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 원의 행복
자판기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 덕에 짤랑짤랑 동전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율무차와 우유를 자주 뽑아 마셨다. 높은 온도로 더욱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주는 자판기의 위치를 미리 파악해 놓으셨을 정도로 엄마께선 길거리 자판기 커피를 좋아하셨다. 카페 커피의 맛을 모르던 시절에 친구들과 오백 원을 넣고 200원 짜리 우유와 300원 짜리 커피 한 잔을 뽑아서 잘 섞어 마시면 환상의 달콤 라테가 탄생했다. 부드럽고 달달하고 향마저 우수한 라테는 늘 한 잔으론 아쉬울 만큼 여운이 남았다. 어른이 되면 마음껏 마시겠다고 벼를 정도였다. 추운 겨울이 되면 고소한 율무차와 단짠단짠 호박차를 자주 마셨다. 학원 갈 때, 속이 출출할 때, 추울 때 등등 동전만 생기면 자판기 앞으로 달려가던 꾸러기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자판기 음료는 동전을 갖고 다니지 않게 되면서 추억의 전유물이 되었다. 엄마께서도 더 이상 자판기 커피를 찾지 않으시길래 기계 자체가 없어진 줄로만 알았다.
시댁으로 가기 위해 새벽 기차를 기다리던 날 배가 너무 고파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자판기 커피가 환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눈에 들어왔다. "여보. 이거 작동되는 걸까?" 커피 마시고 싶으면 사주겠다는 남편에게 "우린 동전이 없어서 불가능하잖아." 하고 답했다. 그런데 요즘 커피 자판기는 핸드폰 결제가 가능하단다. "나 그럼 율무차!" 남편이 폰을 갖다 대고 결제를 마치자마자 따뜻한 율무차가 하얀 종이컵에 담겨 나왔다. 호로록 맛보고 눈이 휘둥그레져 버린 나. 자판기 율무차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잊었을지언정 나는 맛도 온도도 심지어 가격조차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아껴 먹고 싶을 정도로 담백하고 맛있는 율무차였다. "한 잔으로 성에 안 차." 욕심을 내며 당장 한 잔을 더 뽑아 달라고 하자 남편이 만류했다. "조금만 참았다가 아침 식사 해야지." 역내 온도가 후덥지근한 터라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추억의 자판기를 만나 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기차를 타니 기분이 색달랐다. 커피 자판기가 눈에서 멀어졌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버림받은 존재인 줄 알았는데 늘 지나치는 곳에 그토록 크고 듬직한 커피 맛집이 있었다.
삼백 원으로 아직도 따뜻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신기하다. 달달한 율무차 한 잔에 꼬맹이 시절의 추억이 방울방울 피어났다. 노란색과 짙은 파란색이 어우러진 유니폼을 입고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기다리시던 젊은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나도." 하고 달려가서 엄마의 손을 잡으면 "그래. 넌 율무차? 아니면 우유 마실래?" 물으시면서 자판기 버튼 두 개를 검지 손가락으로 왔다 갔다 가리키시던 엄마.
엄마는 남은 동전을 거스름돈 버튼을 눌러서 빼내지 않으시고 늘 그대로 두셨다. 필요한 다음 사람을 위해 잔돈을 남겨 놓으셨던 엄마의 인심은 돌고 돌아 내게 오고 동네 할머니들께 전달되고 엄마의 직장 동료들에게도 전해졌다. 그들 또한 뒷사람을 위해 똑같이 잔돈의 정을 저축해 두었다. 작은 시골 마을의 커피 자판기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였다. 모두가 삼촌, 이모, 큰엄마, 큰아빠라고 불렸던 촌 동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면 "너 왔구나. 뭐 마실래?" 하고 물어봐 주시던 어른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의 인심을 먹고사는 자판기는 언제나 바빴다.
차별 없이 우직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판기처럼 엄마 또한 마트에 오는 손님들에게 한결같이 후한 서비스를 제공하셨다. 동전이 없이도 음료를 뽑아 마시는 게 가능했던 자판기는 물론, 엄마가 근무하시는 빵집에서는 팥빵을 하나 사면 크림빵을 덤으로 하나 더 준다는 전설이 돌았을 정도니까.
가장 빠르게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방법. 자판기 앞으로 가서 달콤한 차 한 잔을 뽑아 마실 것. 오래오래 자판기 율무차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자판기 우유와 커피가 빠지면 섭섭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