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세스쏭작가 Feb 28. 2024

에어드레서 선물을 거절하다

없어도 괜찮아요!

 종종 여동생 집에 있는 에어드레서를 빌려 쓴다. 조카들과 노는 사이에 세탁소를 방문하듯 에어드레서의 문을 열고 겨울 패딩을 맡긴다. 칙칙 물을 뿌리고 탈탈 털고 살균까지 뽀송뽀송하게 완료된 옷을 찾아 입으면 기분까지 말끔해진다.

 기계의 따스한 입김이 감도는 겨울 외투를 만지며 여동생에게 물었다. "에어드레서 있으니까 좋아?" "있으면 좋긴 하지. 구매하려고?" 되묻는 여동생에게 난 너희 집 거 빌려 쓰면 된다고 멋대로 답했다. 말 그대로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가전이기에 구매를 미루다가 언제부턴가 더는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여동생에게 에어드레서의 쓰임에 대해서 물었던 날이었다. 갑자기 시아버지께서 에어드레서를 사 주시겠다며 연락을 주셨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 전이었다면 '우와. 에어드레서라니!' 박수를 치며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아버님. 저희는 필요 없어요. 세탁기와 건조기있어도 충분해요." 하고 답했다. 결혼 초기만 해도 에어드레서를 필수 가전으로 생각했던 내가 에어드레서를 한사코 거절하다니.


 아버님은 남편과 통화한 후 다시 나를 바꿔달라 하셨다. "우리 것 사는 김에 너희 것도 한 대 사주고 싶은데."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다시 말씀드렸다. 우리가 사드려도 모자랄 판에 비싼 에어드레서를 냉큼 받을 수는 없지. 오랜만에 집에 가전을 들이는 시아버지는 내게 미니멀라이프의 이점을 골고루 깨닫게 해 주신 장본인이시다. "벌이보다 중요한 게 어떻게 소비하느냐이다. 나는 이제 가진 것을 점차 줄여나가는 연습을 한다." 아버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이런 가르침을 본받는 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절반 정도는 해내고 있는 것 같다.


 두 해 연속 많은 양의 옷을 정리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롱패딩 두 개와 폴리스 집업 외투 두 개로 올 겨울을 지냈다. 수족냉증이 심한 내게 유행하는 숏패딩은 체벌이나 마찬가지. 롱패딩 덕분에 눈길을 뚫고 저녁운동 다닐 수 있었다. 결국 가볍고 따뜻한 옷만 찾는 겨울을 보내며 미어터지는 옷장 결투를 신.

 많은 옷가지를 정리하면서 더더욱 필요를 절감하지 않게 된 에어드레서.


 시부모님의 멋진 선물을 거절하고도 전혀 아쉽지 않은 이유는 받으면 그만큼 되돌려 드려야 한다는 논리 따위가 아니다. 베푸신 것은 몽땅 잊어버리고 받은 것만 기억하시는 양가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미니멀라이프를 지속하고 싶다.


 에어드레서의 경우 옷장처럼 매일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기에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무엇을 버리고 비울 것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내 삶에 활력을 더하는 물음들이다. 가짜 필요를 분간하는 지혜가 삶에 여백의 미를 더한다. 비우기 위해 집착하지 않고 채우기 위해서도 집착하지 않는 생활을 영위하련다. 물론 에어드레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지겠다마는. 옷방 공간 사수하고 아버님 지갑 절대 지켜!

테트리스 하기 딱좋은 미세스쏭작가의 드레스룸...
매거진의 이전글 사는 것과 사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