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초고령화 사회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출산의 중요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여러모로 출산 장려와 생명의 탄생이 매우 중요한 실정이다. 하나 그럴수록 다양한 삶을 포용하고 타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특히 무자녀 부부, 미혼자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너무 이분법적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점검을 해야 하는 때에 다다랐다고 본다.
요즘 같은 시국에 아이를 낳은 사람은 애국자, 아이가 없이 살면 이기적인 사람. “요즘에는 딸이 대세”, “요즘엔 딸을 낳아야 기를 펴고 살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아들이건 딸이건 귀하긴 매 한 가지! 생명에 대세가 있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애를 안 낳아 봤으니 뭘 알겠어.”, “애를 낳아서 길러 봐야 진짜 어른이지.”라는 등의 말은 흑백 논리를 넘어 총과 칼을 들지 않은 양극 전쟁을 시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자녀 부부로 살려면 누구보다도 튼튼한 ‘헤비 멘털’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는 언니가 동네 모임에서 크게 상처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줌마들끼리 수다를 떨다가 “자기가 그러니까 애가 안 생기는 거야.”, “애가 없는 사람들이 저렇다니까.”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몇 차례나 만났단다. 언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더 이상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언니의 남편은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냐며 역정을 냈다고 하는데 그녀가 맞서 싸웠던들 무슨 이득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매우 조용히 아파트 생활을 하며 그림자처럼 살고 있는 나를 붙잡고 이따금 이렇게 묻는 이웃들이 있다. “자기는 왜 애를 안 가져?”, “좋은 소식 없어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거예요. 애를 안 갖는 거예요?” 가볍게 대답을 하고 넘기는 편이지만 디테일한 질문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이전에 임신 이야기가 화두에 오르자 남성 상사 한 명이 나에게 올해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레퍼토리가 다 정해진 흐름인 듯하여 말 섞기가 싫었다. 내 나이를 듣자마자 상사는 아이를 가지려면 남자가 요령을 어쩌고 저쩌고. 나는 귀를 닫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그가 연설을 멈추기를 기다렸다.
무자녀 부부에게는 야매 스승님과 야매 의사가 많이 들러붙는다. “매운 게 먹고 싶다고? 혹시 임신한 건가.”(선생님, 저는 지금 생리 중입니다만.), “내가 커다란 잉어가 나오는 태몽을 꿨는데 자기 태몽을 대신 꾼 거 아닐까?”, “애 없이 살면 나중에 후회한다.” 부담이 따르는 대화의 주인공은 늘 화자이지 청자가 아니다.
특히 난임부부에게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에 대해 알려드리자면 바로 이것이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아이가 찾아온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아이가 찾아오고, 불편하게 가지면 아이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은 곧 부부 중에서도 여성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가혹한 난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삶을 살게 되던지 너희는 잘 살 거야." 하고 응원해 준다면 두고두고 감사 제목이 된다.
내가 몇 해동안 난임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의 지인이 임신 후 아이 초음파 사진, 신생아 사진으로 내 폰을 도배했다. 처음에는 반갑게 받고 축하한다는 말과 덕담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이제는 리액션이 고갈되어 몹시 난감하다. 아이 사진이 보고 싶으면 어련히 요청하지 않겠는가. “애 사진 좀 보내주세요.”라고 말이다. 하루 종일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오는 그에게 넌지시 묻고 싶다. 내 폰을 혹시 당신의 SNS로 착각을 하고 있는 건가요? 별스타그램에 이미 올린 사진을 부지런히 타인의 폰으로 퍼 나르는 행위 역시 아이를 위해서라도 삼가자.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
서로 편가르지 않는 것.
너무나 간단하고 어려운 평생의 숙제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무겁고 소중한 사안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신념과당위성을 주장하기 전에 각 가정마다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자.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때로는 “그렇구나.”라는 간단한 한마디에 가장 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은 바로 '존중'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서 그치지 말고 실천해야 하는 때다.
토마토도 이렇게 가지각색인 마당에 하물며 인간의 삶이란! 나부터 개개인의 색깔을 존중하며 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