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2021-1분기를 돌아보며
글 | 찰리
'안 만남'이 상식인 시대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언택트(비대면)'라는 새 말을 업고 불황 속에서도 흑자를 봤다는 뭇 기업들의 소식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못 만남'은 비극이었을 것이다. 여기저기 희소식보다는 탄식이 들려온다. 상경하고 이렇게 많은 눈을 본 적이 있었던가, 기다렸다는 듯이 폭설에 한파에… 유독 시린 겨울이었다.
연말연시의 시원섭섭한 분위기를 즐길 새 없이 새해가 왔다. 사람 간 교류가 뜸했던 지난해는 분명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흘려보냈다는 기분을 지울 순 없다.
벌써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가 가까워졌다. 어색한 주민등록증을 새 지갑에 넣고 상경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날이 거의 십 년 전인 셈이다. 그때 내 나이를 만나면 기분이 어땠더라. "저 정도면 어른이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른, 아직도 아득히 먼 얘기 같은데 말이다.
새해를 맞아 새로이 한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으나 늦은 감이 있어 2021년 1분기를 정리해보기로 했다. 여전히 서툴고 새로운 일 투성이다. 난 언제 어른이 될라나.
서울 공화국의 '전세 전쟁'
지난 2월, 4년 동안 살던 전셋집을 떠났다. 연일 수도권 전세난이 기사로 쏟아지는 것이 남일 같지 않았다. 살던 동네에서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하려면 몇 천 올리는 건 기본이고, 채광이나 전용면적 등 불편했던 부분을 개선하려면 금액은 억 단위가 바뀐다. 참고로 아파트는 언감생심, 찾아본 적도 없다. 장정 셋이 살 수 있는 최소 평수의 투룸 다세대 주택을 찾는 것, 그것이 내 미션이었다.
집을 찾는 과정은 포기의 연속이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으려면 도심 살기를 포기해야 했고, 입지를 우선시하려면 어둡고 습한 집 밖에 없었다. (곰팡이 때문에 4년 고생했다) 결국 동생과 그래도 이번엔 빛이 드는 집에서 살자고 합의하고, 서울 끝자락으로 가는 것에 동의했다. 물론 그렇다고 매물이 갑자기 많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전세 전쟁'이었다. 워낙 전세 매물이 귀하다 보니 내가 먼저 보고, 저녁에 동생과 다시 보러 오겠다는 사이 다른 중개소에서 가계약이 들어가는 건 비일비재, 딱 봐도 허술해 보이는 우리 자매에게 근저당 대출이 잔뜩 잡힌 집을 추천해주는 중개사도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 차를 타고 난생처음 보는 동네를 샅샅이 뒤지는데 퍽 서글퍼졌다. 여긴 어디며,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내가 살 곳 하나 없다니! 직방, 다방 등 부동산 중개 어플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수십 개의 중개소에 연락처를 남기면서 은인 같은 중개사님을 만났다.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은(?) 중개사님 덕분에 꽤 만족스러운 조건의 집을 구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물론 집만 구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사는 모든 과정이 돈, 돈, 돈이다. 돈이 부족하면 더 발품을 팔아야 하고 포장이사 대신 용달차만 불러 힘을 좀 써야 한다.
서울에서 3명의 성인이 살 '집다운' 전셋집을 구한다면 못해도 1억 이상이 필요하다. 제대로 자리도 못 잡은 20대 세 명이 주머니를 뒤집어봤자 억 단위의 돈이 나오겠는가. 집을 알아보러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 돈으로 세 명이 살기엔 좀 힘들어요" "1억만 더 올리면" "몇 천만 더 대출받으셔서"였다. 천, 억… 내 평생 만져본 적도 없는 돈인데, 말로는 참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사람들 다 서울 사나 봐. 서울 공화국이 따로 없다며 자조하지만 나 역시 고향을 떠나와 이곳의 집값 상승에 일조한 사람이다. 지방은 소멸 일보 직전이라고 아우성, 서울 집값은 상승의 상승을 거듭한다. 근래엔 연일 쏟아지는 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과 반성은커녕 오히려 ‘공부 안 한~’ 운운하며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경솔한 조롱까지. 괜히 입안이 쓰다.
난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 운이 좋아서 전셋집을 얻은 거다.
