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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Mar 16. 2024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문학에세이, 샘터, 나의 단상포함>

출간 배경 

이 책은 2001년 8월부터 3년간 <조선일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북 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을 모아 편찬 한 것이다. 장영희 교수는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으며, 수필가, 번역가, 영문학자로 활동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소아마비는 평생을 목발에 의지하게 했고, 사망 전에는 세 차례의 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투병생활 중에도 집필을 게을리 하지 않은 작가의 의지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책의 성격

책 표지의 제목 아래에 <장영희 문학에세이>라고 적혀 있다. 말 그대로 문학 에세이이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 문학작품을 소개한 책이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에 포인트를 둔 것이 아니다. 문학과 작가자신의 경험을 콜라보한 책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각 챕터마다 작가가 직접 보고 겪은 일상의 단상을 문학 작품과 연계하여 풀어낸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문학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사람의 행동을 바꾸게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해답이 되기도 하는 책이었다. 




문학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작가의 말에 의하면 “문학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 또는 상상력을 통해 허구적 세계를 창조한다. 내 이야기가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문학작품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다. 작중 인물을 통해 내 안에 있던 욕망, 분노, 고뇌, 사랑을 공유하고 내적 세계에 눈뜨게 한다.

이런 과정은 개인으로 하여금 삶에 눈을 뜨게 하는 통과의례이며, 한 층 더 성숙하게 만든다고 했다.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공감능력이 문학작품에서 시작된 것을 보니, 가히 문학은 우리의 삶을 노곤하게 만드는 따뜻한 수프에 비유할 만하다.   

메말랐던 감성을 무장해제 시키는 봄의 숲길을 거닐 듯 책 속으로 느그적느그적 거닐어 보길 추천한다. 학창시절에만 갖는 꿈으로 알았던 문학소녀를 문학아줌마로 충만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독서토론용으로 가능할까?

독서토론을 할 경우 모임의 성격마다 책 선정은 매우 다양하다. 고전, 역사, 철학, 소설, 인문학 등 여러 가지 장르를 섞어가며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은 문학에세이라 비교적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독서토론으로 난이도가 있는 책들 사이에 끼워 머리를 식히고 한 템포 쉬어가는 의미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책 안에 등장하는 고전이라 일컬을 만한 책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러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하고 가도 좋다. 물론 2001년에 소개한 책이라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책 소개가 약간은 진부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소개되어진 대부분의 책들은 각 장르별 고전이라 할 만한 책들이므로 다룰만한 가치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야기 나눠 봐요

▶사랑의 문제(p118)라는 챕터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성의 문제’에만 급급한 자신과 사회를 책망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상민이가 별로 비전이 없어 보이는 만화그리기를 그만두고 대기업에 취직해 월급을 받았으며 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고 말하는데요. 막상 젊은이들에게 꿈을 좇으라고 이야기하지만 냉혹한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기성세대가 갖는 애정 어린 우려라는 것을 잘 압니다. 만약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자녀나 가까운 사람이 이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조언해 주시겠습니까?


가끔 상민이처럼 ‘사랑의 문제’를 좇아 삶의 행로를 결정하는 학생들을 본다. 조건 좋은 혼처를 두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장애인과 결혼을 한다든가, 공부를 썩 잘해서 유학을 다녀와서 교수가 되었으면 하는데 갑자기 사제가 되겠다고 수도회에 입회하는 등, 이리저리 손익을 따져가며 ‘이성의 문제’에만 급급해서 살아온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아직도 젊은 우리 학생들은 한다. “나처럼 ‘이성의 문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세상에서 용기 있는 우리 학생들의 꿈과 사랑을 지켜 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p118)

나의 단상

어제 남편이랑 유튜브에서 귀어한 한 가정의 가장의 스토리를 시청했습니다. 귀어를 하게 된 이유와 안정적인 삶을 꾸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어선을 몰고 고기를 잡아 판로를 개척하는 주인공은 건실해 보였고 힘든 날들도 굳건히 견뎌내는 강단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물었지요. 

“자기야 다음에 딸이 저런 사람과 결혼한다하면 당신 어쩔거야?"

특정 직업을 홀대해서라기보다는 사람을 보는 남편의 관점이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딸이 결정할 문제이긴 하지만... 건실하고 자기 신념이 확실한 사람이라면 직업이 무슨 상관이겠어."

생각이 통했습니다. 사람을 둘러싼 배경보다는 사람 자체를 봐야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됨됨이나 인격을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것에 잣대를 두고 쉽사리 오판을 범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을 덮어버리고 우리의 생각을 어리석게 만들지 않도록 깨어있어야겠지요.


▶<읽어버린 조각>이라는 이 동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쓴 셸 실버스타인의 작품으로 ‘완벽함의 불편함’을 전하고 있는데요. 

완벽한 사람 즉 그저 평범하지 못하고 조금 뛰어난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말로도 해석이 됩니다. 이는 부자는 무조건 나쁘다 혹은 평범하지 않으면 이상하다와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사회에 잘 융합해서 살기에는 완벽하면 안 되고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작가의 생각에 여러분은 동의하시나요?


사실 특별하게 잘나서 ‘보통’의 다수와 분리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겉보기처럼 그렇게 멋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서 삐뚤삐뚤 구르는 동그라미처럼 조금은 부족하게, 느리게, 가끔은 꽃 냄새도 맡고 노래도 불러가며 함께 하는 삶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p137) 


나의 단상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로 귀결되는 것이라면, 이성적으로 보는 시선과 감성적으로 보는 시선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문 연재를 의뢰할 당시 작가에게 ‘칼럼을 읽고 문학작품이 궁금해져 당장 서점으로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이 들도록 써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하니 달리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각 장의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아름답게만 그려진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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