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소설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서사적 특성 연구> 논문 감상
여초 커뮤니티에서 여성향 웹소설을 주제로 남성향 창작과의 대비, 남성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의 역사성, 여자들을 거느리는 남성 서사와 대비되는 가장 크게 자신을 사랑해 줄 남성을 찾는 여성의 서사 등의 의견을 흥미롭게 읽다가 더 배우고 싶어서 로맨스판타지 장르에 관한 논문을 찾아 읽게 됐다.
로맨스판타지의 여성 욕망
-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서사적 특성을 여성욕망의 관점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여성욕망의 정의는 명확하게 내릴 수 없다. 다만 동어반복적으로 정의를 하자면, 여성 스스로가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받지 않고 구성한 목적을 수행하고 그로 인한 결과를 여성 스스로 누리는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사회의 시선이나 기준에 의해 자신의 욕구를 재구성하는 대신, 자신이 욕망의 기준을 세운다는 점에서 여성욕망은 낯선 이야기를 탐색하게 한다.
웹소설 주제로 보는 여성과 남성의 주된 욕망을 생각하다 커뮤니티에서 본 댓글이 기억났다.
https://m.cafe.daum.net/subdued20club/ReHf/4281799
여성향 장르 주요 주제는 ‘사랑받는 나’인데 남성향 장르 주요 주제는 ‘성공한 나’라는 것이 와닿았다.
로맨스판타지 전개 과정
- 로맨스판타지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여성인물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모험을 떠나며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로맨스 장르에 비해 다양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택당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을 ‘선택’하고, 때로는 1:1의 독점적인 연애관계를 무너뜨리며, 같은 성별과도 로맨틱한 관계를 맺는다. 더 나아가 인물들은 자신의 성취와 노력에 따른 보상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욕망 추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독자들 또한 주인공이 성공과 투쟁, 모험, 사랑 등을 이루고자 질주하는 과정에서 대리만족을 경험하는 것이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시도는 그것이 ‘모험’이 이루어지는 판타지 세계를 경유하며 모험의 과정을 충실하게 다루는 배경에서 가능해진다.
로맨스판타지 특징
- 로맨스장르의 주 특징은 개성이 다른 두 인물이 우연한 계기로 사랑에 빠진 후 오해와 이해를 거듭하며 그 사랑을 이루는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곧 행복한 결혼, 결혼생활, 사랑, 열정적 접촉, 계약결혼에서 빚어진 사랑 등이 제목과 중심내용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중심 서사이자 로맨스가 언급하는 ‘보상’ 임을 알 수 있다. 21세기 한국의 인물이 중심으로, 등장인물을 둘러싼 초현실적인 상황이 등장할지라도, 그것은 두 사람의 사랑을 공고하게 하는 데 집중된다.
- 한편 로맨스판타지의 경우 ‘사랑’도 중요하지만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판타지 소재에서 활용되곤 하는 ‘~물’ 소재를 살펴볼 수 있는데, 차원이동이나 환생, 회귀 등의 모티프가 쓰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주인공에게 일정한 미션이 부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애쓰거나 위험에 처한 가족들을 구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회복하고 삶을 복구하고자 애쓰는 경우가 그것이다.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인물들은 한 번씩은 자기 목숨을 걸고 위험에 빠졌다가 살아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을 위험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상대의 죽음을 자초할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복수와 투쟁, 싸움 등은 판타지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성취를 위한 모험과 유사하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인물들은 사랑뿐 아니라 자신이 목표했던 복수, 구원, 회복, 권력욕 등을 충족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로맨스판타지 장르에서 ‘모험’이자 ‘보상’은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은 주변 환경을 타파하고 인정받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실수하기도 하고 투쟁하기도 하며 때로는 좌절하기도 한다. 사랑을 이루는 것 외에도 자신의 삶을 확장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로맨스판타지는 기존 로맨스 서사에 모험을 추가했다 할 수 있다.
