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실컷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본래 독서와 글쓰기를 놓지 않는 사람이지만 원하던 브런치 작가도 되었겠다 쓰고 또 쓰는 창작의 재미에 빠져 사는 중이다. 오래 묻어둔 작가의 꿈 덕분에 행복하고 즐거운 반면 약간의 불안함도 존재한다. 쓸 수 있을 때 마음껏 글을 쓰자는 마음과 돈도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부딪치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두둑하면 여유로운 마음에 글이 더 술술 써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단기 계약직에 이력서를 넣었다. 경력증명서, 등본, 자격증 등 각종 서류를 준비하면서 그 시간마저 아까워 얼른 제출하고 글 써야지 애가 닳았다.
체력이 몹시 약한 나로서는 회사 일, 집안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노릇이다. 다시 직장인의 옷을 입을 수도 있으니 외부 약속까지 모두 무른 채 바지런히 쓰는 일에만 집중했다. 며칠 후 면접에 참여해 달라는 일 차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괜스레 씁쓸했다. 면접 장소를 숙지하고 교육일정과 출근 날짜를 달력에 상세히 기록했다. 그러고는 가지 못... 아니 가지 않았다. 디데이 며칠을 앞두고 "사정이 생겨서 면접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를 드렸더니 인사 담당자분께서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하셨다. 내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읊으면서 아까운 기회를 스스로 뻥 차버렸구나 조금은 아쉬웠다. 이게 맞아? 잘한 결정인가?
단기 계약직 일을 통해 육 개월에 천오백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창작 활동의 든든한 밑거름이 돼 줄 수 있는 보수였다. 내가 직장에 나가지 않고 육 개월 동안 글만 열심히 쓴다면 글쎄? 적은 금액이라도 벌 수 있을지 미지수. 그래도 이제는 글쓰기 근육이 제법 단련되었고 나의 글이 꾸준히 읽히는 채널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브런치가 마음의 밥은 두둑이 먹여 주고 있으니 조바심을 내려놓고 오늘도 글을 쓸 뿐이다. 에세이 발행과 브런치북, 매거진을 통해 작은 점들을 촘촘히 찍어가고 있다. 내가 찍어놓은 미미한 점들이 언젠가는 하나의 굵은 선이 되어 쓰임을 받으리라.
며칠 전 남편과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호캉스를 갔는데 부대시설을 모조리 즐겨보겠다고 없는 체력을 긁어모아서 탕진했다. 호캉스 전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모두 읽느라 밤을 새웠던 터라 저녁이 되니 눈꺼풀이 절로 감겼다.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쓰지 않는 것이 쓰는 것보다 더 힘들게 느껴져서 견딜 수 없었다. 호텔의 간이 테이블을 침대 옆에 갖다 놓고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두 시간가량 열심히 에세이를 썼다. '구 남친이자 현 남편이 사준 가방'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이걸 누가 읽겠냐 싶으면서도 내가 썼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켁.
글을 완성하고 짧은 단잠을 잤다. 그리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예약된 조식까지 먹으러 갔다. 호캉스라기보다는 극기 훈련 같은 일박이일이었다. 호텔에서 썼던 글은 포털 사이트 메인에 노출되어 이틀 만에 조회수를 이만 오천 뷰가량 기록했다. 좋은 침대에 누워 편히 쉬는 것을 마다하고 열심히 쓴 에세이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기회는 네가 만들어 가는 거야.'
마음으로 읽히는 좋은 글을 쓰고 내 이름으로 여러 권의 책을 내는 꿈. 자타공인 작가로 불리는 미래를 그리며 오늘도 묵묵히 쓴다. 나의 오랜 꿈을 알고 있는 남편은 마음 편히 글을 쓰라고 권면해 주었다. "아무 걱정 하지 말고 글쓰기에만 집중해. 돈 걱정은 하지도 말고." 그러면서 앞으로 돈이 필요하게 되면 알려주겠단다.
여보세요. 인사팀 담당자님? 죄송하지만 혹시 면접 취소한 거 취소되나요?
오늘은 면접을 보기로 한 날이지만 나는 기어코 면접에 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천만 원짜리 글이다. 통장 잔고에 경적이 울리거든 그땐 글 쓰는 직장인으로 나를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