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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는 아이 없이 세 식구

남편과 일곱 살 강아지와 나

by 미세스쏭작가

비자발적 난임 부부와 일곱 살 푸들. 서로를 무척이나 애지중지한 나머지 셋 다 불리불안이 심하다. 아이가 없지만 어느 정도의 자유는 포기한 지 오래. 노 펫(No Pet) 존을 부지런히 피해 다니며 세 식구가 공존할 수 있는 행복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한다. 우리들의 사랑의 언어는 '함께 하는 시간'이기에 같이 놀고 같이 쉬면서 에너지와 마음을 채워나가고 있다.


사실 나의 상상 속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 남편, 강아지, 아기의 그림이 완성돼 있었다. 나이 많은 엄마는 되기 싫었건만 난임부부인 우리의 삶은 마치 탱탱볼과도 같다. 어디로 튈지 전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어떻게 살게 되든 행복할 자신이 있으니 가까운 미래에는 확정된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 우리 부부의 의견이다. 앞으로 일 년 혹은 이 년 내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애 대신 개'가 아닌 '애 말고 개'를 택하는 자발적 무자녀 부부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난임 병원을 찾는 일도 생기려나? 아악!)


이따금 남편과 함께 견모차를 끌고 아웃렛이나 펫 존에 간다. 우리 집 푸들 님은 견모차를 매우 싫어하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부득불 사용해야 될 때가 있다. 그러면 친한 사람들은 "개 말고 애를 태워야지."라며 웃는다. "그러게나 말이야." 맞장구를 치는 우리의 마음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나도 이쯤 되면 아이 엄마가 되어 유모차를 끌고 다닐 줄 알았다고!'


그런데 요 근래 견모차를 매우 삐뚤게 보는 시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쯧쯧. 저게 뭐 하는 짓들이야. 개를 모시고 사네." 견모차를 끌고 다니는 인간들은 전부 정신병자 같다는 악성 댓글이 상위권에 오른 걸 본 적도 있다. 이 무슨 꼬이고 꼬인 안타깝고 편협한 시선인가. 애견인들의 견모차는 임금님을 모시는 꽃가마가 아니라 내돈내산 이동수단이다. 대한민국 사람 세 명 중 한 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며 살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 삶은 결코 본인에게 득이 되지 못하리라.


우리 집 푸들은 부모님과 우리 부부, 남동생과 여동생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막내이고 최고의 힐링견이다. 몹시 지친 날에 주인이 침대 위에 뻗으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궁둥이를 선물하는 강아지. "자! 따뜻하고 귀여운 내 엉덩이를 느껴 봐." 이 행동은 '당신을 좋아해요'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런 애교를 보고 있으면 얼어 있던 마음이 녹으면서 체온이 확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남편은 강아지와 함께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이것 봐. 엄청 귀엽지.", "지금 봐봐! 빨리 와서 봐야 돼. 너무 귀여워.", "아이 귀여워. 자두 좀 봐."를 연신 외친다. 남편의 이런 행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두렵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는 만년 삼 순위로 밀려나려나.


아이가 없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는 앞으로 어떤 드라마를 쓰게 될까. 우리는 난임 부부이기 이전에 평범한 가정이고 보통의 부부이다. 애초에 서로를 사랑해서 둘만을 보며 평생을 기약했던 우리. 무엇을 더 바라며 재고 따지기 이전에 남편을 만난 것만으로 내 인생은 성공했다고 본다. 물론 별 욕심이 없는 내 기준에서만 통하는 성공이다. 그를 만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풍족하게 누리고 있다. 마음의 평안, 머리를 베개에 대면 바로 잠드는 능력, 단짝 친구, 뭐든지 터놓을 수 있는 말벗 등등.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마치 부모님처럼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그의 사랑을, 그런 천국을 아이에게도 누리게 해주고 싶다.


'현재까지는 아이가 없다'라는 말은 앞으로 우리에게 새 식구가 생기게 될지, 이대로 세 식구로 살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의 인생이 일촉즉발의 생방송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가정을 꾸려 주신 하나님께서 이미 이쪽 길, 저쪽 길, 가까운 길, 먼 길, 굽은 길, 좁은 길, 뻥 뚫린 길을 다 걸어보신 후에 우리 부부의 삶을 이끄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내 마음은 난임부부답지 않게 즐겁고 평온하다.


무신론자인 사람들도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부부는 하늘이 맺어주는 인연이다.", "아이는 신이 내리는 선물이다. 생명은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선물을 든 이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길 뿐이다. 늘 그래왔듯이 신이 생각하시기에 가장 좋은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 내시리라.

아늑한 침실에 내 자리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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