. '이 정도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똑같은 질문을 계속하면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이걸 모른다고 물어보는 건 너무 부끄러워', '난 이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참 많은 이유들로 질문하기를 꺼려한다. 특히, 내 옆 사람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든 일이 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위와 같은 악순환이 반복된다.
"내 옆 사람들은 전부 다 잘하는데 저만 못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옆 사람은 아마도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옆 사람은 혼자서 잘하고 있는데 내가 방해가 되면 안 되겠지...'라고 말이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 교수님, 강사가 전달하는 지식을 내가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익힘을 위한 과정은 나와 같은 수준의 주변인들과 충분한 토론을 나누며 서로의 지식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꼭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한 마디만이라도 옆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러면 금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 너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물론,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찌 됐든, 나의 무지함을 드러내야 하는 일이니 하루아침에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다가가는 것도 우스운 일이긴 하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말없이 공부하던 사람이 갑자기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는 "이거 어렵죠? 저는 모르겠어요."라고 말을 걸어오면 많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어쩌면 두 번 다시 그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 반에 20명 남짓이 함께 하고 있다면 이제 18번의 기회가 남은 것이다. 18. 큰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나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고독하게 공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비교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내 경쟁 상대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위치를 가늠하는 일은 중요한 행동이다. 문제는, 그 비교 대상을 잘 판별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겪는 고민 중에 하나다. 그러니 위에서 들었던 예시들처럼 지속적으로 내 옆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수준을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그렇게 비교하고 저울질 한 끝에 도달하는 것은 구석으로 숨어 혼자서 공부하고 있는 자신이다. 그런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매번 해주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