제우스도 울고 갈 '벼락’ 맞은 사람들
요즘 그야말로 '주식 열풍'이다. 부끄럽지만 난 경영학을 전공했어도 재무제표 하나 볼 줄 모른다. 신용카드도 없고 적금이나 예금, 기껏해야 CMA 통장 정도만 만들어봐서 주식은 먼 곳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여기저기 들려오는 주식 이야기에 나도 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작정 시작하기엔 겁이 나서 '존 리의 부자 되기 습관' 책도 사보고 초보 투자자를 위한 유튜브도 열심히 찾아봤다. 관심이 워낙 없던 분야라 그런지 머리에 잘 안 들어오길래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무작정 한 주 사 보기로 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직후 외국 자본이 빠지면서 코스피는 1000대로 추락했다. 하지만 일명 '동학 개미 운동',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가 이어지며 상승세가 지속됐고, 지난 2021년 1월 6일 장중 사상 처음으로 코스피 3000선을 돌파했다.
주식시장에 먼저 들어가 있던 주변 지인들은 일단 돈도 잃어봐야 공부가 된다고 입 모아 말했다. ‘어차피 저금으론 부자 못 돼!’ 좀 번거롭긴 해도 스마트폰 어플로 주식계좌를 만들 수 있고, 사고파는 것도 상당히 간단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 하지만 시장에 대한 통찰이나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은 채 매수하는 것은 위험할 것 같다. 뭣도 모르고 계좌 개설 직후 우량주를 1주 샀는데 사자마자 주가가 후드득 떨어지더라. 아무 생각 없이 이게 고가인지 저가인지 보지도 않고 샀으니. 1주라 망정이지 몇십 주를 덜컥 샀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주식을 시작한 건 고수익을 바래서는 아니었다. 일종의 불안감, 나만 안 하는 것 같은 불안감에 시작했다. 그 뒤에는 요샛말로 '벼락 거지론'이 자리 잡고 있다.
'벼락 거지'는 자식의 소득에 별다른 변화가 없음에도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아마 ‘벼락부자'의 반대말이겠지. 전셋집을 구하면서 경험했듯이 이 도시의 집세와 물가는 최저임금 수준으로 월급을 받는 사회 초년생 임금 노동자에겐 감당하기 벅차다. 코로나19로 시장에 돈이 풀리지 않자 기준금리 0.5%, 은행은 초저금리로 돌아섰다. 적금·예금 은행 이자로는 돈을 벌 수 없고, 돈을 모아둘 뿐이다. 하지만 주식은 다르다. 가치가 있는 기업을 잘 골라 주식을 사두면 하루에도 몇 퍼센트의 수익이 왔다 갔다 한다. 나 빼고 다들 돈 번다는데 안 할 수 있나.
개천에서 용 안 나고, 자수성가는 옛말이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소득 증가액도 높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초고소득층에 부가 쏠리는 현상은 부동산 임대나 이자, 배당 등 자산소득의 증가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2021년 2월 26일자 경향신문 기사*)
어찌어찌 개미 행렬에 꼈지만 '벼락 거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관리비와 공과금, 통신비 등, 미래를 조금이라도 대비해 들어놓는 예적금까지. 이것저것 제외하면 한 달에 마음 편히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은 월 10만 원 남짓인데 그마저도 공부가 미흡해 매일 마이너스다. (목돈을 주식에 넣을 용기는 아직 없다) 인사이트를 가진 투자자가 되고 싶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경제뉴스를 읽어보지만, 공모주 경쟁률 몇천 대 일에 수조 원이 청약 증거금으로 몰렸다는 등 상상도 한 적 없는 단위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데 여전히 딴 세상 이야기 같을 뿐이다.
‘벼락 거지’, 어감이 좋진 않다. 비교적 가난할 뿐인데 꼭 ‘거지’라는 말을 붙여 자조해야 하나 싶다.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돈이 돈을 벌게 하는 법을 모르는 것도 게으른 내 탓인 것만 같다. 가난함이 개인의 잘못은 아닌데 계속 나는 쪼그라든다.
쉽지 않다. 이 험난한 세상, 난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돈, 돈, 돈 하면서 돈의 중요함을 깨달았으니 반 정도는 어른이 된 것도 같고, 앞으로가 막막하기도 하고.
*참고 기사 | [단독]소득 상위 0.1%, 주식·부동산으로 자산 ‘쑥’…세금은 ‘찔끔’, 경향신문
사진 | 영화 '소공녀', 뮤지컬 '마틸다', 유튜브 '발명! 쓰레기걸', 인터넷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