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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an 20. 2024

타협의 기술

스스로와 타협하기

나는 집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집순이지만,

집순이의 유형에 따라 보면

집에서도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하는 집순이다.


오늘도 수면장애로 잠을 설치고 첫차 타고 꽃시장에

다녀왔고, 1단만 사 오려고 했는데 3단을 사버렸다.

손에 풀물이 들 만큼 꽃을 다듬어야 했다.

그리고는 모든 힘을 다 쏟은 나머지 누웠다.




이제는 무얼 하다 힘이 들면 그냥 바로 그만두고

누워버린다. 2년 동안 갈고닦은 타협 기술이다.

누군가는 목표를 이루는데 스스로와 타협하는 것이

성취하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 생각이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알아주는 워커홀릭이었다.

당시 유아교육과에 아무 동기와 흥미 없이 진학했기

때문에 학교생활과 전공공부엔 영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꽂힌 건 다름 아닌 아르바이트.

매우 바쁜 매장에서 버블티 제조와

시끄럽고 정신없는 테마파크에서 일을 했다.

지금의 몸이라면 절대 근무할 수 없는 신경자극도

최상의 일자리다.


아르바이트가 본업이고 부업이 학생인 것처럼

학교를 다녔지만, 다 내가 원해서 한 일들이어서

그랬는지 힘들기보다 뿌듯하고 스스로에게 받는

인정욕구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힘들어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었다.

버블티의 빨대만 쏙 잘 꽂혀도 행복했고,

잔뜩 신난 어린이 손님께 기구를 태워주는 일도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그랬던 내가 유치원 교사가 된 뒤로 변했다.

다소 심각하게 강박적인 워커홀릭이 되었다.

매일 포식자에게 쫓기는 세렝게티의 초식동물처럼

일하고 또 일했다.

놓친 게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런 노력으로 꼼꼼하고 철저한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전처럼 스스로에 대한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몸을 갈아서 일하는데도 항상 부족했다.


빨대만 잘 꽂혀도 행복했던 나는

대형 행사를 끝낸 날조차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재밌어서 하는 워커홀릭이 아니라,

불안과 강박에 휩싸인 워커홀릭이 되었다.



극도의 스트레 상황 속에서

타고나게 예민하고 약했던 몸은

나에게 항의를 받고 있었다.

왜 이렇게 전전긍긍해?

다 해냈는데도 뭐가 그렇게 불안해?

너 지금 몸 상태 심각한 건 알아?


온몸의 근육이 빠져 걷는 것도 휘청이고,

소화장애로 식사도 못하고, 수면장애로 잠 못 자고

나서야 내 몸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욕구와 타협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나에게 지는 것 같았다.

미련하게 밥 못 먹으며 출근하고,

교무실에서 숨을 쉴 수 없어 ‘과호흡’을 사유로 조퇴

하고도, 집에 가져가서 일을 했다.

내겐 조퇴하고 집에 가서 일을 하는 것조차 엄청난

타협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몸과 타협하며

원하는 것을 다 하지 못하는 몸임을 여전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몸과 타협하려면 욕심을 버려야 했다.


내가 하기로 한 건 완벽하게 한다는 욕심.

내가 가진 에너지를 어떻게든 늘려보겠다는 욕심.

건강한 사람들만큼의 힘 있는 시간을 원하는 욕심.


몸과 마음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성취로 얻는 기쁨보다 안정에서 오는 편안함 느끼기.

오늘도 내 마음과 몸은 타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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