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외로웠던 20살의 기억을 떠올리며
지난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는 '혼밥'이라는 것을 할 생각조차도 못 했던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학교에서 혼자 급식을 먹는 친구들에게 내뱉어지는 차가운 시선과 조롱들을 12년 간 직접 옆에서 보고 들어왔기에 자연스럽게 혼자 밥 먹게 되는 것을 꺼리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형식적으로라도 항상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었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제대로 된 '혼밥'을 처음 시작해본 것은 스무 살. 재수할 때의 기숙학원에서였다.
고3 시절의 나는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수험생활을 보냈고, 당연히도 수능에서 목표하는 성적을 받지 못하여 수능 이후에 계속 방황을 이어갔다.
그렇게 의미 없는 나날들을 보내던 와중에, 1년만 더 투자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만 하면 남은 인생이 술술 풀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재수를 결정했고,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모 기숙학원의 재수종합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숙학원에서의 일상은 일어날 때부터 잘 때까지 공부하는 시간의 연속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고, 그래야만 했다. 그랬기에 입소 초반의 긴장감이 풀리고 같은 반의 친구들이 서서히 친해지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 나와 친해지려고 말을 걸어와도 나는 꿋꿋하게 혼자만의 길을 걸었다.
남들이 새롭게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할 때에도 나는 하루 세 끼 모두 영어 단어장을 옆에 두고 혼밥을 했다. 처음에는 '혼밥'이라는 행위 자체가 너무 부끄럽고 주변에서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밥을 제대로 넘기기조차 어려웠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혼밥을 하는 나를 보며 오고 가는 학생들이 그 당시 이과 중하위권 반에 속해있던 나에게 '공부도 못하는 애가 뭐라도 해보려고 애쓴다', '저런 애들이 자습 시간에 자고 밥 먹을 때 공부한다'라는 등의 조롱 섞인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가는 경우도 굉장히 흔했다.
그랬기에 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밥을 먹으면서도 시선은 오직 단어장을 향해야만 했다.
그렇게 봄을 맞이하고, 기록적인 폭염을 견디고,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수능 냄새를 맡을 때까지 매일같이 혼밥을 하며 혼자와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을 보기 좋게 배신하듯 두 번째 수능 결과도 좋지 않았다. 처참한 결과에 대한 심각성보다도 그동안 차근차근 쌓아온 노력의 시간들에 대한 허무한 감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또한, 결과가 좋지 않았음에도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남들에게 조롱당하지 않기 위해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내 모습이 너무 불쌍했기에 그날의 감정들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학창 시절 때처럼 혼밥을 피하고 내 시간을 투자해서까지 억지로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보다는 혼밥 하는 그 과정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으면 내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오히려 밥이나 반찬의 맛에 더 집중할 수 있기에 그 과정도 나름대로 유쾌하게 느껴진다.
가끔 혼밥을 할 때면 20살의 슬픈 기억들이 떠오르곤 하지만, 그렇게 후회 없는 과정을 보냈기에 지금이라도 이렇게 '혼밥의 미학'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