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오자서 - 7
백비가 승상이 됩니다. 오왕이 중원의 제후들과 회맹을 위해 오의 핵심 전력 모두를 데리고 떠납니다. 도성은 태자 우가 남아 지킵니다. 월왕이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기원전 482년, 구천은 12년 전 부차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출정합니다. 월에 대한 방비가 없던 오는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태자 우가 죽고 고소대는 불에 타 사라집니다. 오왕이 돌아와 월과 일전을 벌이나 지치고 사기가 저하된 오군은 십수 년을 벼르고 벼른 월군에 짓밟힙니다. 오왕이 화평을 청합니다. 오를 멸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한 월왕이 화평을 받아들입니다. 월과의 화평으로 패망의 위기에서 벗어난 오왕은 15년 전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때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여전히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습니다. 반면 월왕은 오에 가할 최후의 일격을 준비합니다.
기원전 476년, 월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3년이 지나 오의 도성이 함락됩니다. 오왕이 월왕에게 사자를 보내 지난날 월왕이 받았던 벌을 받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자신이 월을 존속시켰듯이 오의 존속을 인정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월왕이 측은한 생각이 들어 받아들이려 하자 범려가 말합니다. “지난날 하늘이 오에게 월을 주었으나 오왕이 천명을 거역하고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늘이 월에게 오를 주려 합니다. 어찌 천명을 거역하려 하십니까?”
월왕이 오왕에게 사자를 보내 100호의 식읍을 줄 테니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라고 합니다. 절망에 빠진 오왕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습니다. 오왕 합려의 성과를 이어 중원의 패자인 진(晉)과 패권을 다툴 정도로 마지막까지 국제사회의 강자로 군림하다 신흥 국가인 월에 의해 나라를 망친 오왕이 죽음을 결심하고 떠올린 사람은 합려도 서시도 백비도 아닌 오자서였습니다. “죽어 오자서를 대할 면목이 없다. 죽거든 내 눈을 가려다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두 주인공인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 거친 잠자리에 누워 자고(臥薪), 곰의 쓸개를 핥으며(嘗膽) 서로에 대한 복수의 결기를 다졌던 두 사람,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구천이 됩니다. 궁전 뜰에 시자를 세워 놓고 자신이 지날 때마다 “부차야 구천이 아비 죽인 사실을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해 혹시라도 복수에 대한 집념이 무뎌질까 경계했던 오왕도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각고했던 월왕에겐 미치지 못합니다.
오나라 궁궐에서 신하들의 첫 조례를 받는 자리에서 월왕은 백비와 그 일족을 도륙 내 훗날에 대한 경계로 삼습니다. 백비를 죽인 건 충신 오자서를 위한 복수였다고 말함으로써 훗날에 대한 모범으로 삼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월왕은 중원의 제, 진(晉), 송, 노와 회맹을 맺고 춘추 다섯 번째 패자가 됩니다. 패망의 위기를 딛고 일약 패권국가가 된 월, 그 중심에 있던 범려가 돌발행동을 합니다. 월나라 부흥의 또 다른 축이었던 문종에게 편지를 남기고 도망치듯 제나라로 잠적합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고 했소. 왕은 고난을 함께할 수는 있어도 영화는 함께 하지 못할 상이오. 하루빨리 월을 떠나 일신의 안녕을 구하시오.”
문종은 범려의 말을 반만 따릅니다. 병을 이유로 은퇴하지만, 월을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오라는 적을 제거하고 난 뒤 문종이라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신하는 월왕에게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문종을 병문안한 월왕이 칼을 풀어놓고 나옵니다. 오왕이 오자서에게 보냈던 촉루검입니다. 오자서가 그랬듯이 문종도 칼을 물고 엎어집니다.
20년 세월을 오직 나라를 위해 권토중래했던 문종은 결국 토사구팽의 고사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오가 망하고 4년이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문종, 한 나라를 멸망시킬 일곱 가지 계책 중 세 가지만을 써서 오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그는 남은 네 가지 계책으로 인해 월왕의 두려움을 사 결국 자신을 망칩니다. 한 나라를 망칠 일곱 가지 계책도 결국 한 몸 보호할 계책은 되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월왕 구천도 일생의 영욕을 뒤로하고 죽음을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