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차 돈가스 집이 문을 닫는대.” 남편의 한 마디에 “누가 그래? 언제? 정말이야?” 연거푸 질문을 세 개나 던졌다. 그럴 리가. 여전히 영업도 잘되고, 변함없이 맛있고, 지역 사회에서 인지도도 높은 식당인데 갑자기 문을 닫는다니. 뜬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길 바랐다. 영영 못 먹게 될지도 모를 돈가스를 쟁취하러 한걸음에 식당으로 갔다. 언제나 그랬듯 사장님 부부는 차분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우릴 맞아주셨고 남는 식탁이 없을 만큼 손님이 많았다. 가게 대문에도 내부에서도 영업 종료를 언급하는 공지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어 내심 안도했다.
모둠 돈가스와 돈가스 덮밥을 주문했는데 사장님께서 밝은목소리로더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하셨다. 치솟는 물가에도 마지막까지 낮은 가격을 고수하셨던사장님 부부는 나그네 같은 손님들을 가족처럼 편안히 대해주셨다.
우리는 이 돈가스 가게를 가난한 대학생일 때부터 자주 찾았고, 더 가난한 고시생이었을 때도 자주 오갔다. 풋풋한 커플은 부부가 돼서도 걸핏하면 메차 돈가스 가게를방문했다. 맛있지만 불친절 한 식당이었다면, 불친절하지만 맛만 있는 곳이었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같은 식당을 찾진 않았을 것이다. 두 분의 한결같은 태도와 실력덕분에배도 마음도 든든했던 우리의 맛집 일번지.
부드러운 계란과 양념이 밴 얇은 양파와 촉촉한 돈가스가 이불처럼 덮인 돈가스 덮밥은 나의 최애 메뉴였다. 6천5백 원밖에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사장님이 직접 담근 김치까지 곁들여 먹으면 맛이 두 배.모둠 가스는 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부드러운 등심, 안심, 생선, 새우가스까지 한 번에 맛볼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단돈 천 원을 추가해서 정식을 주문하면 간간하고 따뜻한 가락국수까지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단일 메뉴보단 정식을 즐겼다.
동네의 익숙한 풍경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바삭한 돈가스를 음미하며 신호를 따라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는 메차 돈가스 식당에서만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묘미다. 고시 공부를 하며 드나들었던 독서실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사장님께 카드를 내밀면서 영업 종료 소식을 들었다고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분주해 보여 그냥 나오려던 찰나에 사모님께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씀하셨다. “사장님. 너무 아쉬워요. 이곳은 저희에게 식당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었어요.” 이젠 길에서 동네 주민으로 만나자고 하시는 사장님의 인사가 정겨웠다. 재료가 떨어지는 대로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하셔서 몇 번 더 들르겠다 했다.
메차 밥집 하면생각나는 소중한 추억이 두 개 있다. 어두운 독서실에 박혀 있던 나를 불러내 종종 돈가스를 사주셨던 엄마와 나의 시간. 많이 먹으라고 하시며 당신의 돈가스를 몇 개나 더 내 그릇에 얹어주시던 엄마의 손길이기억난다.남편과 반려견과 식사를 포장하러 왔다가 사장님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강아지를 안고 밥을 먹었던 경험 또한 특별했다.
연고도 없는 동네로 이사와 외지인에 불과했던 내가 가장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던 곳. 23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셨던 사장님과 그 절반 이상의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그간 아픈 어깨를 참아가며 양질의 식사를 만들어주신 사장님 부부가 존경스럽다. 살면서 또 이렇게 마음을 녹이는 부드럽고 따뜻한 돈가스를 먹을 수 있을까. 넝쿨이 우거진 정든 밥집을 나와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에 제법 멋진 붉은 노을을 만났다. 나도 그들처럼 내 일을 노련하게,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고 평연하게 해내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마음을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