로맨스판타지의 여성 욕망 긍정과 한계점 요약
- 여성작가/독자의 욕망을 긍정하는 방식과 한계점을 살펴볼 것이다. 첫째, 고정된 성역할을 넘어 성역할을 재해석하고, 여성인물에게 ‘사랑(연애)’이 여성인물의 판단율에 따라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들 수 있다. 해당 서사의 탐색은 이야기의 다양성을 탐색할 수 있으나 독법이 단순화되고 패턴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둘째, 여성 간 연대에 주목하며 ‘악녀’라는 인물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여성서사의 가능성 또한 살펴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성인물 설정을 ‘미래를 아는 자’이자 ‘귀족’인 ‘알파걸’을 지향하고 교조적으로 작품이 구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일반적인 연애관계를 넘어선 작품들
- 다음으로 1:1의 독점적인, 낭만적 연애관계를 뒤트는 작품들을 검토할 수 있다. 해당 작품군의 특성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여성인물이 연애를 보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인물들은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연애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혹은 연애 외의 다른 감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도니스」, 「황제와 여기사」, 「내 아버지의 아들을 찾아서」, 「악녀는 두 번 산다」 등 네이버시리즈와 카카오페이지에서 독자들의 다양한 담론을 이끌어 낸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검술의 성취 및 복수, 생존, 충성 및 책임이라는 목적 하에 연애관계를 부차적으로 다룬다. 또한 소설의 남성인물들은 여성인물들이 추구하는 바를 인정하고 자신이 부차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롹끼의 「남자 주인공이 없어도 괜찮아」 (카카오페이지)의 경우 주인공은 애정에 매몰돼 자기 삶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그려내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 그리고 연애를 하지 않거나 연애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여러 사람과 연애하는 형태의 소설이 창작/소비되는 것 역시 유의미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웹소설 창작이 상당수 특정한 주제물을 중심으로 하고, 유행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감안할 때 이러한 유형의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것은 앞으로도 유사한 인물형의 등장을 기대하게 하고, 새로운 서사를 탐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위의 검토 사항을 바탕으로 예측되는 서사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앞서 다룬 것처럼 여성인물들의 모험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할 것이다. 그간 여성인물들은 마법사, 정령사, 작가 등 육체적인 능력보다는 정신과 마나 등의 내적 능력을 갖춘 인물들로 등장했다. 혹은 요리사, 하녀, 가정부 등의 ‘여성적’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들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도니스」를 비롯해 「황제와 여기사」 등의 작품에서 기사물이 등장했고, 「검을 든 꽃」의 경우 남성인물보다 육체적 능력이 강한 여성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기사물 외에도 탐정(「마담 랭의 숙녀지침서」), 책사(「악녀는 두 번 산다」), 황제(「혈맥」) 등이 창작되고, 이후 해당 작품의 영향을 받아 같은 직업/역할군을 다루는 소설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모험,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인물들이 탄생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서사의 고민점
- 그럼에도 서사적 차원에서 아쉬운 점은 이러한 서사가 여성인물을 그동안 남성인물이 수행한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기존 서사와 유사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사랑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성인물, 남성의 성취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하는 여성인물, 다양한 여성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 여성들이 남성의 사랑을 공평하게 받고자 갈등 없이 지내는 이야기는 그간 영웅서사에서 익숙하게 변주되어 온 바이다. 그 서사의 자리를 여성인물로 바꾸면서 빚어지는 균열, 차이점은 분명 주목할 만하고 유의미한 변화라 할 수 있으나 남성인물 혹은 그간의 독법이 주장해 온 연애관계 내 불평등과 폭력성을 향유하게만 한다면 서사의 힘을 떨어뜨릴 수 있다. 동시에 인물형의 제시가 일견 교조적으로 움직일 확률 또한 존재한다. 로맨스에서 진행되는 성역할은 무조건 남성의 주도 혹은 여성의 순응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의 복합적인 관계가 존재함에도 강하고 씩씩하며 주도적인 여성이 되어야 함을 교조적으로 주장한다면, 처음에는 그 논리를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도 해당 서사가 패턴화 되면서 더 이상 창작의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예측 가능한, 평이한 이야기와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경우, 특정 모티프와 인물형이 독자들의 피로감을 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해당 문제는 ‘상품’으로서의 웹소설 트렌드화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여성인물들의 도전과 성공 스토리가 웹소설의 일부 트렌드로 회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페기 오렌스타인이 지적한 것처럼, 페미니즘적인 고민이 드러난 문화텍스트가 ‘상품’으로 회귀하면서 빚어지는 문제를 환기한다.
- 이러한 고민점들을 독자와 웹소설 플랫폼이 어떻게 경유하는가 역시 이후로 점검할 부분이다. 악녀/여성 간 연대 주목과 ‘알파걸’로의 회귀 최근 로맨스 및 로맨스판타지 창작자와 소비자들은 ‘여성서사’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여성주인공들이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목표를 이루고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독자들은 자발적으로 SNS에서 장르를 읽으며 작품을 추천하기도 했고, 실제 창작된 작품에 적극적으로 ‘여성서사’라는 명칭을 달기도 했다. 여성서사를 명쾌하게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여성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그들이 자기 삶을 타인의 선택과 지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선택, 유지하는 내용을 여성서사로 설명할 수 있다.
