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동거, 외국인과 함께
동거 1同居
1. 명사 한집이나 한방에서 같이 삶.
2. 명사 부부가 아닌 남녀가 부부 관계를 가지며 한집에서 삶.
그런 말을 들었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몸에 타투가 있는 여자는 거르라고. 외국에서 유학을 했으면 동거를 했을 수 있고, 타투가 있으면 문란하고 '엠생'을 살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나는 둘 다 해당된다 - 캐나다에서 유학을 했고, 캐나다에서 캐나다 사람과 동거를 하고 있고 타투가 있다 - 안타깝게도. 아마 한국에서는 결혼은 틀린 것 같다.
반면에 캐나다에서 동거는 흔하다.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동거가 그렇게 흔할까 생각했는데, 내 생각엔 아마 너무 비싼 월세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지금 한국 돈으로 230만 원이 넘는 돈을 월세로 내고 있고, 내년부터는 내가 모든 생활비를 감당하기로 했기에 남자친구와 반씩 내기로 했다(그래도 120만 원은 내야 한다는 사실, 한국이었으면 강남에 살 수 있는 돈이겠지?). 남자친구의 집은 그의 직장에서 먼 거리에 있기에 사귀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집에 자주 머물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쩌다 보니 함께 살게 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처음 그의 물건을 보관할 수 있게 서랍장 한 칸을 내어주었을 때 기뻐하던 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쪼르르 본인의 친구에게 내가 서랍장 하나를 내어주고, 그를 위해 옷장 한편을 내어주었다고 얘기했다고 했다고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건데 그 작은 걸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걸 보고 마음이 참 고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혼자 자는 침대가 그리워도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하지 않아도 될 저녁을 그 사람 때문에 만들고, 내 점심을 만들면서 그의 점심을 챙겨주는 것도 좋았다. 함께 쉬는 날엔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를 먹으러 가고, 집 주변 새로운 카페를 찾으러 다녔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그에게 커피를 알려주고, 그가 좋아하는 달달한 디저트도 함께 먹어서 좋았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기에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아무런 불평 없이 먹는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동거를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야릇하지도, 로맨틱하지만도 않았다. 살아온 환경과 삶, 배경이 모두 다르기에 청소하는 법, 정리하는 법 하나하나 모두 다 맞춰야 하고(사실 내가 알려주는 거지만), 설거지는 어떤 순서로 하는지, 소비는 어떻게 하는지 등 맞춰야 하는 게 정말 많다. 생리적인 현상도 모두 공유해야 하고, 가끔은 혼자 자고 싶어서 선의의 거짓말로 둘러댄 후 - 잠에 예민한 그의 잠을 방해하기 싫다는 이유로 - 소파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혼자 살 때보다 빨래는 두 배로 늘어나고, 바닥에 먼지는 왜 이렇게 빨리 쌓이는지, 일주일에 3번 돌리던 청소기는 거의 매일 돌려야 한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에서의 동거가 아닌 '남자친구'와의 동거는 부정적으로 들리는 것을 안다. 나도 '남자친구랑 동거해'라고 말하기보다 '남자친구랑 같이 사는 수준이지~'라고 어물쩍 둘러대는 건 사실이니까.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속 편하게 말하지 못한다. 여기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많이 하고 있고, 여기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나 혼자서 살 때와는 다르게 조금 더 가득 찬 이 작은 집의 분위기가 싫지 않다. 내가 대충 말해도 알아듣고 일을 척척해내는 그의 모습이 좋고, 한국어 배워서 적시적소에 쓰는 그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자기 전 늘 한결같이 수면 양말을 신겨주는 사람, 내가 힘든 일(정리해고)을 당해도 조급해하지 말라며 힘을 주는 사람, 추울까 이불을 덮어주고 나의 코골이 소리에 잠을 못 자도 내가 잘 잤으니 됐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기에 오늘도 나의 동거는, 나의 타지 살이는 행복하고 감사함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