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하다 이 기분들
자식의 결혼은 과연 엄마 아빠의 성적표일까? 나는 나의 결혼으로 엄마 아빠를 만족시켜야만 할까? 부모의 입장에서 결혼을 하겠다는 언니가 걱정이 되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 아빠의 권위를 상실시키고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체면도 없고 창피하다' '내가 못나서 자식이 못난걸 내 탓을 해야지' '실패자다'와 같은 말을, 이만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 쏟아내는 엄마와 아빠. 새벽녘에 전화를 끊고 왠지 모를 싸한 공기와 이상한 부담감이 나를 덮쳐 눈물이 났다. 돈이 없으면 결혼하기가 힘든 세상이 된 걸까?
솔직히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경제적으로 궁핍한 적이 없다. 평범하게 자랐다고 생각했지만, 살면서 내가 가진 것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에겐 당연한 일들이 남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당연한 거지, 와 같은 헛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내 방이 있다는 것, 대학교 방학마다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 용돈을 받으며 학비 대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유학을 올 수 있었다는 것 그 모든 것 하나 당연한 게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조금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그렇게 대단한 부자도 아니다. 하지만 나의 남자친구, 그리고 언니의 남자친구는 사정이 좀 다르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은 괜찮게 살고 있지만 아빠 눈에는 언니의 남자친구가 능력 없는 놈이 되었다. 언니의 남자친구를 보며 내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두려워졌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사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많이 보는 아빠를 보면 두렵다. 내가 잘나야 하는데 나도 정리해고를 당하고 이것저것 시도만 해보고 있으니 스스로가, 내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당연히 정리해고 사실을 모르는 나의 부모님은 언니에게 쏟아내지 못하는 것들을 내게 전화해서 쏟아냈다. 자식 농사 실패다, 내놓기 부끄럽다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상한 부담감이 나를 휘감았다. '나는 잘 돼야 할 텐데' '나는 실망시키기 싫은데'와 같은 비슷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자식의 결혼이 부모의 성적표는 아닌데, 왜 나도 모르게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까.
굳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나는 5~7년 뒤에 시집을 가겠다고 하니 그건 너무 늦단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당장 직업도 없고, 언니 남자친구가 가진 돈만큼의 돈도 없는데, 5~7년 뒤가 너무 늦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부자 중국인이라도 만나서 시집을 가라는 건가? 그럼 또 너무 부자는 안된단다. 어느 정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해서 사는 게 제일이란다. 대체 그 '비슷한' 사람들이 뭔지는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20대 후반이 되고 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늘어나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문제들이 자꾸 나에게 온다. 한 번도 느껴보지 않았던 마음들이, 책임감들이 생겨나면서 가끔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결혼식을 하기 싫다고 했을 때 맘대로 하라고 했던 부모님이었는데, 사실 그냥 그 일이 직접 닥치지 않았기에 그러라고 가볍게 얘기했던 사실을 알게 되니, 부모님도 그냥 다른 부모와 똑같은 부모일 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트로피가 아닌 독립적인 사람으로 살아야지 하는 마음과 그래도 그들에게 실망시켜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함께 있다. 우리는 너무 가까운 걸까, 아니면 너무 먼 걸까? 내가 부모가 아니기에 드는 의문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그들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걸까. 결혼은 부모의 성적표다, 결혼식은 어른들 말을 들어야 해 와 같은 말을 듣지 않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엄마 아빠 마음이 이해가 되다가도, 또 나는 언니의 동생이니 언니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그냥 생각하길 포기한다.
하, 마음이 너무 무거운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