여성서사의 탐색
- 로맨스판타지 장르에서 여성서사에 대한 탐색은 현재 두 갈래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악녀로 치부된 인물들을 재해석하는 것, 둘째, 여성 간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흔히 로맨스 서사에서 ‘악녀’는 주로 주인공 여성인물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이자, 주인공 남성인물의 사랑을 얻고자 경쟁하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연애관계가 아닐지라도 여성 주인공을 질투하고 방해하는 대부분의 여성인물을 ‘악녀’로 그려내는 것이 사실이다. 주목할 것은 ‘악녀’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여주인공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낫다는 데 있다. 로맨스판타지 장르에서 ‘회귀물’의 시초이자 ‘차원이동물’을 재해석한 「버림받은 황비」의 경우, ‘악녀’였던 주인공이 충실하게 자기 삶을 살아왔으나 그 욕망을 부정당하면서, 그가 살고 있던 세계에서 거부당하고 ‘악녀’로 명명된 것을 언급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자기 욕망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여성인물에 대한 분노와 상징적 처벌과 연결된다. 악녀로 취급받던 여주인공들은 실상 자기의 임무에 충실했고, 타인에게서 사랑받고 싶어 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원가족과 남성주인공들에게 다른 사랑 대상이 등장하면서 여주인공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자 악인으로 취급받는다.
- 이러한 전개는 여성의 위치가 실상 동등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사랑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순간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드러낸다. 기존 로맨스 서사에서 ‘악녀’가 남성인물의 사랑을 얻고자 악녀가 된 것과 달리, 로맨스판타지 소설에서는 그것을 포기하고, 남성인물의 실체를 직시하며 더 나아가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남성인물을 처단하는 것, 더 나아가 신분 차별을 받는 인물들, 정서적으로 학대당하던 소수자들을 모으며 타인의 행복을 존중할 줄 아는,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것까지 다룬다.
- 다음으로 여성 간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들을 탐색할 수 있다. 단순한 우정과 사랑만이 아닌,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하면서도 서로 연대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한민트의 「악녀는 두 번 산다」(조아라, 카카오페이지, 2018~2019), 키아르네의 「신데렐라를 곱게 키웠습니다」(조아라, 카카오페이지, 리디북스, 2018~2019)를 들 수 있다. 해당 작품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 주목할 것은 여성인물들 사이의 연대였다. 주인공을 돕고 주인공이 돕는 수많은 여성인물들이 신분을 막론하고 신의와 연대를 지킬 줄 알며 정적이라 할지라도 품위를 지키는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키아르네의 작품은 패러디 장르에 대한 이해가 없고 페미니즘적인 독법이 없더라도 즉각적으로 신데렐라 이야기를 재해석하고 ‘여성인물 간의 연대’를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자산과 애정을 다투는 존재로 그려진 계모-의붓딸 사이의 애정, 딸들 사이의 우정 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여성 간 연대, 악녀의 재해석을 다룬 작품들은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 ‘악녀’의 경우 악녀를 키워드로 하면서도 악녀 프레임을 재해석(비평)하는 형태가 등장할 것인데, 악녀가 된 인물들이 자신의 운명을 정면돌파하기로 결심하는 이야기(「악녀들을 위한 안내서」, 카카오페이지, 2019)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사는 웹소설 안에서의 창작이 이미 계열별로 패턴화되어 있으며, 그 패턴을 변용할 경우 기존과 조금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웹소설 안에서의 창작이 상호 참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인기 있는 이야기의 경우 지속적으로 창작될 것이고, 억울하게 ‘악녀’로 몰리거나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를 ‘악녀’로 모는 사회문화적 감수성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악녀’라는 키워드로 생성할 가능성이 높다.
- 또한 여성 간 연대를 다룬 작품들은 자매 간 연대, 연적 간 연대, 정적 간 연대 등으로도 생겨날 것이며 여성 간의 로맨틱한 관계 역시 등장할 확률이 높다. 이미 여성 간 로맨스(GL) 장르가 생성되었고 활발한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로맨스판타지 장르 안에서의 여성 간 연대와 우정이 로맨스의 형태로 등장할 수 있다. 금눈새의 「그 오토메 게임의 배드 앤딩」(카카오페이지, 2019)의 경우 주인공 에묀리아를 지배하는 것은 살아 있는 세 명의 남성인물들이 아닌, 가장 사랑했던 친구이자 죽은 오필리아와의 애정이고, 오필리아 역시 죽기 전 서슴없이 에묀리아를 일컬어 ‘그 애는 내가 가장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라 언급하며 사회적으로 언급되는 ‘정상성’을 초과하는 모습을 보인다. 죽음보다 강한 우정과 강렬한 연대라는 정동은 그간 로맨스 및 로맨스판타지 서사에서 권력과 사랑을 나누지 않고자 투쟁했던 여성인물들에게 새로운 서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한계점
- 위의 서사적 변이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역시 아쉬운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악녀’라는 키워드의 반복-패턴화가 피로를 자아낼 수 있고 교조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여성 간 연대를 로맨스적으로 활용하면서 여성애를 상품화하고 낭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여성이 무조건 선하고 아름답고 서로 연대할 필요는 없고, 다채로운 여성상의 탐색이 오히려 인물의 윤리성에 집착하게 할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점, 상품화된 낭만적 관계가 역설적으로 현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 그 외에도 공통적으로 삶 성취와 사랑을 극복하는 장르적 특징에서 ‘판타지’ 세계가 전제하는 ‘신분제’라는 장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등장인물들은 ‘여성’이라는 한계를 일종의 신분적 한계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이들이 모험을 시도하고 그 결과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은 하나같이 ‘지식’과 ‘재능’이라는 자원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랑받는 인물이며 귀족 여성이라는 특성이 있다. 앞서 김경애가 언급한 것처럼 ‘알파걸’로서의 가능성이 주어진 것이다.
