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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옆산책로 May 22. 2024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Belvedere)궁 미술관#2

#1 클림트편에 이은 다른 여러 아름다운 작품들

벨베데레 궁은 클림트의 <키스>로 유명한데 자크루이다비드의 나폴레옹이 말을 타고 용맹하게(?) 알프스를 넘는 우리가 알법한 그 그림을 보기 위해서도 꼭 방문하면 좋다.


벨베데레 궁전
Prinz-Eugen-Straße 27, 1030 Wien, 오스트리아


그 전에 잠시 카스파르의 작품으로 시작


동선 초입에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너무 쉽게 발견했는데 그동안 한 작품도 볼 수 없어서 언젠가 보기를 갈망했던 작가의 작품이 이래 쉽게 발견되니 초큼 허망하긴 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Rocky Lnadscape in the Elbe Sandstone Mountains>  1822/23

샌프란 현대미술관을 갔을 때 SFMoMA를 간 이유가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이 반이었는데 전층 다 보도록 못 찾다가 나오는 1층 퍼블릭 오픈공간 입구에 떡 걸린 걸 보고 헛웃음이 났던 느낌과 비슷;;


(나의 카스파르에 대한 애정은 이전 글에서)

https://brunch.co.kr/@miro0912/1


그의 <바닷가의 수도승>이나<안개 위의 방랑자>와 비교해 유명도는 떨어지지만 자연을 묘사하는 방식은 그의 스타일 그대로다. 디테일하고 부드러우나 자연에서도 외로움이 느껴지는 스타일 말이다.


안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니 사람들이 몰려있다. 아마 벨베데레의 작품을 보기 위해 오픈런을 한다면 반은 <키스>로 반은 이 나폴레옹의 그림 앞으로일 것이다. 다만 <키스>가 미술관 가장 안쪽에 많은 작품을 감상한 후 도달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미술관 자체는 <키스> 작품을 더 우위에 둔 것일 것이다. 그도 이해가 되는 것이 <키스>는 오스트리아의 국민화가 클림트의 작품이며 게다가 그의 최고 대표작인데, 자크루이다비드는 프랑스의 작가이며 이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림이 그의 대표작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와 선동에 능했던 다비드가 같은 소재로 여럿 그린 것도 있고



자크 루이 다비드 <Napoleon at the Great St. Bernhard Pass> 1801

그림은 이리 키가 큰 사람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볼 위치에 걸려있다. 크기도 대단히 크다. 화가는 의도적이고 전시를 한 미술관은 그 의도를 존중한다. 천고가 높은 한 벽면을 오롯이 채우고 있는 이런 그림을 프랑스혁명을 지나 왕정과 공화정 사이 불안정한 정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시민들이 본다면 비록 화가의 의도를 간파했을 지라도 그 의도대로 마음과 행동이 기울지 않았을까


자크 루이 다비드는 역시 선전 선동에 불세출의 화가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여다 보면 누가 봐도 나폴레옹인데 굳이 굳이 "저 분이 바로 위대하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시다!" 선언이라도 하듯 그림 하단에 명확하게 "BONAPARTE" 라는 성을 각인처럼 써 놓았다. 내 주군은 볼드체로 뚜렷히, 그 이전에도 알프스를 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한니발 장군등은 흐릿하거나 흘려썼다.


내가 바로 정치화가 자크루이다비드! 라고 본인 선언도 하는 듯하다.


다소 딱딱한 나폴레옹의 표정을 제외하면 나폴레옹의 붉은 망토와 파란색 군복 상의, 노란색 군복 하의는 촌스러울 수 있는 색조합임에도 안정적으로 캔버스에 들어앉아 있고 빨간 망토, 말 갈퀴가 향하는 방향성은 그림을 대단히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그 아래 이런 역동성과는 다시 모순되는 모습으로 느리고 힘겹게 마차를 이끌고 가는 군대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뤄 더욱 흥미롭다.   


나폴레옹이 이처럼 용맹하게 부하들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게 아니라 실상 부하들을 먼저 보내고 본인은 나중에 노새를 타고 몰래 산을 넘었다는 것은 이미 너무 유명한 일


Johann Georg Platzer <Samson's Revenge> 1730/1740

이런 그림 스타일 너무 좋다. 꼭 루벤스를 보는 것 같다.


그림은 조금만 들여다 보면 성경의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이며 이야기 중 가장 클라이막스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토리가 워낙 유명하니 그림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자면 우선 그림의 구도는 지극히 안정적인데 - 위층과 아래층이 기둥을 밀고 있는 삼손을 기준으로 대칭처럼 오므러졌다가 다시 펼쳐지는 구도 - 그 구도 속 블레셋 사람들의 혼비백산한 표정이나 무너지는 성전에서 위층 사람들의 낙하모습, 아래층 사람들에게 곧 닥칠 비극, 즉 깔려 죽을 순간의 에너지 묘사가 대단하다. 특히 이야기의 주인공은 삼손이지만 그림의 주인공은 무너지는 건물 2층에서 아래로 거꾸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표정인데,  


와!! 표현력 무엇!!!


작가의 이름을 다시 봤다.


Johann Georg Platzer, 요한 게오르그 플라체르.


