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허무한 허과장 2부:껍데기 말고 알맹이로 살기

제16화: 대감집의 역습

by 흐릿한형체




1. 잘나가는 꼴은 못 본다


허 과장이 공단 라이더들과 손잡고 '직거래 배달 연합'을 구축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점심시간마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라이더 군단을 보며 공단 식당 주인들은 환호했다. 수수료는 낮아지고 배달은 빨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듣고 배가 아픈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하청업체 박 사장이었다.


"허 과장 이 자식, 영업직 제안할 때는 콧대 높게 굴더니... 내 구역에서 장사를 해?"


박 사장은 허 과장이 과거 대기업 시절 관리하던 공단 업체 인맥과 지리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곧장 본사의 전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2. 플랫폼의 경고장


어느 평범한 오후, 허 과장의 스마트폰에 날카로운 알람이 울렸다. 평소 보던 배달 콜이 아니었다.



[경고] 귀하는 당사 약관 제24조(부당 권유 및 직거래 금지)를 위반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24시간 내 소명하지 않을 시 계정이 영구 정지될 예정입니다.

허 과장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배달 앱 본사에 그를 신고한 것이다. 직거래를 유도해 플랫폼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명목이었다. 뒤이어 박 사장에게서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박 사장: 허 과장,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대기업 다니며 얻은 정보로 뒤에서 장난질하면 못쓰지. 인맥도 다 회사 재산이야. 자중해.]


박 사장은 본사 인맥을 동원해 허 과장을 압박하고 있었다. '대감집 노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대감집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3. 무너지는 연합


계정 정지 위기가 닥치자, 함께 일하던 라이더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었다.


"어이, 허 씨.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우리까지 계정 잘리면 우린 손가락 빨아야 해."

"맞아, 박 사장 그 양반 보통내기 아니라고. 괜히 엮였다가 공단에서 발도 못 붙이겠어."


어제까지 형님 동생 하던 라이더들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허 과장은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16년 동안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될 줄 알았던 시절엔 몰랐던, '기득권의 횡포'였다.



4. 노비가 아닌 주인의 싸움법


허 과장은 퇴근길, 아내가 일하는 식당 근처 전신주 뒤에 몸을 숨겼다. 아내는 여전히 마늘을 까고 있었다. 그녀의 굽은 등 위로 가로등 불빛이 처량하게 떨어졌다.


'포기할까. 다시 박 사장 밑으로 들어가서 무릎 꿇고 빌어야 하나.'


그때 아내가 잠시 허리를 펴며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허 과장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내: 여보, 오늘 많이 힘들었지? 당신이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놨어. 조심해서 와요. 사랑해.]


눈물이 울컥 솟구쳤다. 박 사장의 위협보다, 플랫폼의 경고보다 더 강한 힘이 허 과장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헬멧을 고쳐 썼다.


'박 사장님, 당신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 난 이제 잃을 게 없는 사람이야.'


허 과장은 공단 입구 전광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넥타이는 없었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그는 플랫폼에 소명서를 쓰는 대신, 공단 식당 주인들과 라이더들을 설득할 '진짜 기획안'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기획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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