- 결과적으로 ‘신분제가 있는 중세시대’라는 설정은 의문점을 남긴다. 어째서 현대 한국사회가 아닌 2차 세계, 그것도 신분제가 있어 장벽이 더 큰 세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을 그려내는 것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최하위에 놓인 인물이 아닌, ‘귀족(혹은 중산층 지식인) 여성’이라는 설정을 선택하는 것인가? 이러한 설정에는 아이러니가 없는가? 이 질문은 결국 두 가지 해석을 도출할 수 있다. 주인공의 도전이 시도 가능하고,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해석이다. 최하위 신분의 가난한 여성의 성공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핍박받는 귀족 여성의 이야기보다 더 긴 서사를 요구한다. 이는 독자의 빠른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으며, 현실을 환기함으로써 피로도를 제공할 수 있다. 해당 해석은 곧 ‘여성’이라는 조건 하나만 해결하면 동등해질 수 있다는 욕망과도 맞닿는다. 곧 신분제 전체가 여성인물들이 마주하는 장애물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다른 인물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때로는 선각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공교롭게도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들이 ‘현대의 지식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것 역시 이러한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실수하거나 패배하거나, 한편으로는 서툰 여성인물들이 아직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우며, 일 외의 다른 관계에서도 주도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결론
- 로맨스판타지의 정의를 ‘독자가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클리셰적인 공간을 다루되, 판타지세계의 문법이 지향하는 2차 세계를 배경으로 여성인물이 사랑을 포함한 모험을 즐기는 스토리’로 정리하였다. 그 외 특성으로는 여성욕망을 긍정하는 데 주목하여 기존 로맨스에 비해 분량이 증가하며 여주인공의 성장과 모험에 초점을 맞추고, 낭만적 연애를 전유하여 고정된 성역할을 재해석하거나 비연애와 多연애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악녀를 재해석하고 여성 간 연대에 관심을 기울이는 특성을 살펴보았다. 물론 한계점 또한 생각할 수 있다. 소설 속 여성인물들의 투쟁이 ‘귀족’, ‘지식인’이라는 ‘알파걸’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장르내적 모순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여성인물의 변화도 하나의 트렌드이자 상품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은 향후 몇 년간, 독자와 웹소설 플랫폼의 지형도를 검토할 연구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장르가 규명되면서 독자와 작가, 그리고 플랫폼 내에서 모두 작품 분류에 합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시장 중심으로 장르가 규명되면서 기계적 분화 내지는 암묵적으로 여성독자들을 의식하면서 작품 구분이 이루어져, 언제든 플랫폼의 결정에 따라 장르가 변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독서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광의든 협의든 로맨스판타지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선이 만들어지고, 그 기준선이 독자/작가에 의해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을 읽기 전까지 로맨스 판타지를 생각하면 인기를 끈 원본을 베낀 양산형 내용들과 귀여움만을 소비하려고 어린이 캐릭터를 쓰는 단편적인 시각과 여성 혐오적인 사례가 기억나 부정적인 인상이 있었다.
지겹게 느껴지고 좋아하지 않았지만 논문을 읽으니 로맨스 판타지의 다양한 맥락과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고 여성 간의 관계성과 보편 연애 탈피 서사의 구체적인 사례와 페미니즘 분석을 인지하며 다면적으로 로맨스 판타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오랜만에 논문을 읽으니 심리학과 과학 분야 책에 첨부된 연구 논문을 흥미로워했던 기억도 생각났다. 어떤 현상에 관한 논문을 읽는 행위는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이유를 인지하면서 나 자신과 세상을 일차원적으로 미워하고 답답해하는 마음을 덜어내는 합리성과 인과로 맞물려 돌아가는 연결을 아는 즐거움이 존재해서 좋다. 일상과 와닿아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은 논문을 읽는 건 즐거운 일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양한 논문을 더 많이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