오스트리아의 로코코 양식 화가라고 한다. 그의 스타일을 기억해 두었다.



Karl Karger <Arrival of a Train at Vienna Northwestern Station> 1875

와! 이 그림은 또 무엇!


오스트리아 화가들은 클림트와 에곤실레에 가려 빛을 덜 본건가


화가가 19세기 말 비엔나 역에 도착한 기차의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이 기차와 기차역이라는 신문물을 그림의 소재로 잘 활용하듯 오스트리아의 화가도 이러했다.

특히 사람들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는 여느 유럽 화가들의 기교에 뒤지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에 도착한 기차와 기차역, 그리고 기차를 타고 내리거나, 맞이하거나 배웅하는 사람들이 촘촘하게 그려져 있다. 거기엔 강아지도 인형도 한 몫한다. 그림은 기차를 탈 정도의 부와 지위를 갖은 사람들 위주로 표현되었지만 그 시대 비엔나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가는 대목


오스트리아는 클림트와 실레 외에 이렇게 회화적으로 뛰어난 화가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는 또 그 당시 유럽에 풍미하던 프랑스 인상주의와는 다른 스타일이어서 신선했다.



Hans Makart <The Fives Senses: Hearing (좌)>  1872/1879

작가가 인간의 5가지 감각 -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 을 표현한 총 5개의 작품 중 벨베데레에는 청각과 시각을 표현한 이 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모습을 차용해 감각들을 표현했는데, 일단 미술이 시각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대전제를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



Giovanni Segantini <The Evil Mothers> 1894

책이서 이 그림을 처음 봤다. 독특한 그림 스타일때문에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했다. 눈은 책의 텍스트를 따라 가면서도 머리속으론 '힘겨워 하는 모성'같은 주제일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허나.. 그림은.. 정반대의 주제다.


<The Evil Mothers>, 악한 어머니.... 라니...


그 그림이 벨베데레에 있어 갑자기 보게 된 것이다.


그림 속 어머니는 누에고치 같은 실타래에 칭칭 감겨 한겨울 눈에 황량한 들판 위 나무에 묶여 옴싹달싹 할 수 없다. 그것만으로 이미 답답해 미칠 지경인데 갓난 아이가 어미의 젓을 물고 놔주질  않는다.


이게 어딜 봐서 악한 어머니인가.. 어머니를 속박하는 가족과 사회.. 그런 쪽으로 해석되야 되는것 아닌가...


그런데 작가는 명백히 타이틀을 저렇게 달았다, <악한 어머니> 라고


기억을 더듬자면 작가 자신이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했다. 적절히 케어 받지 못한 아들 세간티니는 세상의 어머니들이 아이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것에 강한 부정감정을 있어 이런 어머니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그림이다.


작가는 이 주제로 4개의 연작을 했는데 작가의 경험과 기억이 그러하다면 이를 반박할 생각은 없다. 충분히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고 이런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엔 반감없이 받아들여지던 소재라고도 볼 수 있다. 그저 지금 이런 그림이 그려지면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들도 편협한 남성주의이자 시대와 동떨어진 가족주의를 주장한다고 비판받을 것임이 분명한 시대임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스타일이나 특이성은 충분히 흥미롭고 의미있다.


그림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거나 메시지 적으로 의미있거나 시대적으로 가치있거나 등등 여러 의미가 있을 것인데 그림과 작가의 배경을 알지 못하더라도 예술적으로 독특하고 인상적인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스스로 논쟁적이고 미술적 완성도가 뛰어나 좋아하는 작품



미술작품 외에 궁전 건물도 미술관으로 쓰이기에 적절하다.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나 사치스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비엔나 커피 한잔 할 만한 소박하고 깔끔한 카페가 있고


창밖으로는 기하학적 디자인을 구현해 놓은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 진다. 나무를 꽃이나 풀들보다 더 좋아하는 내가 선호하는 정원스타일은 아니지만 2층 궁에서 내려다 보면 정원 그 자체와 저 멀리 슈테판 성당까지 한 시야에 다 보일 정도로 낮게 가꾸져 있어 그것이 이 정원과 궁전을 이리 디자인한 사람의 의도겠구나 생각한다*


10배 정도로 당겨 찍어 본 슈테판 성당. 성당 아래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지붕의 상징과 미감이 잘 보였다.



PS. 나중에 찾게 되었는데 벨베데레의 뜻이 아래라고 한다. '제대로 봤구나,' 씨익 웃게 된 모먼트  

벨베데레(Belvedere)는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목적으로 짓는 건축 구조를 말한다.
미관이나 풍광을 살리기 위해 배치된 건축구조물이다. 이 용어는 건물 상부의 방이나 지붕 위의 구조물 또는 정원이나 공원의 별도 파빌리온 모두에 사용되었다. 실제 구조는 포탑, 큐폴라 또는 개방형 갤러리를 포함하여 모든 형태 또는 스타일이 될 수 있다. 이 용어는 포장된 테라스 또는 전망이 좋은 장소에 사용될 수도 있지만 실제 건물은 없다.

거대한 궁전인 비엔나의 벨베데레(Belvedere)나 뉴욕 센트럴 파크의 벨베데레성(Belvedere Castle)에서처럼 전체 건물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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