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되는 신 맛 오모리 김치찌개
고수의 맛에 등극하다
오모리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남편.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거든 나에게도 오모리 김치찌개를 꼭 먹여 봐야겠단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
"일단 먹어 보면 알 거야." 오모리 김치찌개를 기대하며 남편의 고향길로 떠나는 날. 내려가는 내내 차가 어찌나 정체되던지. 배가 무척이나 고팠던 나는 간판도 안 보고 식당 문을 열었다.
"오모리 김치찌개 둘이요." 주문을 하고서 애타는 마음으로 식사를 기다리는데 익을 대로 익은 신김치 한 접시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잘리지 않은 기다란 김치가 딱 봐도 먹음직스러웠다. 속이 쓰라릴까 봐 참다가 쌀밥도 없이 배추김치 한 가닥을 입 안에 쏙 넣었다. 내가 먹은 것이 김치인지 식초인지 헷갈릴 정도로 침샘을 확 자극하는 맛이었다. 자동 윙크가 발사되는 신 맛은 나를 자꾸만 유혹했다.
이윽고 보글보글 끓는 빨간 김치찌개가 나왔다. 후후 불어서 한입 맛보는 순간 물개 박수 다섯 번.
사진 한 장 못 찍었을 정도로 밥 한 입, 국물 한 입씩 정신없이 먹었다. "맛있어. 우와. 진짜 맛있는데?" 계산을 하고 다시 차에 오를 때까지 맛있다. 맛있네! 감탄 연발.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맛있었는데. 진짜 맛있었는데. 오모리 김치 극찬 로봇이 되어 있다.
김치찌개를 먹느라 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몇 조각 먹지도 못했다.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웠지만 그대로 남기고 온 오모리 김치 때문에 미련이 뚝뚝 흐른다. 찌개 안에 들어간 건 국물을 흠뻑 머금은 도톰한 배추김치, 작고 하얀 두부 몇 쪽, 돼지고기 조금이 다였다. 그런데도 온갖 맛난 음식으로 차려진 한상을 먹는 느낌이 들었다.
신김치 하나로 결승전에 등극한 고수의 맛.
해외에 가면 가장 생각날 맛.
대한민국의 맛이 그립거든 가장 먼저 먹어야 할 맛.
벌건 국물 한 숟갈 떠먹은 후에 흰 밥에 흐물흐물한 김치 하나 올려서 "아~!" 하고 먹으면 밥 강도가 따로 없다.
요리 앱에서 오모리 김치찌개 조리법을 몇 번이고 찾아봤지만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왜 하필 '오모리' 찌개라고 불리는지 궁금한데 그 또한 명확한 해석이 없었다. 오모리는 사전적으로 꽁무니를 뜻하는 단어다. 전라남도 방언으로 뚝배기를 지칭할 때도 쓰인다고 한다. 오모리 찌개 맛을 보니 '끝까지 잘 익은 뚝배기 김치' 정도로 해석해 두고 싶다.
문득 제주도 시장 모퉁이에서 커다란 귤 종류의 과일을 팔고 계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화려하게 꾸며진 가게들을 지나 시장 바닥에서 겨우 발견한 할머니께서는 팻말이나 명함 하나 없이 조용히 장사를 하고 계셨다. 쪼그려 앉아 계시는 할머니를 모두가 바삐 지나쳐 갔다. 나와 남편은 왠지 그분께 이끌렸다.
"할머니 이거 한 바구니에 얼마예요?" 할머니는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가격을 제시하셨다. 평소의 나라면 깔끔한 가게에서 비슷한 가격을 지불하고 샀을 법도 한데 선뜻 지갑을 열었다. 주먹보다 큰, 이름도 모를 과일. 별 기대가 없어 과일의 이름조차 여쭙지 않고 봉지를 받아 들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무심코 과일의 주황색 껍질 옷을 벗겨서 큼직한 과육 한쪽을 입에 넣었다. 토도독 터지는 과즙과 향이 어찌나 달고 상큼한지 비스듬히 기대 있던 상체가 번쩍 세워졌다. 차 안에 싱그러운 향기가 가득 퍼졌다. 운전하는 남편의 입에 넣어줬더니 그 역시 "미쳤다!"를 외치며 특급 감탄을 뿜었다. (그에겐 나름 최상의 표현임.) 그토록 맛있는 현지의 과일을 한 봉지만 사 온 것이 아쉬웠다. 우린 차를 다시 돌려 말아? 할 정도로 할머니의 과일에 흠뻑 반했다.
"할머니가 진정한 고수셨네."라고 말하는 남편 때문에 어찌나 웃었는지. 그 후로 우리는 최상위 맛의 음식을 만나거든 "고수의 맛!"을 외친다. 우리가 고수의 맛이라고 칭하는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오모리 김치찌개는 고수의 맛에 등극.
할머니의 과일과 오모리 찌개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주재료 하나로 승부수를 본다. 화려함도 다채로움도 없이 그저 핵심 재료가 전부다. 그런데 단순해 보이는 오모리 신김치와 할머니의 과일에는 좋은 햇살과 바람과 계절과 돌보는 이의 손길과 기술이 모두 들어 가 있다. 오모리 김치찌개의 요리 방법이 딱히 소개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오모리 김치찌개를 끓이려면 제대로 깊은 맛을 내는 오모리 김치만 있으면 되는데 그게 가장 어렵다. 화려함도 다채로움도 없이 제대로 된 핵심 재료로 사람을 만족시키고 최고의 평가를 받아 내는 고수의 영역. 나도 오모리 김치처럼 쉽게 흉내내기 힘든 깊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쓰는 문장에 노긋한 경험과 여태 읽었던 많은 책의 자취와 나만의 색깔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 호화스러운 미사여구 없이 글 하나로 승부수를 보는 작가, 잘 무르익은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마치 좋게 물들이고 톡 쏘는 개성으로 재미를 주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깊은 맛의 오모리 찌개 한 뚝배기에 그런 바람을 품는다.
오모리에 빠져 온갖 밀키트와 오모리 라면 등을 샀지만 인스턴트식품 그 어디에서도 식당 사장님이 끓인 정통 찌개의 맛이 나지 않았다. 음식과 글이 사람을 감동시킨다면 그 안에는 분명 좋은 원재료인 자기만의 이야기와 잘 발효된 역사와 정성이 들어 있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