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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Apr 14. 2023

장미 슈퍼마켓 첫째 딸입니다

군것질은 나의 취미생활

 꼬마아이가 설레는 표정으로 슈퍼마켓을 한 바퀴를 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마음에 드는 과자 한 봉지를 잡아챈다. “엄마, 나 이거 먹어도 돼?” 슈퍼마켓 주인아주머니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의 얼굴과 과자 봉지를 번갈아 쳐다본다. 이내 체념했다는 듯이 입을 여는 그녀. “에휴. 그래. 먹는 게 남는 거다.”

 가게의 사장님이자 삼 남매의 엄마였던 그녀는 아이들의 식습관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과자 한 봉지를 손님에게 팔고 나면 두 봉지를 뜯어재끼는 철부지 딸내미. 밥 먹기를 공부하기보다 싫어하는 아이들의 습성 때문에 육아 고충이 컸더랬다. 때로는 과자라도 먹고 살이라도 찌길 바라는 심정이었다니 장미 슈퍼마켓의 꼬마 녀석들이 참 해도 너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컸던 아이는 물론 첫째 딸 미세스쏭작가였다.


 청정한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시골 마을. 작은 아파트 단지에 있던 ‘장미 슈퍼’는 밥보다 군것질을 지독하게 사랑했던 어린 나의 보물섬이었다. 부모님에게는 전쟁터였던 그곳이 내게는 언제나 최고의 놀이터이자 천국이었다.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셨던 부모님 덕분에 갖고 싶은 것,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일단 매대의 상품을 뜯어재꼈다.


 그때부터 군것질은 나의 만년 취미생활이 됐다. 아파트 놀이터와 주변을 한껏 뛰놀다가 땀을 뻘뻘 흘린 채 슈퍼로 오면 삼백 원짜리 쭈쭈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많이 먹었던 것들은 물결무늬의 ‘또 뽑기 초콜릿’과 공룡 캐릭터의 ‘덴버 껌’이었다. 둘 다 고작 백 냥에 불과했다. 덴버 껌은 귀여운 공룡 문신 스티커로 포장 돼 있었다. 손가락 두 개 크기의 노란색 덴버 껌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 향기로운 단물이 터져 나왔다. 일반 껌을 세 개 정도 씹은 것처럼 오동통한 식감은 풍만한 만족감을 주었다. 껌을 씹으면서 손등에 공룡 문신을 입히는 소녀의 모습은 몹시 진지했다. 만족스럽게 새겨진 공룡 문신이 떨어질세라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주는 의식도 잊지 않았다. 문신에 과열된 멋과 힘을 얻은 소녀는 다시 바깥으로 잽싸게 달려 나갔다.


 키덜트(kidult)라는 말도 어색한 나이의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 나와 엄마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기만 하다. 햇볕과 혈기로 달아오른 벌건 내 얼굴,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있던 어설픈 몸뚱이, 가게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던 엄마의 얼굴, 늦은 저녁 엄마와 은밀히 나눠 먹었던 단종된 몇몇 간식들조차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예를 들면 풍미가 예술이었던 ‘먹물 새우깡’, 한복을 입은 옛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던 꼬들꼬들한 면발의 ‘장터 라면’, 학교 앞 분식집만큼이나 매콤 달콤 맛났던 떡볶이 과자 ‘시치미’ 등등.


 슈퍼 옆 공터는 나와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장미 슈퍼의 벽을 시작점으로 별별 놀이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가장 그리운 건 뛰노는 자녀들을 부르시던 부모님의 목소리다. 뉘엿뉘엿 지던 분홍빛 노을 사이로 "그만 놀고 올라 와. 밥 먹자" 하는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나 이제 가야 돼. 내일 또 보자.” 젊은 부모님 품으로 향하던 어린 자식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씩씩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풍경이 저미도록 그립다. 단종 돼버린 제품들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이쮸의 시조새 바나나맛 쮸쮸, 씹는 재미와 읽는 재미가 공존하던 만화책 껌. 아아. 뭉클한 나의 추억이여.


 음식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음식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만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와중에 또 먹는 이야기를 하는 건 어째해도 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음식을 통해 공통분모를 찾고 추억을 소환하면 사는 맛은 배가 된다. 꼬맹이 시절에도 그러했다. 불량식품을 꺼내서 진열한 후 교환해 먹으면서 과자 이야기를 하고, 각자 어떤 과자를 가장 좋아하는지 설명하며 열띤 토론의 장을 열었다. 군것질거리가 두둑이 들어있는 우리의 호주머니는 작은 슈퍼마켓이자 이야기보따리였다.


 그 시절의 나는 ‘장미 슈퍼 딸’이라 불렸다. 나는 그 호칭을 좋아했다.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미 슈퍼를 무척 사랑했으니까. 군것질 마니아는 여전히 음식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산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엔 아드레날린이 폭발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영감이 떠올라 식식한(食食) 글이 쓰고 싶어 진다. 먹기 위해 운동하고 먹기 위해 사는 것도 과언은 아니다. 밥 배와 디저트 배가 따로 있는 나의 주특기는 감칠맛 도는 글쓰기이다. 장미슈퍼에서 손님을 맞던 설렘을 담아 푸드에세이를 당신께 배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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