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고 할 말은 하고 살기
십인분 인생 나가신다 5
이제는 모르는 사람을 더 찾기 힘든 빌런 불변의 법칙. '세상 모든 직장에는 빌런이 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당신이 바로 그 빌런이다.' 몸담는 직장마다 일당백인 또라이와 그들을 통한 배움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일보다는 만만한 먹잇감을 찾고 사람을 괴롭히는 데 혈안이었기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가정교육까지 운운하고 문제를 키우는 게 주특기인 여상사 미리.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렸다 하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욕을 먹었고 왕따 신세는 덤이었다.
자세와 표정, 단어 하나까지 따라다니며 지적하는 상사 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아무도 그녀와 부딪치려고 하지 않았기에 나 또한 사람 좋은 척, 무던한 척을 하며 참았다. 쉬는 시간에 요통으로 인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나에게 그녀가 별안간 이런 악담을 했다. “선생님은 어른 앞에서 다리 꼬고 앉는 거 어디서 배웠어요? 초등 교육부터 다시 해야 하나?” 모두가 나와 미리 씨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고 큰 잘못을 범한 듯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얼른 다리를 풀고 멋쩍게 웃으며 “죄송합니다.” 하고 답했다. 그녀는 의기양양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스라이팅을 종료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도록 그녀의 가정교육 발언이 잊히지 않았다. 대체 누가 누구의 가정교육을 지적한단 말인가.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판단이 섰고 할 말은 하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어차피 한 번은 폭발할 판이었다. 모두가 쉬쉬하고 피하는 그 사람에게 “시간 되시면 이야기 좀 하실 수 있나요?” 정중하고 호기롭게 물었다. 그 사람은 흠칫 놀라며 수첩과 펜을 들고 나를 따라 나왔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한 후 얼마 전 휴식 시간에 내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그 상황이 초등학교 교육을 논해야 할 만큼 많이 잘못된 행동이었냐고 물었다.
우리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냐며 생각이 안 난다던 미리 씨는 민망한 표정으로 수첩에 기록하고 동그라미를 치는 둥 부산을 떨었다. 메모는 왜 하는 건지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었는데 그저 눈을 피하려는 수단이었던 것 같다. 꿈틀 하는 굼벵이가 많이 당황스러운 낌새랄까.
앞으로 배워야 할 부분이 있으면 많이 가르쳐 주시돼 상처가 되고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말씀은 주의해 달라 부탁했다.
그 사람은 “내가 잘못했네. 내가 나빴어.” 볼펜으로 본인 머리를 때리며 과하게 반성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 후로도 유치하고 질 나쁜 언행이 반복됐지만 적어도 나의 눈치는 조금씩 보았고 어쨌거나 내 속은 시원했다. 모 아니면 도였던 나의 성격이 그녀의 끈질긴 악행 덕분에 많이 중화되었고 웃으면서, 흥분하지 않고, 감정을 배제하고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능력 한 가지를 얻게 된 것이다.
대상과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대처법이 다르지만 감정을 최대한 섞지 않고 담백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직장 생활에 제법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저 내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내쫓기지도 않고 할 말은 하고 살기. 이게 가능해짐으로써 자존감이 높아지고 직장 생활의 만족도도 올라갔다. 무례한 상대는 내 눈치를 살피거나 주의하려 노력했고 그런 변화를 보며 나도 그 사람을 더욱 존중하며 대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이 다 이런 거겠지.’ 애써 참으며 당하고만 살 때는 남 탓, 내 탓에 마음이 괴로웠지만 내 마음을 지키며 살 수 있게 되자 ‘바로 이거야.’ 하고 쾌재를 부르는 날이 많아졌다.
직장에서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고 통쾌해 본 적이 있는지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나에게도 청량한 사이다를 마신 듯 시원함 올라오는 사건이 있다. 일을 제때 처리하지 않고 실수가 잦아 자주 피해를 준 사람과의 일화다. 사고 발발 직전에 제 일을 떠넘기고 사사건건 군림하려 들었던 빌런은 아무리 이메일을 보내도 제때에 답을 주는 법이 없었다. 기한을 언급하면 바쁘다고 짜증을 내고 전화로 일하는 방식을 강요했던 그녀. 말을 자주 바꿔 탐탁지 않았지만 출근하자마자 일이 터져 그녀와 통화를 해야 했던 날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통화 연결음을 들으면서 대체 나는 누가 보호해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전화 연결이 됐고 심각한 상황을 전달하고 있는데 그녀는 도통 통화에 집중하지 않았다. 전화기를 입에 대고 옆 사람과 노닥거릴 뿐 너는 혼잣말을 하든지 말든지라는 식의 태도였다. 열이 받고 답답해서 “여보세요?”를 외치다가 결국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잠시 후 빌런이 명쾌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전화가 끊겼는데요.” 나는 또박또박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 전화는 제가 일부러 끊었는데요. 앞으로 일 이야기는 메일로 전달하겠습니다. 이메일을 확인해 주세요.” 당황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를 보호조치 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린 이메일로 증거를 남기며 조금 더 신중하게 일할 수 있었다. 그녀가 부서를 떠나는 날까지 의외로 우린 사이좋게 잘 지냈다. 내가 밟으면 꿈틀 하는 태세를 보였기에 가능한 해피 엔딩이 아니었을까.
소심한 사회적 동물이었던 내가 남들에게 할 말을 하며 살게 되자 일방적 존중이 쌍방으로 변화되었다. 싫은 소리도 밖으로 꺼낼 줄 아는 사람이 됨으로써 비로소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무작정 당하고 사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 마음이 다치면 몸도 상하기 마련이니 할 말은 하고 살자.
빌런 응대 근로자 보호조치를 시행하는 첫 번째 단계는 네가 들어야만 하는 말씀을 고이 전달해 드리며 사는 것이다.