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없는 용서를 배우다
십인분 인생 나가신다 4
다친 마음과 다리를 이끌고 퇴사했던 나로 말미암아 회사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했다. 사내에 군림했던 그릇된 질서와 준칙이 바로잡히고 제법 다닐 만한 곳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이 샘솟았다.
나를 괴롭혔던 이들은 한동안 회사를 잘 다니다가 이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단다. 나의 부상이 못마땅해 온갖 욕을 했던 그들도 얼마 못 가 똑같이 다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중 한 명은 다른 병까지 얻게 되어 회사를 관두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적잖이 놀랐고 결코 통쾌한 감정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많이 안 됐더라. 지난 기억들 모두 잊고 선우를 위해 기도해 줘.” 이전 직장에서 나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위해줬던 동료에게 그리 하겠노라 답했다.
독방으로 가서 홀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하나님 선우가 큰 병에 걸려 많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가 병을 이겨내고 어서 다시 예전처럼...” 한때 원수가 돼버렸던 사람이지만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더 이상 기도가 나오지 않고 복잡한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를 자책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내 상처가 먼저라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감이 들었다.
다음날 남편에게 나의 옹졸함과 편협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고백했다. “선우가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걸 알게 됐는데도 기도가 안 나오더라. 나는 그저 내 상처만 중요한 사람인가 봐” 그 말을 하면서 또 부끄럽고 화가 나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를 달래며 그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게 당연해.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 기도 못 해. 괜찮아.” 공감 어린 위로 덕분에 돌 같은 내 마음이 새살이 돋듯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마침내 미움과 분노 대신 긍휼로 가슴속을 채울 수 있었다.
용서는 무겁고 어려운 덕목이다. 절대로 남에게 함부로 강요해선 안 될 일이고 스스로에게도 쉽게 다그칠만한 과정이 아니다. 아직 상처가 많이 쓰라리다면 숙제하듯 급급하게 용서를 시도하기보단 시간에 맡겨보는 것도 좋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대사다. 이해와 사랑은 다른 영역이지만, 사랑과 용서는 결이 같다. 반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 될 수 있다. 대가 없는 용서를 통해 이런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