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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Apr 30. 2024

아빠, 나야 둘째 딸

20대 끝자락에 남기는 편지

언젠가 아빠에게 나의 글을 묶어서 주고 싶다는 생각에 쓰게 된 아빠에게 쓰는 편지.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아빠와 더욱 애틋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증오도 섞여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빠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때가 오기 시작했다. 아마 내 삶이 '진짜'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던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캐나다에 혼자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가족과의 물리적 거리가 나와 가족 간의 관계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모든 관계는 적정거리가 있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아빠에게 쓰고 싶은 말을 조금은 담백하게 써 내려갈 수 있지는 않을까.




아빠, 나야 둘째 딸.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닮았다는 말보다는, 아빠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 게 더 좋았어. 아빠의 성질머리, 야무진 성격, 그리고 손재주 등 좋은 것들을 모두 다 닮고 싶었거든. 아빠가 출근하면 아빠 넥타이나 허리띠를 질질 끌고 다니며 울던 내가, 아빠의 도움으로 캐나다까지 와서 이러나저러나 살고 있어. 어릴 때는 아빠 자동차 소리만 들리면 밖으로 뛰어나가 반겨주고, 아빠가 오면 괜스레 자는 척도 해보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낭만은 왜 우리 사이에서 사라졌을까. 그런 낭만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걸 보면서 아빠는 속상했을까? 아님 우리가 커가는 게 대견하기만 했을까. 크면서는 아빠를 정말 미워했어. 엄하고 무뚝뚝한 아빠가 미웠고, 훈육이라는 명목하에 가끔 매를 들고 큰소리를 내는 아빠가 싫었어.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도 아빠와 같은 생각이나 아빠가 생각한 방향이 아니라면 못하게 하는 것도 싫었어. 자유가 없다고 생각했지. 나는 아빠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닌데,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하는 마음이랑 함께. 그때는 너무 어려서 아빠가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지는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미워하기도 해 봤어.


비위가 약한 엄마를 대신해 우리 똥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엄마 대신 입덧도 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었다는 걸 알아. 첫 아이를 아빠 품에 안았을 때, 아빠는 한 번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을지, 아니면 세상 느껴보지 못한 벅참을 느꼈을지 궁금한 나이가 되었어. 이제는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던 아빠 모습을 다 용서하고 언제나 중심이 되었던 '나'의 삶에서 아빠의 어릴 적은 어땠는지, 어떤 꿈을 꾸던 소년이었는지 인간 '김 씨'를 궁금해하는 날이 왔어. 우리 '삼 남매의 아빠'가 인간인 아빠의 모습, 아빠의 소년 때의 모습, 꿈 많았던 그 시절이 궁금하고,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을지, 아빠의 진짜 꿈은 무엇이었을지 알고 싶어. 결국에 내가 쓰는 편지는 '나'의 입장에서 '아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아빠의 삶을 다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내가 용기 내서 이 편지들을 건넬 수 있기를 바라.


사회에 나와보니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 더 겸손하게 돼. 아빠처럼, 혹은 아빠보다 더 잘나게 잘 산다고 떵떵거리던 어린 나는, 두렵고 겁 많은 겁쟁이 어른이 되었지만 아빠가 나에게 보여준 사랑으로, 그리고 헌신으로 두려운 것들을 헤쳐나갈 수 있게 됐어. 조금 거리를 두고 본 우리 가족은 완벽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괜찮고 꽤 좋기까지 하더라! 32년 전 가정을 이루기로 했을 때 아빠의 마음가짐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으로 이 글들을 연재해보려고 해.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아빠는 여전히 본인이 속상하거나 서운한 일이 생기면 툭툭거리고 화를 내기도 하는, 감정 표현에 능숙하지 못한 어른이지만, 아빠의 둘째 딸은 그런 아빠의 부분까지도 어림짐작해서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 반응하며 넘어가야 할지 알게 된 만큼 커버렸어.


건강이 최고라는 말, 평생 알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엄마 아빠가 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니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내 나이 때 부모님들이 한 분 두 분 편찮으신 걸 볼 때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지 생각해 보게 돼. 그 시간이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았으면(아빠에게 고통이 될 수 있는 시간들(병마와 같은 것들)이 아니길 바랄뿐), 아빠나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해. 아빠와 함께 산 날 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가는 나겠지만, 아빠가 보여준 책임감, 희생, 사랑으로 나는 바르고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고 더 단단한 삶을 살게 될거야.


나는 이상하게 아빠 얘기만 하면 목이 메. 우리를 얼마나 애지중지 사랑했는지 알아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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